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Hyper Dimension / 이중적 작동기재 : 중력과 반중력, 그리고 무중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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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r Dimension / 이중적 작동기재 : 중력과 반중력, 그리고 무중력

yoo8965 2015. 3. 24. 16:27


중력은 우리의 실체를 보장한다.

   여기에서의 실체란 결국 우리의 과학적 원리가 입증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인식하는 주요한 물리적 법칙이 상정되는 기반이 된다. 중력에 의해 우리의 시공간이 파생되거나 혹은 시-공간의 휘어짐에 따라 중력이 설정되는 과학적 개념들은 결국, 중력과 시-공간,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의해 규정되는 우리의 현실적 차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러한 중력으로부터 발생하는 환원적 사유는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들의 존재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하이퍼 디멘션 Hyper Dimension’의 전시작이자 공연의 환경으로 기능하는 <Beyond the Gravity>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관람자에게 가상과 현실의 주요한 개념적 차원을 경험케 한다.

   영상이 투사되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여러 겹의 스크린을 통해 작품은 나타난다. 관람객은 얇은 스크린 막으로 가로막힌 어둠 속을 더듬어가며 영상이 보이는 숨겨진 공간으로 찾아가야 한다. 이 과정은 작품을 경험하기 전의 관람객의 감정을 유도하는 사뭇 흥미로운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사물이 보이기 전까지 인식-비인식의 과정을 거쳐 종합적 사고로서 나아간다. 이는 빛에 의해 규정되는 사물이 어두움에 가려 그 차이를 잃게 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빛에 의해 구성되는 사물의 차이는 전제되지 않으며, 관객들은 이로부터 역설적인 이중의 감정[불안한 기대감]을 부여받은 채 스스로의 인식적 과정으로부터 촉발되는 가상적 사유를 경험한다. 또한 이는 우리의 시각 중심적인 사유와 인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각으로 대표되는 현실 세계의 지각-감각-운동은 더 이상 작품이 제공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작동 기재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 작품을 경험하는 관객들은 오감을 넘어선 육감[Six Senses, 六感]의 세계로, 감각들이 결합되는 공감각의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예술 작품은 환경적 맥락[구조]과 영상[내용]이 결합되어 제시되는 작가들의 메시지이다. ‘중력을 넘어서 Beyond the Gravity'라는 작품의 제목은 선행 과정을 거친 이후 관객에게 의미를 되새김질 할 수 있는 기회로서 열리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중력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그 자체로 성립하게 하는 매우 근원적인 힘이자 동력이다. 따라서 작품은 현실과의 관계 [현실에 속하거나 벗어나거나] 속에서 그 의미를 지닌다. 어둠은 사물의 분별을 어렵게 만드는 그래서 사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며 그러한 어두움 속에서 작품은 빛 그 자체로서 인식 불가능에 빠진 관객에게 구원의 힘으로 다가선다. 구원의 계기인 빛으로서 작품은 근본적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나 빛이 현실을 인식케 하는 주요한 작동기재가 될 수는 있지만, 현실 자체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기에 관객은 작품을 구성하는 환경과 그것이 제공하는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작품의 영상은 구체적인 그리고 구상적인 형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만, 중력을 탈피하는 계기로서, 그리고 관객에게 무중력이라는 현실과의 괴리 상태를 경험케 하는 기능으로서 존재한다. 우리의 물리적 환경은 철저하게 중력의 영향권 아래에 놓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작품이 의도하는 중력을 넘어선 환경은 당연하게도 현실을 넘어서는 그 무엇으로 존재해야 한다. 중력이 없거나, 그것을 탈[脫]하거나 혹은 다른 중력권이거나. 흥미롭게도 중력은 시공간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에, 시간과 공간의 문제는 다시금 작품을 이해하는 주요한 요소로서 제기된다.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공간이 중력에 지배받는 것이 아닌, 공간의 문제에 중력이 의존한다고 설명한다. 최근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들은 이러한 과학적 지식을 잘 보여준다. 우주는 각기 다른 중력권을 형성하는 종합적 체계로서 등장한다. 이들을 항해하며 다른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것을 영화가 제공하는 판타지로서만 볼 수는 없다. 이러한 배경에는 충실한 과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공간의 문제가 결국 중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중력을 넘어서는 것은 현실의 시공간을 넘어서는 것이며, 일종의 가상현실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는 탈-중력화된 가상적 시공간의 세계로 진입한다. 아니 진입해야 한다. 적어도 이 작품이 의도하는 목적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가상 세계로의 진입과 동시에 철저히 현실의 요소를 재-매개하여 다시 꺼내놓는다는 점이다. 작품을 작동시키는 인터렉티브 오디오 비주얼[Interactive Audio-Video] 알고리즘은 현실 공간에 우주의 빛을 추상화한 듯한 증강적인 비주얼 영상을, 그리고 실재하는 소리들을 전자적인 노이즈 사운드로 변형하여 제시한다. 독일의 매체철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는 1800 ~ 1900년경의 기록체계를 분석하며 상상계[想像界, l'maginaire]에 속하는 요소들을 매체가 현실계[現實界, Ie réel]로 돌려놓는다고 언급한다. 실재하지만 파악하지 못했던, 그리하여 관념으로만 머물고 명증한 인식 체계 속에 들어오지 못한 이미지와 사운드는 이제 우리의 상상 영역이 아닌 매체에 의해 현실적인 영향력을 지닌 인식의 범주로 들어온다. 다만, 여기에 다시 매개됨에 의해 발생하는 변형과 왜곡이 침투한다. 현실은 현실이되, 순수한 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듯 현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변형된 현실, 증강된 현실이라는 이중적 속박은 자연스레 현실에 대한 탈-구축적인 방식으로 기능한다. 관객들은 작품을 통해 현실에 덧씌워진 가상의 굴레를 체험하며 자신이 서 있는 현실 세계를 무의식적으로 해체하고 다시 재구축한다.

   또한, 작품을 구성하는 영상의 구조를 살펴보면, 작품은 시작과 끝이라는 선형적 내러티브로 구성되지 않는다. 물론, 영상을 제작한 작가의 입장에서는 순차적인 시퀀스를 의도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것은 관람객의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면 속에서는 차원의 기표들[점, 선, 면]로 구성된 기하학적 이미지들이 등장하며 서로 다른 운동성을 지닌 채 작동된다. 관객들은 무중력 상태라는 비현실적 환경에서 비선형적 기표들의 우주를 유영하게 된다. 따라서 앞서 제기한 이중적 속박은 연속이 아닌, 동시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선형적 시간의 한계를 넘어 그것들이 중첩되어 현상되는 증강된[Augmented] 차원의 세계가 제공된다. 공간을 그 의미가 불투명한 비장소적 공간으로 해체시키고, 시간을 연속의 개념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이러한 환경은 우리의 현실 세계와는 구별되는 다른 차원의 것으로 간주된다. 이제야 <Beyond the Gravity>라는 작품명은 그 의미를 획득한다. 그것은 결국 작품이 우리의 현실의 차원을 더욱 강화시키거나, 혹은 그것에서 탈피하게 함으로서 중력을 그리고 차원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인식의 세계로서의 의미로 존재하게 만든다. 



인천아트플랫폼, <Beyond the Gravity> 전시/작가 비평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