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Anni Garza Lau /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주체는 누구인가? 본문

Arts & Artists

Anni Garza Lau /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주체는 누구인가?

yoo8965 2019. 12. 9. 20:49

THE DRAMA MANAGER, 2008

21세기,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아날로그의 영토를 마침내 완전히 정복했다. 

   숫자로 구성되는 신속하고 정확한 디지털의 체계는 놀랍게도 아날로그의 감성적 영역까지 산술적인 수치로 환산할 수 있었고 이전의 ‘디지로그(Digi-logue)’와 같은 정서적 마스크도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황에까지 도달했다. 아날로그와의 대립적 구도에서 언급되던 감성과 이성, 연속과 분절 등의 각 기술들의 정체성은 분절된 것들을 끊임없이 이어붙인 디지털의 미덕으로 또한 빅 데이터의 활용을 통해 정감어린 감정마저도 정확한 값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디지털의 신묘함으로 수렴되기에 이르렀고 아날로그의 흔적은 매니아들의 향수어린 시선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현재의 기술 환경은 기본적으로 디지털이라는 유전인자를 전제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해묵은 대결 구조에서 제기되었던 각 기술의 차이점에 관한 접근은 그 의미를 잃었으며 오히려 현재의 시점에서야 디지털 세계로의 진지한 접근이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THE DRAMA MANAGER, 2008

   멕시코 작가인 Anni Garza Lau는 이러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최전선에 위치해있는 디지털 아티스트이다. 그녀는 애니메이터와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아트가 지닌 가상성과 상호작용성에 기반을 둔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게임적 속성 및 구조를 자신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가령, 게임의 시각적, 청각적 요소들의 활용을 넘어 게임의 구조와 특성을 작품의 환경으로 구성하는데, 애니메이터이자 게임 디자이너였던 작가의 이력은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 환경적 토대를 구성하는 동력이 된다. 2008년작 <THE DRAMA MANAGER>는 이러한 특성을 잘 드러낸다. 인터렉티브 애니메이션을 표방한 이 작품은 관객들의 소리에 반응하여 작품 속 주인공의 행동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의 소리들의 특성들에 따라 이러한 인터렉션이 달라진다는 점인데, 웃거나 말하거나 노래하거나 심지어 박수를 치는 관객들의 다양한 행위들은 제각각의 효과를 작품에 전달한다. 마치 작품의 제목처럼, 드라마의 매니저가 되어 배우에게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주며 극을 완성하는 형태와 유사하다. 무엇보다 작가는 완성되어 있는 드라마의 수동적 형태의 관객인 아닌, 드라마 속의 주인공과 감정적으로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는 지점을 작품을 통해 이끌어낸다. 

AFTER DARK, 2010

   앞서의 작품이 다소 애니메이션과 같은 형태의 인터렉티브 아트 작품이었다면, <AFTER DARK>는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의 소설을 재매개한다. 닌텐도 DS를 해킹하여 이를 통해 관객들이 작품을 콘트롤하게 만드는데, 하루키에 의해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본래의 소설은 관객들의 개입에 의해 멀티플한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하는 상호작용적 환경으로 변화한다. 관객들은 실제의 삶과는 다른 허구적 캐릭터를 아바타로 설정하고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변화하는 작품의 내용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포터블 기기를 작품의 콘트롤러로 설치하였는데, 이를 통해 관객 스스로의 삶 속에서 가상과 실재가 혼합된 현실로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구현하려 한다. 이는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그녀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물리적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쉽지 않은 사회적 연대 및 소통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즉, 디지털의 미덕인 네트워크에 기반한 가상성이 그것의 이용자들에게 특정 익명성과 같은 소통의 자유를 확보해주거나 게임과 같은 상호작용적 특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DATANIMBUS, 2014

   2014년작 <Datanimbus>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지닌 위와 같은 특성들로부터 가상의 조각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작가는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증강현실 설치물을 전시장에 구성해 놓았다. 관객들은 자신들의 폰을 통해 작품을 마주하게 되는데, 동명(Datanimbus)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제 전시 환경에 배치되어 있는 각 노드(node)들을 터치할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이 작가에 의해 단독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닌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일종의 공동 작품임이 드러나는데, 관객들은 각각의 노드에 숨겨져 있는 질문에 답을 하거나 자신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하나의 노드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상의 조각 작품은 고정되어 있는 형태가 아닌, 관객들의 개입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적으로 구축되는 일종의 발생적 형태로 생성된다. 즉, 물리적 현실과 가상의 공간이 작품 속에서 마주하게 되며 관객들은 이러한 접점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새로운 의미의 예술 작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의 사회적 산물은 물론 현재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콘텐츠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목적이 매우 명확하고 한정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술은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자유롭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기술적 특성을 자본주의적 체계에서의 가치로 억지로 환산하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그러한 변환을 꼬집으며 우리의 현재 삶을 반성적으로 사유하게 만들 수도 있다. 작가의 최근작인 은 이러한 측면에서 일종의 사회적 리포트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편하게 SNS에 올리는 사진들을 빅 데이터로 분석하는 이 작품은 그러한 이미지들이 자본주의적으로 소비되는 현재의 상황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이 작품은 얼굴 이미지에 숨겨져 있는 여러 가지의 정보들을 페이스 디텍션 기술을 활용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하는데, 사용자들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정부 혹은 기업들의 목적에 기반한 데이터 수집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미덕이 정치적으로 혹은 자본주의적으로 소비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서 기능하는 셈이다. 

THE HUMAN AFTER, 2018

   글의 서두에 적어놓은 다소 공격적인 명제는 이러한 맥락에서 더욱 조밀하게 관찰되어야 하는 문구가 된다. 현재의 환경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재편되는 경우, 그러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의 수혜자는 결국 기술의 대상 혹은 타자로서만 이해되어야 하는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우리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게 될 때, 그러한 방식은 꼭 정치적이고 자본주의적으로 해석되어야만 하는가? 이러한 사항들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일련의 물음들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날로그에 비견하여 이성적이며 가치-중립적인 디지털의 특성에 역행하는, 그리하여 기술의 이용자들이 가지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마주침을 그리 심각하게만 경험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작품을 통해 선보였듯, 우리는 디지털 환경의 주체로서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함께 공유하면 된다. 마치 게임의 환경처럼 말이다.

  

_2017. 9기 금천예술공장 해외입주작가 비평글

Anni Garza Lau web page : http://annigarzala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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