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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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대중에게 스며들다

yoo8965 2013. 11. 23. 15:31


2054년, 인류는 각종 첨단 미디어로 점철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는 그 자체로 상호작용적 미디어가 되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길거리의 전광판은 보행자의 신원을 인식하여 그에게 필요한 광고를 디스플레이할 뿐만 아니라 그의 동선을 추적하기도 한다. 이는 보행자의 움직임에 의해 변화하는 거리 풍경과 첨단 미디어를 통해 그들을 통제하는 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제시한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SF 영화에서 제시된 미래의 모습처럼 미디어로 구성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마도 실현 가능성 및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미디어에 의해 구성되고 있으며 동시에 미디어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소통하고 마주하며 유희하고 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전하고 있는 기술-미디어를 예술에 응용하는 것은 예술에 있어서는 당연한 귀결이다. 새로운 기술은 과거 예술 작품으로는 불가능한 비젼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과거로부터 새로운 매체를 예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왔으며 이를 통해 사회의 모습을 반영했다. 예술 영역의 한 흐름으로 제시되던 미디어아트의 현재가 미래 사회의 청사진으로 활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디어 이론가 빌렘 플루서는 ‘디지털 코드로서 탄생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공간 및 시간 경험이다.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마찬가지로-모든 종래의 경험들을 부정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과거로부터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세상은 변화해 왔다. 철도는 기존 시-공간에 관한 인식을 바꾸어버렸고, 사진은 복제의 기능으로부터 예술이 지닌 원본성과 아우라의 개념을 소급시켰다. 자연스럽게 각 시대의 예술도 그와 동기화된 감성과 행위를 발생시켰는데, 큐비즘은 사진 기술에 조응하여 사실적 회화공간을 파괴하고 대상을 파편화시켰으며, 비디오아트는 미술의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광활하게 터놓았다. 특히 플루서의 언급처럼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종전의 예술 개념들을 근본적 차원에서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미디어아트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공감각적 체험을 가능케 하였다. 앞서 언급한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가 생활하는 거리 곳곳에서도 미디어와 결합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도들이 과거에는 예술 작품으로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해 광고계에서 주목을 받은 삼성의 3D 디지털 TV 광고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증강 현실적 체험을 보여주는 미디어아트 식의 광고였다면, 해외의 유명 가수들의 쇼케이스에서 나타난 무대 기술은 미디어를 활용한 퍼포먼스 아트에서, 도시에서 마주하는 건물의 LED 외관을 통한 콘텐츠들은 이미 미디어아트 결합된 건축 구조물에서 그 원류를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본 글에서는 흥미로운 몇몇 사례들과 함께 미디어아트가 얼마만큼 우리의 생활 속으로 침투하고 있는지를 관찰해보고자 한다.

우선 눈에 띄는 생활 속 미디어아트는 광고 분야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삼성의 제품 광고 예와 같이 TV 속 영상 광고에서도 미디어아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만, 오히려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라고 불리우는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digital information display, DID)를 이용한 옥외광고는 훌륭하게 미디어아트의 대중화를 느끼게 만든다. 서울 강남대로 구간에 설치된 '미디어 폴'은 미디어아트 작품과 생활 정보를 동시에 만나볼 수 있게 만든 설치물이다. 차도면과 인도면에 각각 설치된 LED와 LCD 디스플레이 창을 통해 보행자들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교통 및 지역정보 등의 인포메이션 데스크로서 미디어 폴을 활용한다. 반면,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의 거대 스크린은 영상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거대한 도시스크린(Urban Screen)의 일종인데 광고판으로서의 용도가 아닌 예술 작품을 위한 공공 스크린으로 기능한다.

위의 시도들이 단순히 시각적 디스플레이 기술만을 사용하여 미디어아트의 모니터 역할 만을 담당했다면, 보다 더 과감하게 건축과 예술의 결합을 꾀한 미디어 구조물도 찾아볼 수 있다. 브뤼셀의 덱시아 타워는 보행자와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한 미디어 파사드이다. 보행자들은 건물을 바라보며 자신이 건물 외벽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패턴을 선택할 수 있다. 건축물이 하나의 스크린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적 미디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영국의 미디어아트 에이젼시인 UVA(United Visual Artsits)와 DNA(Double Negative Architecture)는 좀 더 과감하게 건축과 미디어아트를 결합시킨다. UVA는 LED로 제작된 큐브 형태의 건축 설치물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사운드와 연동하여 빛을 발광시키는 구조물인데, 하나의 미디어아트 작품이자 실험적 건축물이었다. DNA는 건축 구조물의 무대를 가상 세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오프라인 공간의 기후 환경 조건을 바탕으로 증강 현실적 건축을 선보였다.

미디어아트는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러한 미디어-파사드 혹은 건축물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예술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로 유명한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은 2006년 자신의 패션쇼에서 홀로그램을 사용한 피날레를 통해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인 적이 있다. '홀로그래피 아트(Holography Art)'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미디어아트는 최근에는 대중 가수들의 쇼케이스 현장에서도 종종 활용되고 있는데, 2011년 프랑스 칸에서 열린 NRJ 뮤직 어워즈에서 최우수 해외 그룹/듀오(Groupe/Duo International) 부문을 수상한 '블랙 아이드 피스(The Black Eyed Peas)'는 자신들의 신곡 <The Time>을 공연하며 참석하지 않았던 두 명의 멤버들을 홀로그램으로 출연시켜 마치 네 명의 멤버 모두가 무대에 오른 것 같은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였으며, 빌보드 뮤직 어워즈(Billboard Awards 2011)에서는 미디어아트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미국 팝 가수 '비욘세(Beyonce)'의 경우, 자신의 동작과 프로젝터에 의해 투사된 미디어 영상을 연결시켜 무대와 가수가 일체화된  퍼포먼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시도는 미디어아트가 지닌 가상적인 속성에서 비롯된 것인데, 실제가 아닌 가상 이미지를 무대에 투사하여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들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공연과 연극, 뮤지컬 등의 다른 예술 영역에서도 최근 융합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작년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 기획공연으로 상연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나 <마이크> 등의 공연은 미디어아트와 결합하여 새로운 공연의 모습을 제시하였다. 예전 조명과 무대 미술이 담당했던 영역을 미디어아트가 담당하면서 기존 공연과는 다른 모습들을 선보였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경우, 주요한 스토리 진행 및 무대 연출이 영상으로 대체되었으며, <마이크>는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이미지로 만들어진 배경 및 음향 효과들이 연동하여 총체 예술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볼 수 있었다.

레인하드 브라운(Reinhard Braun)은 “모든 미디어는 인간의 상호작용을 형상화한다. 마치 메타포처럼 그것들은 경험을 변형시킨다. 메타포들과 같은 미디어 작업은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을 미리 구축해왔다”라고 언급한다. 미디어아트는 이러한 미디어의 속성을 강력한 자신의 특성으로 활용해왔다. 또한 이러한 특성은 기존의 예술 장르와는 달리 대중 친화적인 동시에 상업적 가능성을 전제한다. 따라서 미디어아트는 예술의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대중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미술관과 같은 예술 공간에서만 미디어아트를 감상하지 않는다. 미디어아트는 매일 시청하는 TV 속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심지어는 주머니 속에서도 마주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 2013년 8월 현대모비스 사보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