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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Out of Control : Random International", 부산현대미술관 특별기획전 통제받거나 혹은 통제하거나, 현실의 알고리즘 해킹하기 오늘날 현실이 매우 허구적인 공정을 통해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음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텔레비젼과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소식을 접하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송신한다. 텍스트와 이미지 너머로 상대방을 가늠해야 하며 심지어 자연적인 것조차 인공의 체를 통해 다시금 매개한다. 따라서 누군가 현재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그것의 현재성 및 인공성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기술과 매개 작용에 관한 서술이 필요하다. 어느새 우리는 기술에 의해 매개된 인공적 현재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술 매체를 이용..
요즘 번화한 거리를 걷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신기한 풍경이 있다. 마치 수년 전 SF 영화 속에서 제시되었던 미래의 도시 모습처럼 거대한 빌딩의 외관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이 새로운 기술-미디어에 의해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역 앞 빌딩에도 설치되어 있는 대형 LED 스크린은 '미디어 파사드' 또는 '미디어 캔버스'라 불리우 는데 과거 공익 광고 및 기업의 광고판으로 사용되었던 전광판이 이제는 미디어아트를 담아 내는 새로운 매체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건축물과 결합된 이러한 방식으로부터 미디어아 트는 대중들에게 스며들고 있으며 동시에 도시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건축물을 비롯하 여 버스정류장과 지하철 역사 같은 이동을 위한 장소조차도 비워져 있는 공간을 찾기가 어 려..
2018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알고리즘 소사이어티 : 상호-감시의 시대” 유원준 (2018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총감독) “통제된 정보로부터의 사회 변혁의 좌절, 단절에 관한 경험은 다분히 하나의 지역적(광주의) 특성으로 매몰될 수 없는 우리의 근대를 관통하는 선명한 기억이다” 근대의 통제된 시-공간은 정보의 편중 현상을 만들어냈다. 통제로부터 은폐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자유였고 민주적 이데올로기였으며, 사회적 변혁의 물결이었다. 다만 그 방법이 매우 직접적이고 폭력적이었기에 이내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시스템은 해체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맥락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1975년 출간한 을 통해서도 감지되는 내용이다. 인간이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규율사회’에 관한 ..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래서 그 누구도 하지 않는 말들 과거로부터 경계를 구분해오던 그리하여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강은 그 자체로 특정 흐름의 단절을 의미하거나 역설적으로 그것의 이음 자체를 지시한다. 우리의 문명을 가능케 한 생명의 물줄기이자 죽은 이들이 건너야 하는 생과 사의 갈림길로서의 강, 신화와 성경에서 강(물)을 메타포로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 기인한다. 가령, 성경에 등장하는 요단 강(Jordan River)은 레바논 북쪽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여 팔레스타인을 종단하고 최종 종착지인 사해를 연결하는 거대한 물줄기를 지칭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의 동편 경계를 이루는 요단 강은 죄를 씻는 곳이요, 죄의 세계에서 천국으로 건너가는 길목이다. 그리스..
홍티아트센터, 엄정원 작가 개인전 도처에 존재하는,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환상의 섬이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사람들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섬이다. 섬의 실체를 파악하는 작업에 착수해보려 한다. 매일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또한 기상 조건이 허락할 때에만 보이는 섬이기에 이러한 환상이 증폭되고 있는 까닭이다. 구전 설화는 대략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진다. 실체에 가까이가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현상이 불쑥불쑥 우리의 삶 속으로 침투하게 된다면 현상은 어느새 일루젼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다만 이 섬의 실체가 설령 환상 속의 그것과 다르더라도 실체가 환상을 오염시킬 수는 없을 듯하다. 그러기에는 환상에 관한 사람들의 믿음이 굳건하며 따라서 현실을 마주하는 일 조차 쉽사리 시도되지 않기 때문..
듣.보.잡(음)을 위한 변명들 : 전형산 작가 개인전 0. 최근 넷 상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자주 사용되는 ‘듣.보.(잡)’이란 용어가 있다. 풀이하자면 ‘듣도(듣지도)’, ‘보도(보지도)’ 못한 ‘무언가(이하, ‘잡’ 설명 생략)’란 것인데, 그만큼 존재감이 없는 혹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것 (혹은 사람)들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우스갯소리로 사용되는 용어인지라 이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그 뜻풀이를 곰씹게 되곤 하는데 아마도 이와 같은 시대적 조어들이 대중의 혹은 현실의 인식을 적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듣보잡’은 말 그대로 현실에서의 존재성의 조건으로 가시/가청 영역에서의 일종의 사건을 전제한다. 즉, ‘들리거나’, ‘보여야’ 그..
21세기,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아날로그의 영토를 마침내 완전히 정복했다. 숫자로 구성되는 신속하고 정확한 디지털의 체계는 놀랍게도 아날로그의 감성적 영역까지 산술적인 수치로 환산할 수 있었고 이전의 ‘디지로그(Digi-logue)’와 같은 정서적 마스크도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황에까지 도달했다. 아날로그와의 대립적 구도에서 언급되던 감성과 이성, 연속과 분절 등의 각 기술들의 정체성은 분절된 것들을 끊임없이 이어붙인 디지털의 미덕으로 또한 빅 데이터의 활용을 통해 정감어린 감정마저도 정확한 값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디지털의 신묘함으로 수렴되기에 이르렀고 아날로그의 흔적은 매니아들의 향수어린 시선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현재의 기술 환경은 기본적으로 디지털이라는 유전인자를 전제한다. 긍정적으로 ..
“가상현실은 ‘궁긍적인 공감 기계’이다. 이를 통한 경험들은 다큐멘터리보다 더욱 진하다. Virtual reality is the 'ultimate empathy machine.' These experiences are more than documentaries” _Chris Milk 정연두의 는 2014년 아트타워 미토(Art Tower Mito)에서의 개인전 “Just like the road across the world”에서 공개된 작품으로 원전으로 폐허가 된 미토 지역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실제 마을을 돌아다니며 16톤 가량의 각종 폐기물들(부숴진 욕조, 멈춰버린 시계 등)을 전시장의 33m 가량의 복도를 제작하여 설치해 놓았다. 관람객들은 이러한 폐기물들이 늘어서 있는 복도를 ‘..
중력은 우리의 실체를 보장한다. 여기에서의 실체란 결국 우리의 과학적 원리가 입증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인식하는 주요한 물리적 법칙이 상정되는 기반이 된다. 중력에 의해 우리의 시공간이 파생되거나 혹은 시-공간의 휘어짐에 따라 중력이 설정되는 과학적 개념들은 결국, 중력과 시-공간,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의해 규정되는 우리의 현실적 차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러한 중력으로부터 발생하는 환원적 사유는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들의 존재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하이퍼 디멘션 Hyper Dimension’의 전시작이자 공연의 환경으로 기능하는 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관람자에게 가상과 현실의 주요한 개념적 차원을 경험케 한다. 영상이 투사되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여러 겹의..
2054년, 인류는 각종 첨단 미디어로 점철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는 그 자체로 상호작용적 미디어가 되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길거리의 전광판은 보행자의 신원을 인식하여 그에게 필요한 광고를 디스플레이할 뿐만 아니라 그의 동선을 추적하기도 한다. 이는 보행자의 움직임에 의해 변화하는 거리 풍경과 첨단 미디어를 통해 그들을 통제하는 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제시한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SF 영화에서 제시된 미래의 모습처럼 미디어로 구성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마도 실현 가능성 및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미디어에 의해 구성되고 있으며 동시에 미디어에 의존하고 있..
1. 들어가며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학자인 이합 하산(Ihab Hassan)은 20세기에 이르러 과학기술적 의식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발생했으며, 이러한 탄생을 위해 컴퓨터를 비롯하여 우리가 소유한 다양한 매체가 기여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의 이러한 평가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의식 수준이 모더니즘적 절대성에서 보다 초월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술 또한 이러한 변화에 있어 예외는 아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넘어 뉴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술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변적이고 다원적 형태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예술은 자신의 개념을 직접적 감각으로 표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매체의 표현 능력을 확대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 예술은 그러한 매..
1. 전위적 활용에서 전방위적 침투로, 미디어아트의 전개 각 시대별 아방가르드는 항상 존재해왔다.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은 단순히 20세기 초의 예술 운동만이 아니라 동 시대의 예술 흐름을 넘어 다음 세대의 예술을 준비하는 움직임으로서 존재하여 왔다. 다만 생각해 볼 지점은 과거로부터, 특히 190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에게 있어 예술과 과학 기술의 관계는 그 위상과 비중을 달리하며 항상 문제의 중심부에 머물러 왔다는 사실이다. 들뢰즈는 새로운 사유와 개념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상상력 혹은 감성이 개념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는데, 예술이 취한 전략들을 살펴보면 스스로의 개념 종속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미디어들을 적절히 사용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은 예술의 면모를 지속적으로 ..
요즘 번화한 거리를 걷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신기한 풍경이 있다. 마치 수년 전 SF 영화 속에서 제시되었던 미래의 도시 모습처럼 거대한 빌딩의 외관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이 새로운 기술-미디어에 의해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아 보자면 서울역 앞 빌딩에 설치된 거대한 LED 미디어 스크린을 꼽을 수 있겠다. '미디어 파사드' 또는 '미디어 캔버스'라 불리우는 이 설치물에는 '미디어아트'라 불리우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과거, 미술관 혹은 갤러리에서 감상하던 예술 작품을 이제는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에도 수 많은 예술 작품들이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디어아트는 미술관 내에서만 볼 수 있는 제한된 성질의 예술이 아니..
미디어아트는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굳이 부연하자면 미디어아트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에 비하여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미디어에 둘러쌓여 살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로 수식되던 새로운 예술은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침투하여 더 이상 그들을 특별하고 새로운 무언가로 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물론 미디어아트는 기술적 진보가 투영된 미디어를 이용하여 과거의 예술이 지니지 못한 새로운 경험의 장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은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 우리의 문화-사회 전반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미디어아트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며, TV 광고나 쇼 프로그램에서도 미디어아트의 요소들이, 그들이 행했던 역사적 실험들이 차용되어 소개된다. 뉴미디어 아트 작가이자 ..
0. 대안영상문화의 장,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입버릇처럼 ‘영상세대’라는 말로 그들의 정체성을 함축해서 표현하곤 한다. 이러한 용어로서 그들을 지칭한 까닭은 과거 텍스트에 기반한 미디어를 넘어 영상 미디어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또한 창작할 수 있는 시대적-기술적 요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그들은 정말 ‘영상세대’로서 기능하고 또한 유희하고 있는가? 다소 광범위한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위의 용어들이 겉만 번지르르한 마케팅적 의미로서만 이해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물론 소비의 양상으로 보자면 분명 넘쳐나는 영상물이 유통되고 있기에, 그러한 해석들이 사실상 어느정도는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상을 만드는 작가들의 현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러..
1.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넘어 뉴 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술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변적이고 다원적 형태로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은 경험의 요소를 직접적 감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매체의 표현 능력을 확대시켜 왔다. 그러나 현 시대의 예술은 그러한 매체, 특히 새로운 기술-매체들을 좀 더 적극적 형태로 활용하여 자신의 경계를 확장한다.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적극적인 매체의 사용은 장구한 역사를 거쳐 구축된 예술의 개념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을 최근에 와서야 두드러지는 경향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모더니즘은 문화-사회적 측면에서 테크놀로지를 심미화하려는 경향을 보였었고, 소비에트 구성주의, 데 스타일과 바우하우스에 이르..
포이에르바하 Ludwig Feuerbach는 19세기 중반, 당시 사회의 모습에 관하여 “사물보다 형상을, 원본보다 복제를, 현실보다 표상을, 본질보다 가상을 선호”한다고 언급하며 무한한 권위를 지닌 이미지의 시대를 예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예고는 한 세기를 넘어 디지털 이미지로 점철된 현재의 시대에 이르러 더욱 유효해 진 듯 보인다. 왜냐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그 근본적 체질 자체가 가상적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징후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환경적 요인에서 관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즐겨 시청하는 TV프로그램을 살펴보자. 그들은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이상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역설적 상황을 설정하는데, 이러한 다소간의 억지 설정을 시청자들은 쉽게 ..
, Henry Rousseau, Oil on canvas 51" x 6'7" (129.5 x 200.7 cm), 1897 1. 예술 관념에 대한 오해 예술 작품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관념은 이미 깨진지 오래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변한 것도 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우리는 ‘미술’로 정의되는 아름다운 기술 뿐만 아니라, 놀라움-흥미로움-슬픔-떨림 등등의 다양한 감각에서도, 또한 그러한 감각을 유발하는 기술들에도 예술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최근에 이르러서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이름 하에 굳이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 개념까지 소급하지 않더라도 예술 개념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
Assembling for Eternity 1/ urethane rubber on stainless steel / 34x34x48 (cm) / 2008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텅 빈 연쇄고리라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언급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 욕망의 대상이 실제로는 허구이며, 그러기에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한 기표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욕망이란 개념은 과연 그러한가? 번지르르한 껍데기만을 지닌 채 우리 주변에서 실재하고 있지는 않는가? 김병호의 작업은 이러한 허구적인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것의 판타지를 실재적으로 재현한다. 그는 차가운 금속을 조립하고 말쑥하게 마감하여 하나의 형상을 만..
“앤디 워홀에 관한 모든 것을 알기를 원한다면, 바로 내 그림들과 영화들과 나의 표면을 봐라. 거기에 내가 있다. 그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 : Andy Warhol 토마스 크로우(Thomas Crow)는 워홀(Warhol)의 전기 의자 이미지들로 구성된 작품을 마주하며 그를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또한 미국적 상처에 주목하는 작가로서 분석하였다. 이러한 그의 분석은 당시의 팝 아트, 그리고 워홀에 대한 일반적 분석 – 대상을 탈 상징화하는 것 – 과는 노선을 달리한다. 그러나 워홀은 위의 언급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과 같은 말을 잇는다.[1] “죽음 연작을 하는 데에 대한 심오한 이유란 없었으며, 그들이 시대의 희생자였던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그것을 하는 데에 대한 이유는 전혀 없었으며, 단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