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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유원준 (80)
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직관이 통찰로, 통찰이 계산으로 수렴될 때 : 알파고(AlphaGo)가 제기한 포스트휴먼에 대한 질문 최근 대한민국의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과 구글의 자회사이자 영국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개발 회사인 딥 마인드(Deep Mind)의 알파고(AlphaGo)의 승부 이야기가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심은 바둑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최신 기술의 향방이나 바둑에 전혀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이들의 승부는 단순히 바둑 승부가 아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의가 끊이지 않는 화제 거리를 제공해 주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SF영화를 통해 경험해왔던 기계가 지배하는 미래상에 관한 현실의 리포트이자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해 온 인간 고유의 직관 혹은 통찰 능력에 관한 물음표를 제공해 ..
“이 멋진 새로운 세계여!” 디지털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오늘은 약간 느낌이 다르다 어제 장만한 새로운 스마트 시계로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소 바쁜 날이 될 듯 하다. 벌써부터 상사의 메시지가 휴대폰에서 날 재촉한다. 아마도 해외 바이어에게 지난 밤 급한 메일이라도 온 것 같다.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회사로 가는 차 안에서 틈틈이 태블릿을 통해 오늘의 업무를 살펴본다. 실시간으로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 덕에 늦지 않게 회사에 도착한 나는 드디어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네모난 스크린 속에서 회사 동료들과 쌓인 일들을 마주하는 것도 잠시, 난 어느새 화면 하단에 메신저 창들을 띄워놓고 친구들과 주말 약속을 잡고 있다. 점심은 인터넷을 통해 햄버거를 주문했다. 오후 업무를..
, public installation 2006 -13 디지털 미디어는 과거의 미디어를 흡수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메타 미디어로서 과거의 미디어를 재매개한다. 다분히 새로운 미디어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분해해보면 과거 우리가 사용해왔던 몇몇 미디어들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미디어의 재매개, 즉, 흡수와 통합은 미디어의 근본적 성질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가속화된다. 디지털은 0과 1, 두 숫자들의 집합으로 우리 세계를 코딩한다. 따라서 물리적 근거를 지닌 과거의 것들은 지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추상적 기호 덩어리로 변환된다. 우리는 이로부터 매우 기능적이고도 편리한 쾌적한 미디어를 마주하게 되었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혹은 공간적 한계에 묶여있던 미디어는 이로부터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
사이 공간의 탄생. 0과 1 사이의 변주곡 : 2015 KGIT DIA Show 공공 전시 프로젝트, ‘D-Scape' 공간은 말 그대로 비어져있는 간격이다. 간격을 채우는 ‘비움’은 그 자체의 의미 이상의 맥락적 완결성을 확보하지는 못하기에 우리는 일찍이 비움과 채움의 과정을 통해 마주하는 ‘공간’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 왔다. 간격은 수치이며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기준으로 통용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간격이 그리고 기준화된 치수가 고정적인 물질적 전제 속에서 기능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 상정해왔던 공간은 현재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잠재적 가능성을 발현시킬 수 없는 제한적 의미를 지녀왔다. 최근 공간 담론에서 의미가 부여된 장소에서 오히려 비장소를 역설해왔던 것은 다..
빛은 어떻게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가? 이이남 작가 개인전 ‘다시 태어나는 빛’ _가나아트센터 신은 천지를 창조하며 다른 무엇보다 첫 번째로 빛을 존재케 했다. 빛은 만물의 기원적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좀 더 철학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빛으로 인해 극복되는 어두움에 의해 우리는 사물을 구분하고 그로부터 인식되는 차이에 의해 모든 것들의 의미를 생성해왔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빛은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의 의미 체계를 결정하는 매우 근원적인 요소가 된다. 지난 해 12월 16일부터 서울의 가나아트센터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하는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의 전시는 이러한 ‘빛’이라는 요소를 전시의 제목으로 차용한다. 그러나 그가 주목하는 빛은 태초부터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닌 ‘다시 태어나..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이미 직접 체험의 세계를 넘어 매체에 의한 간접 경험과 그것으로부터 야기된 가상의 정보 덩어리들에 대한 해석 문제로 점철되고 있다. TV의 뉴스 속에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고 그들로부터 야기된 사건에 대한 보도들로 넘쳐나며, 인터넷을 통해 현실에서 만난 적도 없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자신이 보여주는 스스로의 이미지는 실제의 본 모습이 아니며, 타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미 이러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당면한 전제가 되어버렸다. 다만, 이렇듯 부유하는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은 가벼워진다. 그리고 이 가벼운 정보들이 우리의 존재의 무게까지 잡아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 덩어리들이 지닌 유령적 속성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정보의 가상적 체험의 수준을 ..
, 2013 예술과 과학의 융합 시대이다. 모두들 저마다 기초 과학의 중요성, 그리고 이러한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학문 심지어 예술과의 융합을 이야기한다. 융합이란 서로 다른 물질들이 녹아서 합쳐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즉, 합쳐짐의 대상은 서로간의 다름을 전제한 상이한 것들이며, 이러한 합쳐짐에 의해 하나의 상태로 귀결된다. 그러나 반문해보자. 우리가 융합하고자 하는 대상들이 정말로 서로 다른 대상들인가? 그리고 서로의 거리를 그만큼 전제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들인가? 원동민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과거 하나였던 혹은 이미 완전체로 존재했던 것들을 세분화시켜 발전시켜온 것인데, 다시금 이러한 분화를 융합하려는 시도가 부질없게 보이는 탓일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에서의 이들은 이미 각자의 영역..
박형준, , 2014 박형준의 작업은 우리의 내면에 관한 탐구이다. 그의 작품 는 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공명영상)를 통해 스스로의 신체를 스캔한 영상 이미지인데, 우리는 이로부터 신체 내부에 관한 상상하기 어려운 생소한 이미지를 마주하게 된다. ‘우주 속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우주가 있다’라는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upaniṣad) 철학, 즉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직접적인 촬영 영상을 통해 나타난 우리 몸 속 장면들은 낯설고 생경하여 마치 새로운 세계를 항해하고 탐사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상은 우리의 장과 위를 통과하여 폐와 심장을 지나 뇌까지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하나의 여정처럼 그려진다. 매우 익숙한 몸 속 장..
EXPERIMENTAL FILM / ANIMATION . ONE CHANNEL VIDEO PROJECTION . HD. 16/9 . 3Min. 2014. Color& NB. Stereo . No dialogue 에로스의 황금화살에 맞은 명계(冥界)의 신 하데스는 처음 본 제우스의 딸 페르세포네에게 사랑을 느낀다. 결국 그녀를 자신이 사는 지하세계로 납치하게 되는데, 이후 제우스의 중재로 페르세포네는 3분의 1은 지하세계에, 3분의 2는 대지의 신인 어머니(데메테르)의 품에서 살게 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이야기의 행간을 추측하여 페르세포네에 관한 다른 접근들을 시도한다. 폭력적 남성과 수동적 여성, 그리고 여기서 나타나는 여성의 대-남성 ..
조이경 | Yikyung Cho, 2010 기억은 일종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우리가 인식하듯, 네모 반듯한 그리고 차곡차곡 물건이 쌓여져있어 선형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억이라는 공간을 떠올릴 때에는 오히려 현실 속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복합적인 층위가 뒤섞여 있는 4차원의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복잡한 공간 속에 놓여져 있는 기억이란 존재는 우리가 원하는 곳에 놓여져 필요할 때에 쉽게 찾아질 수도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그것을 찾는 길이 너무도 험난하고 꼬여있어 좀처럼 기억의 공간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조이경의 는 우리의 이와 같은 분절되어 있는 공간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선, 알프..
중력은 우리의 실체를 보장한다. 여기에서의 실체란 결국 우리의 과학적 원리가 입증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인식하는 주요한 물리적 법칙이 상정되는 기반이 된다. 중력에 의해 우리의 시공간이 파생되거나 혹은 시-공간의 휘어짐에 따라 중력이 설정되는 과학적 개념들은 결국, 중력과 시-공간,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의해 규정되는 우리의 현실적 차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러한 중력으로부터 발생하는 환원적 사유는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들의 존재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하이퍼 디멘션 Hyper Dimension’의 전시작이자 공연의 환경으로 기능하는 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관람자에게 가상과 현실의 주요한 개념적 차원을 경험케 한다. 영상이 투사되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여러 겹의..
#1. 이상징후 / 異常徵候 무대와 공간이 있다.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등장인물은 매혹적이며 이미지는 함축적으로 이를 표상한다. 마치 연극과 영화를 위한 구성 성분을 열거한 것 같지만, 이들은 작가 박재영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예술의 형태가 생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것이 종합되는 공간 영역의 상이함과 구성 성분이 결합되는 방식에 있다. 우리는 무대라는 요소를 보며 시나리오와 등장인물에서 기대하는 주요한 공간을 이미 설정해버렸다. 기존 예술이 우리에게 주입한 선입견이자 편견이다. 그러나 예술의 기원을 복기해보면 매우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의 경과는 그러한 종합을 분쇄하여 각기 다른 장르의 역사를 만들어 ..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과학이 ‘개념을 가지고 자유롭게 노는 것’임을 강조하며, 과학의 본질이 상상력을 이용하여 단순성과 같은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상상력이 미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자유로운 유희적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놀이 문화가 주목해야만 하는 소중한 덕목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다양한 놀이 문화를 경험해왔다. 원초적으로 주어진 몸을 이용한 놀이 형태에서부터 말과 언어를 이용한 유희적 제스쳐와 말판과 카드를 이용한 보다 전문화된 게임의 형식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놀이 문화는 해당 시기의 시대적 문맥과 조우하여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왔고 이들 중 일부는 현재의 디지털 미디어와 결합하여 보다 확장된 형태의 놀이-게임의 모습으로서 진화..
이미지의 형상성에 관한 해체와 환대 : 함준서 개인전 오리를 닮은 개가 있다. 지면에 붙어버린 생명체도 보인다. 문자를 닮은 개체와 더불어 이종생명체로 인식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함준서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모습이다. 우리 인식의 범주에서 낯익은 듯 낯설은, 세상의 모습에 기인하지만 존재할 수는 없는 개체 혹은 생명체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에서 이러한 캐릭터들을 발견한다. 창조가 아닌 발견이라는 수식은 그가 견지하고 있는 자세를 설명한다. 그는 실제 세계에서 마주하는 환경적 요소들로부터 캐릭터들의 기본적인 라인들을 추출하고 이를 자신의 세계 속으로 편입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개체들이 어느 한 부분에서는 반드시 이질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
의식과 노이즈: 텔레노이아적 유토피아 / 석성석의 작업에 관한 소고 Scene #1 기술에 대한 편집증적 사유 일종의 편집증[paranoia]일까. 석성석의 작업은 지속적이고 완고한 의심에서 비롯된다. 불필요한, 어쩌면 매우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이러한 의심은 그의 작업에 있어 본질적 작동 기재가 된다. 그는 과거로부터 매체 실험적 작업을 지속하여 왔다. 때로는 매체 그 자체의 매질[媒質]로부터, 때로는 그러한 매체가 상징하는 의식적 수준에 관한 실험이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하이-테크놀로지가 아닌 로우-테크에 가까운 것이었고, 디지털적 변환에 도달하지 못한 그것이었다. 이는 다분히 의식적 선택이다. 아직 그러한 변환과 전개를 따라가기에는 이전 기술에 대한 사유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전 기..
Georges Méliès, , 1902 이미지의 평면성과 마법적 환영 이미지는 결국 평면적이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인식되어온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자 사고 체계였다. 이미지가 특정 오브제에 관한 재현의 역할을 수행할 때부터, 이미지와 실체의 구별은 그것의 존재론적 성분을 넘어 결국 그것이 지닌 차원상의 문제로 귀결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도식은 변화하고 있다. 기술 매체와 결합한 이미지는 적극적으로 2차원을 벗어나 3차원의 것으로 현상하고 있으며, 디지털이라는 근본적인 성분 변화로부터 지시-대상이라는 이전의 전제를 필요치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의 변화가 기술적 진보로서 이야기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꼭 예술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를 통해 제시하고..
2013년. 뉴욕 / 예술과 기술, 게임에 관한 짧은 보고서 : 실험적 뉴미디어아트와 알고리즘-게임을 중심으로 뉴미디어아트, 게임과의 연결을 시도하다 현대 예술의 흐름을 관찰하다보면, 기술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 즉 뉴 미디어 아트에 대한 현대 예술의 소극적 수용 형태를 마주할 수 있다. 사진과 영화의 등장에도 예술은 쉽게 그 문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사진은 예술의 기술적 지지체로서, 영화는 스스로의 해체를 전제한 확장적 형태로서 예술과 극적인 조우를 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마도 새로운 기술 매체와 예술과의 융합은 시간을 두고 숙성시켜야 하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기술 매체에 기반한 비디오 게임과 예술의 연결 지점을 논의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 ..
기억의 주체는 누구인가? _매체에 의해 전복된 주체의 기억 Mioon / 기억극장 : 과 을 중심으로 기억에 앞서.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려 할 때, 과연 떠올려진 기억-이미지는 주체로부터 파생된 것일까, 아님 기억이 주체를 선택하여 실체화된 것일까? 독일의 생리학자 해링 Hering에 따르면, 우리는 ‘기억의 안경을 통해서’ 그 대상을 본다. 따라서 이미 아는 대상을 다시 보거나 ‘다시 본다고 믿을’ 때마다 그것이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한 동시에 불규칙적으로 소환된다. 이는 ‘기억’이란 프로세스가 인식 과정에 후행하기 때문이며, 선행되는 인식의 과정에서 이미 임의성과 자의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기억은 완전한 형태로 소환될 수 없으며, 그 과정 또한 규칙..
1. 놀이로서의 예술, 이미지 미술사에서는 동굴 벽화를 인류가 그려낸 최초의 재현 이미지라고 설명한다. 단순한 의미에서 재현은 눈앞에 존재하지 않거나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실물을 표현하는 행위 혹은 대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고대인들은 동굴에 그들이 경험한 세상의 일부를 다시 존재하게 만들었다. 즉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그 대상을 다시 그들 눈앞에서 현전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동굴 벽화는 자연 세계에 관한 원초적인 모방 행위이며 일종의 환영(Illusion)이다. 일반적으로 초기 예술은 인간이 자연 세계에 남겨놓은 흔적으로부터 발생하였다고 이야기된다. 자신의 흔적을 외부에 남겨놓으려는 본능적 충동은 '손바닥 각인' 같은 흔적들을 남겨놓는데, 동굴 벽화 역시도 이러한 충동으..
현재에서 시도된 미래, 라디오키트 세대의 유토피아적 기술-세계 파괴하기 : 작가 김원화 1. 라디오키트 세대와 기술 낭만주의 과거, 낭만주의 혹은 관념론적 입장을 지닌 작가들은 산업자본주의의 착취적이고 비인간적인 결과를 과학의 합리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 기술을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열쇠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주요한 동인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 사회에 속한 인간의 고유한 성격 자체도 변화한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만능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과학-기술적 진보는 우리들에게 미래에 관한 유토피아적 이상을 꿈꾸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있어 과학 기술의 적극적 행보는 자연스럽게 유토피아적 미래를 꿈꾸게 만들고, 그러한 세계의 주인공으로서의 자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