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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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예술이 열어가는 창조적 미래

yoo8965 2013. 11. 23. 15:28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테오얀센(Theo Jansen)의 <해변동물(Strandbeest)>



예술과 게임은 창조적 기술로 귀결된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넘어 뉴 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술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변적이고 다원적 형태로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은 경험의 요소를 직접적 감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매체의 표현 능력을 확대시켜 왔다. 그러나 현 시대의 예술은 그러한 매체, 특히 새로운 기술-매체들을 좀 더 적극적 형태로 활용하여 자신의 경계를 확장한다.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과도한 매체의 사용은 장구한 역사를 거쳐 구축된 예술의 개념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을 최근에 와서야 두드러지는 경향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모더니즘은 문화-사회적 측면에서 테크놀로지를 심미화 하려는 경향을 보였었고, 소비에트 구성주의, 데 스타일과 바우하우스에 이르는 다양한 아방가르드 운동의 작업과 선언에서 이러한 기술주의적 경향은 선명하게 나타났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르네상스 시기에서부터 예술과 과학의 공유 지점에 관한 실험들이 있어왔으며, 기술은 예술이 지닌 주술적이고도 마법적인 장막을 제거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었다.

그럼 게임의 경우는 어떠할까? 게임도 예술처럼 자신의 표현 영역의 확장을 위해 기술을 필요로 하였을까? 만약, 게임의 전사를 우리가 과거로부터 즐겨 행해왔던 놀이문화에서 찾아보자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게임은 과거 놀이 문화를 전자적 세계 속으로 가져온 사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과 비교하여 보자면, 게임은 기술적 요소가 그것을 구성하는 기본 전제로 기능한다. 게임은 전자 스크린을 기반으로 허구적 세계를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해왔으며 이러한 게임의 기술 의존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예술과 게임은 새로운 기술을 자신의 기본 구조로 또는 표현 영역의 확장을 위해 활용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예술과 게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문화 사회의 영역들이 기술에 의해 발전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예술과 게임을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여타의 영역들과는 다르게 두 장르의 경우 기술의 기능적인 면 이외의 부분에서 창의적인 활용 방식을 찾아내는 데에 있다.



창의적인 기술 해석과 패러디의 장, 예술과 게임



TV와 비디오를 자아 성찰의 매체로 변화시킨 백남준의 <TV 부다>


예술은 기술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면서부터 기술이 가진 이면에 집중했다. 과거 주어진 재료적 측면에서만 기술 매체를 사용했던 예술은 백남준 이후 제창된 비디오아트와 미디어아트에 이르러 기술이 가진 다른 가능성, 즉 기술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지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차별적 활용 방식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남준의 경우를 살펴보면, TV와 비디오라는 매체를 동양적 사고관과 결합시켜 시,공간을 초월하는 성찰의 매체로 전이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을 창조하며 문명을 발생시키는 게임 윌 라이트(Will Wright)의 <스포어(Spore)>



게임의 경우, 예술과는 걸어온 길이 다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은 예술과 달리 기술이 게임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자 근원적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게임은 기술이 가진 능력의 극한을 추구하며 기술이 가진 능력을 최대치까지 활용해왔다. 최근까지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고 있다. 최신의 컴퓨터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현재 최고 사양의 컴퓨터 스펙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술에 의존했던 게임의 경우에도, 기술을 색다른 차원에서 활용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유명한 게임 개발자 윌 라이트의 작품 <스포어>의 경우, 중요한 것은 게임이 제공하는 그래픽 기술이 아니다. 이 게임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하여 스스로 증식할 수 있는 캐릭터와 환경을 구성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구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창조된 게임 속 세계의 모습이 우리가 만들어온 사회의 구성 요소와 문화적 포인트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비디오 게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 세계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가상의 세계였다. 그러나 최근 게임은 우리의 실생활 속으로 침투한다. 우리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이 게임의 직접적인 관계망으로 이입되는가 하면, 현실 세계 속에 전자 이미지를 띄워놓고 증강 현실적 상황을 게임 환경으로 구현한다.

예술과 게임이 만나는 지점도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예술은 기술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며 유희적 속성 또한 예술의 의미로 포괄한다. 반면 게임은 역으로 유희성에 집중하여 기술이 가진 특성을 활용한다. 때문에 예술과 게임은 기술을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지점에서 서로의 속성을 공유한다. 문제는 어떻게 기술을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각 장르의 고유한 영역에 결합시킬 수 있는가이다. 매우 어려운 선결 조건임에는 분명하지만, 전망이 그리 어둡진 않다.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할수록 예술적이면서 유희적인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산업과 콘텐츠 2013년 7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