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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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밖으로 나온 미디어 아트

yoo8965 2012. 1. 22. 20:38


 
요즘 번화한 거리를 걷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신기한 풍경이 있다. 마치 수년 전 SF 영화 속에서 제시되었던 미래의 도시 모습처럼 거대한 빌딩의 외관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이 새로운 기술-미디어에 의해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아 보자면 서울역 앞 빌딩에 설치된 거대한 LED 미디어 스크린을 꼽을 수 있겠다. '미디어 파사드' 또는 '미디어 캔버스'라 불리우는 이 설치물에는 '미디어아트'라 불리우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과거, 미술관 혹은 갤러리에서 감상하던 예술 작품을 이제는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에도 수 많은 예술 작품들이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디어아트는 미술관 내에서만 볼 수 있는 제한된 성질의 예술이 아니다. 미디어아트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보다 손쉽게 감상할 수 있는 대중 친화적인 예술 장르로 성장하고 있다.  




서울스퀘어에서 선보여진 줄리언 오피(Julian Opie) <걷는 사람들 Walking People>


 그렇다면, 미디어아트는 어떠한 속성을 지녔기에 과거 예술과는 다른 대중-친화적인 소통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미디어아트는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대중 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것으로서 책이나 잡지, 신문, 만화, 포스터, 음반, 사진, 영화, 라디오, 텔레비젼,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에의 파급효과가 큰 의사소통 수단의 형태를 빌려 제작된 예술의 형태를 지칭한다(네이버 사전 참조). 물론, 이러한 정의는 미디어아트가 지닌 소통의 측면이 면이 강조된 것이긴 하지만,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미디어아트의 모습을 보면 그리 벗어난 설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디어아트는 새로운 기술-미디어에 의해 점점 더 다양한 영역의 장르들과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를 떠올려보자. 앞서 언급했던 미디어 파사드 (미디어 캔버스)는 현재 국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건축물의 외관에 LED와 같은 조명기구를 통해 스크린으로 만들거나 영상을 투사하여 외벽에 이미지를 맺히게 하는 기술인 미디어 파사드는 다양한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소개하는 훌륭한 도시 스크린(Urban Screen)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영국 YBA출신으로 현대인들의 바쁜 발걸음을 간결한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소개한 '줄리언 오피(Julian Opie)' <걷는 사람들 Walking People>' 이나 르네 마그리트 작업을 모티브로 초현실적인 영상을 보여준 한국 작가 양만기의 <미메시스 스케이프Mimesis scape> 등의 작품이 소개된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는 위의 작품들을 개별적으로도 제어할 수 있는 LED 모듈을 통해 작품 고유의 분위기와 색을 구현하였고, 을지로 SK건물에 설치된 미디어채널 '코모(COMO)'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시민들이 걷는 도로와 인접한 스크린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지속적인 전시 및 작품을 선보여왔는데, 건물 1층과 2층 사이에 LED 패널로 이루어진 채널과 건물 내부의 천장과 기둥을 타고 흐르는 LED 패널, 150" 대형 LED 스크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년에 진행된 '나를 향한 응원'전의 경우, 시민들이 SNS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보내 직접 전시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단순한 관람 및 감상만을 추구했던 예술 작품이 아닌, 시민들과 소통하는 작품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미디어아트가 지닌 특성을 잘 보여주었던 시도였다. 이외에도 종로구 신문로의 금호아시아나 빌딩에 설치된 LED 스크린, 최근 송파구 문정동의 가든파이브에서도 이러한 미디어 파사드를 발견할 수 있다. 미디어파사드를 통해 제시되는 미디어아트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굳이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예술 작품을 일상 생활 속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최신의 기술을 예술과 접목해 소개한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미래 예술의 형태를 보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지난 해 코모(COMO)에서 진행된 '나를 향한 응원전' , 아이잭신, 스페이스 오페라가 소셜미디어와 미디어보드를 이용하여 제작한 <LOVE.SOS I, 2011, Single Channel Video, 200


건축물과 결합된 미디어아트를 선보인 UVA(United Visual Artists) <Origin>, 2011


   미디어아트는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러한 미디어파사드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예술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로 유명한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 2006년 자신의 패션쇼에서 홀로그램을 사용한 피날레를 통해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인 적이 있다. '홀로그래피 아트(Holography Art)'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미디어아트는 최근에는 대중 가수들의 쇼케이스 현장에서도 종종 활용되고 있는데, 작년(2011) 프랑스 칸에서 열린 NRJ 뮤직 어워즈에서 최우수 해외 그룹/듀오(Groupe/Duo International) 부문을 수상한 '블랙 아이드 피스(The Black Eyed Peas)'는 자신들의 신곡 <The Time>을 공연하며 참석하지 않았던 두 명의 멤버들을 홀로그램으로 출연시켜 마치 네 명의 멤버 모두가 무대에 오른 것 같은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였으며, 빌보드 뮤직 어워즈(Billboard Awards 2011)에서는 미디어아트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미국 팝 가수 '비욘세(Beyonce)'의 경우, 자신의 동작과 프로젝터에 의해 투사된 미디어 영상을 연결시켜 무대와 가수가 일체화된  퍼포먼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시도는 미디어아트가 지닌 가상적인 속성에서 비롯된 것인데, 실제가 아닌 가상 이미지를 무대에 투사하여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들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공연과 연극, 뮤지컬 등의 다른 예술 영역에서도 최근 융합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작년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 기획공연으로 상연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이크> 등의 공연은 미디어아트와 결합하여 새로운 공연의 모습을 제시하였다. 예전 조명과 무대 미술이 담당했던 영역을 미디어아트가 담당하면서 기존 공연과는 다른 모습들을 선보였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경우, 주요한 스토리 진행 및 무대 연출이 영상으로 대체되었으며, <마이크>는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이미지로 만들어진 배경 및 음향 효과들이 연동하여 총체 예술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볼 수 있었다.

미디어아트와 결합된 한국공연예술센터 연말 기획공연 <마이크>, 아르코 예술대극장, 2011


   최근, 미디어아트는 예술 장르를 넘어선 변화를 꾀하고 있다. TV광고 속에선 미디어아트를 차용한 CF 들이 활발하게 등장하고 있으며, 대중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도 미디어아트(비디오아트)를 상영하는 이벤트를 하는가하면 모바일 기기에서 구동되는 어플리케이션에는 과거 실험적 미디어아트에서 시행되었던 흥미로운 프로젝트 들이 진행되고 있다. 2003년 일본의 통신 및 전자 제조 기업인 NEC는 자국의 인터렉티브 디자이너인 유고 나카무라(Yugo Nakamura)와 함께 <Ecotonoha>란 환경 켐페인을 시도했는데, 사용자가 온라인 페이지의 가상 나무에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입력하면,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실제 나무가 심어진다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구현한 프로젝트였다. 전세계인의 참여를 이끌어낸 이 프로젝트는 최근에 와서 모바일을 이용한 보다 일상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아이폰 앱인 <Raise the Village>는 일종의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게임 속에서 마을을 만들고 가꾸는 행위가 아프리카 우간다의 실제 마을을 돕는 행위로 이어진다. 사용자들은 모금함에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닌, 모바일 기기를 통해 흥미로운 게임을 하면서 의미있는 행위를 동시에 실행하게 된다. , 사용자들에게 단순한 정보나 재미, 표현행위에 그치는 일차적 행위를 유발시키는 것이 아닌 종합적인 행위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게임 속 마을을 키우며 실제 기부행위를 할 수 있는 게임 <Raise the Village>, 2011


심지어 미디어아트는 각 기업들이 새로운 상품을 프로모션 하거나 홍보할 때에도 활용되고 있다. 2009년 삼성은 자사의 글로벌 전략 휴대폰 제트(Jet)의 런칭 쇼에서 홀로그램을 이용한 프리젠테이션을 선보였는데, 미디어아트 작품 들에서 선보여졌던 홀로그램 기술과 제스쳐 센싱(Gesture Sensing)을 이용하여 기존 제품들과는 차별화된 휴대폰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또한 이러한 미디어의 기술적 특성을 잘 활용하고 있는 업체로서 현대자동차를 꼽을 수가 있는데, 현대자동차는 최근 출시하는 자사의 차량을 3D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이용하여 런칭하고 있다. 프로젝션 맵핑 기법이란 무대에 정교하게 3D 이미지로 구현된 이미지를 덧씌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이렇듯 미디어아트에서 선보였던 기술 및 영상 이미지를 차용하는 이유는 미디어아트가 제시하는 새로운 시-공간에 대한 경험 때문이다. 미디어 이론가 빌렘 플루서는 디지털 코드로서 탄생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공간 시간 경험이다.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마찬가지로- 모든 종래의 경험들을 부정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부연하자면, 현재의 기술-미디어는 종전의 예술 개념을 바꾸어 놓았고, 예술을 넘어 다양한 영역을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를 감상하거나 경험하기 위한 장소적 의미 또한 변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미디어아트는 화이트 큐브(미술관) 속에서만 관람객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관람객으로 변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2012년 2월 흥국매거진 기고글


 

References

 

COMO :

http://www.nabi.or.kr/project/current_read.nab?idx=363

Origin :

http://www.uva.co.uk/work/origin-3#/3

Alexander Mcqueen :

http://www.alexandermcqueen.com/int/en/corporate/archive2006_aw_womens.aspx

Ecotonaha :

http://www.nec.co.jp/ecotonoha/index_en.html

Raise the Village :

http://www.raisethevilla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