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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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뉴욕 / 예술과 기술, 게임에 관한 짧은 보고서

yoo8965 2014. 8. 16. 22:00


2013년. 뉴욕 / 예술과 기술, 게임에 관한 짧은 보고서
: 실험적 뉴미디어아트와 알고리즘-게임을 중심으로




뉴미디어아트, 게임과의 연결을 시도하다


   현대 예술의 흐름을 관찰하다보면, 기술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 즉 뉴 미디어 아트에 대한 현대 예술의 소극적 수용 형태를 마주할 수 있다. 사진과 영화의 등장에도 예술은 쉽게 그 문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사진은 예술의 기술적 지지체로서, 영화는 스스로의 해체를 전제한 확장적 형태로서 예술과 극적인 조우를 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마도 새로운 기술 매체와 예술과의 융합은 시간을 두고 숙성시켜야 하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기술 매체에 기반한 비디오 게임과 예술의 연결 지점을 논의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국내의 상황은 좀 더 특이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게임이 유해한 매체로서 제도적 장치를 통해 통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술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더욱 소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의 게임 산업이 전 세계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이러한 흐름은 다소 아쉬운 측면을 지니고 있다. 물론, 게임을 법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뒤집어보면 게임이 지닌 강한 몰입성에 관한 강한 긍정이 수반되어 있다. 그러나 게임의 몰입성과 가상성이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의 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은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게임 연구자인 프란스 마이라(Frans Mayra)는 디지털 게임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원인으로 세 가지 항목을 언급하는데, 첫째로 디지털 게임을 문서화하고 보존할 수 있는 아카이브가 없으며 플레이할 수 있는 기기조차 존재하지 않는 점, 둘째로 디지털 게임의 급격한 발전 상황에 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부족했던 점, 마지막으로 대중문화의 위계질서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하는 게임의 사회적 위상 문제를 언급한다.[각주:1] 마이라의 언급처럼 국내의 경우, 게임에 관한 체계적 연구도 부족한 상황이며, 사회적 인식과 그 위상에 관한 접근 자체가 전무하다. 또한 규제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유해 매체로서 인식되다 보니 이러한 상황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과 게임의 연결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해외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현대 예술의 주요한 흐름을 앞서 제시하고 있는 뉴욕의 경우를 살펴보면 모마(Museum of Modern Art)를 필두로 다양한 기관과 채널을 통해 게임과 실험적 현대 예술의 융합 지점에 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모마의 경우, 2012년 14개의 비디오 게임을 자신들의 콜렉션에 추가하면서 보다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모마와 더불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시도하는 아이빔(Eyebeam), 뉴 뮤지엄(New Museum) 및 뉴욕게임포(NYC Game Forum)과 미디어 대안 공간인 미디어노쉐(MediaNoche)를 방문하여 최근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시도들과 더불어 게임과 예술의 연결 지점을 탐색하고 컴퓨터 아트의 선구자이자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맨프래드 모어(Manfred Mohr)를 통해 이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작업에서 구현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게임을 수용한 모마의 아카이브



   뉴 미디어 아트의 ‘새로움’은 단지 최신 기술 미디어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디어아트는 기존에 존재했던 기술-미디어를 전복시키고 우회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게임은 훌륭한 예술을 위한 환경으로서 혹은 그 자체로 예술적 목적을 담아내는 틀이 될 수 있다. 모마는 세계의 현대 예술을 리딩하는 미술관이자 아트센터로서 다양한 예술적 시도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아카이빙하고 있다. 게임을 자신들의 아카이브에 포함시킨 모마의 결정은 따라서 단순한 흥미 위주의 결정의 차원을 넘어 게임이 예술과 어떠한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정표로서 인식되고 있다. 모마의 건축, 디자인 파트의 수석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는 게임을 모마의 컬렉션에 포함시킨 이후, 2013년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된 <어플라이드 디자인 Applied Design>전을 통해 비디오 게임을 전시하였다.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혹은 게임들)은 게임의 개략적 역사와 더불어 어떠한 지점에서 현대 예술과 연결될 수 있는지 관찰해 볼 수 있게 만들었는데, 그녀는 예술과 디자인의 융합적 관점에서 상호작용적 디자인으로서의 게임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예술에 있어서도 고급과 저급을 나누는 기준들이 새로운 것을 예술의 범위 안에서 이해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한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일들은 역사적으로 반복하여 나타나고 있는 일임을 분명히 했다. 그녀는 게임을 콜렉션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 (게임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큐레이터 등)의 조언을 구하고 그 자체의 성격 뿐만 아니라 전시-소장-보존의 기준들도 함께 고려하였음을 밝혔다.

   이러한 모마의 시도는 2012년 3월 80개 이상의 게임을 소개했던 스미소니언 미술관의 <비디오 게임 예술 The Art of Video Games> 전시와 같은 대규모 게임 전시 및 미국 전역에서 심사를 통해 선발된 문화 예술 단체와 예술인에 지원금을 전달하는 NEA(국립 문화 예술 진흥 기금 :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지원 대상에 게임이 포함되었던 사실과 함께 예술과 게임의 융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건이 되었다. 또한 뉴욕게임포럼과 같은 단체들은 예술가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이 모여 게임에 관한 진지하고도 흥미로운 접근들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전통적인 미디어 교육 기관이자 센터인 ZKM(Zentrum für Kunst und Medientechnologie Karlsruhe)은 지난 2013년부터 영구 전시의 하나로 게임 플랫폼을 개관하였다. 1997년 오픈한 이후, 수많은 컴퓨터 게임을 소개해 온 ZKM은 게임이 디지털화된 우리의 삶이 게임에 의해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놀이의 실험적 형태로서 게임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눈여겨 볼 만한 시도 중의 하나이다.



지속적인 실험의 장. 미디어아트의 영역을 확대하다



   모마가 보다 안정적인 형태로 새로운 예술의 모습을 소개하는 기관이라면, 뉴욕의 아이빔과 뉴 뮤지엄은 보다 더 실험적인 예술 현장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 뉴 뮤지엄은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구축해왔던 비디오아트 아카이브를 소개하고 있었다. 비디오아트의 경우, 초기에 제작된 작품들의 경우, 그 보관과 재생이 용이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뉴 뮤지엄은 이러한 파트에 대한 지속적인 아카이빙 플랫폼으로 기능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한 예술과 기술 그리고 디자인 인큐베이팅 파트의 디렉터인 줄리아(JULIA KAGANSKIY, Director of Incubator for Art, Technology, and Design)는 기술에 기반한 예술과 디자인의 융합에 관하여 강조하며 뉴 뮤지엄이 이후 진행할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과 산업계와 예술계를 연결할 다양한 계획들도 들려주었다.


   앞서의 기관들이 전시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면, 부룩클린의 아이빔은 작가 레지던시에 기반한 다양한 워크숍/이벤트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관이다. 1997년 오픈한 아이빔은 비영리 예술 센터로서 매우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예술가/팀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방문했을 당시, 아이빔에서는 역시나 흥미로운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국내에서도 관심이 지대한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에 관하여 비디오 퍼포먼스 작가인 안톤(Anton Marini)과 인터렉티브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치카(Chika Iijima)가 열띈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안톤은 뉴미디어아트의 실험에 관하여 다소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프로젝션 맵핑과 같은 상업 영역과도 걸쳐있는 미디어아트의 실험은 경계를 구분하지 말고 (그것이 예술이건 아니건 간에) 확장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재미있었던 점은 워크숍을 진행한 두 작가가 단지 교육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닌, 현장과의 연결을 워크숍에 참가한 이들과도 공유하는 부분이었는데, 국내와 비교해 볼 때, 영역간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측면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교육과 예술 실험은 뉴욕 업타운 쪽에 위치한 미디어노쉐에서도 행해지고 있었다. 디렉터인 주디스(Judith Escalona)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뉴욕을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에 기반한 커뮤니티들을 지원하고 작가를 소개하는 역할을 수행해온 큐레이터이다. 그녀는 ‘기술을 통해 공동체에 힘을 주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언급하며 미디어노쉐의 프로그램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녀의 설명처럼 미디어노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로우 테크 미디어 워크숍부터 보다 전문적인 프로그래밍이 필요한 영역까지 다양한 교육과 전시를 매개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국내와 유사한 미디어아트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듯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했다. 국내의 경우, 관련 프로그램들이 미디어아트와 직간접적 관련을 맺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뉴욕의 경우, 다수의 프로그램들이 영역을 교차시켜 다양한 교집합을 만들어내며 일반인들에게도 그 문턱을 낮춰주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컴퓨터 아트의 선구자를 만나다




   뉴욕에서 경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건 중 하나는 최신의 예술, 기술적 실험들과 더불어 해당 장르의 대가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소간의 약속과 컨펌을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다수의 마스터들이 뉴욕의 곳곳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작업 활동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보다 깊은 예술 이해의 기회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필자의 경우, 컴퓨터 아트의 초기 작가 중 한명인 만프레드 모어(Manfred Mohr)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미디어아트가 지닌 역사적 맥락과 조우하는 동시에 현재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모어는 1959년부터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재즈 뮤지션과 페인팅 작가로서 활동했던 이력을 기반으로 컴퓨터와의 융합 작업을 시도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예술이 가진 추상성을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구현해오고 있으며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작업은 현재의 미디어아트 및 게임과의 연결 지점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 현재의 상황과 게임과의 연결성 등에 관한 답변 또한 들을 수 있었는데, 그는 게임과 예술, 특히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아트의 경우, 계산(caculation)에 의한 결과를 시뮬레이션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공통 지점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이러한 점이 예술과 게임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고 언급하였는데, 최근 미디어아트와 게임의 흐름을 보면 모어의 이러한 언급이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해당 장르의 정체성은 장르가 지닌 기능과 역할, 목적과 의도에 의해 재편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흐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예술이 행하는 실험에 있어 엄격한 경계를 만드는 일은 오히려 전체 예술의 개념을 약화시킬 수도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돌아오며

   2013년 뉴욕은 예술과 기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실험적 시도가 어떻게 다양한 대중들에게 혹은 예술인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물론, 그곳에서 접한 시도들이 동시대의 예술 흐름을 선도하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지만 보다 인상 깊었던 사실은 다소 난해하거나 실험적일 수 있는 예술적 시도를 수용하는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황당할 수도 있는 예술의 모습들을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이유는 아마도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예술의 역할과 기능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예술경영센터 VIA Project 기고글.



  1. Frans Mayra, An introduction to game studies : Gmes in culture, L.A & London: Sage, 2008, pp. 13-21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