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예술 개념의 확장, 미디어아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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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개념의 확장, 미디어아트

yoo8965 2013. 5. 12. 01:09

1. 들어가며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학자인 이합 하산(Ihab Hassan) 20세기에 이르러 과학기술적 의식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발생했으며, 이러한 탄생을 위해 컴퓨터를 비롯하여 우리가 소유한 다양한 매체가 기여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의 이러한 평가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의식 수준이 모더니즘적 절대성에서 보다 초월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술 또한 이러한 변화에 있어 예외는 아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넘어 뉴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술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변적이고 다원적 형태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예술은 자신의 개념을 직접적 감각으로 표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매체의 표현 능력을 확대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 예술은 그러한 매체, 특히 새로운 기술-매체들을 좀 더 적극적 형태로 활용하여 자신의 경계를 확장한다.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행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보다 폭넓은 대상과 심도깊은 주제에 주목한다. 또한 적극적인 기술 매체의 사용은 장구한 역사를 거쳐 구축된 예술의 개념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을 최근에 와서야 두드러지는 경향으로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미 모더니즘은 문화 사회적 측면에서 테크놀로지를 심미화하려는 경향을 보였고 소비에트 구성주의, 데 스타일과 바우하우스에 이르는 다양한 아방가르드 운동의 작업과 선언에서 이러한 기술주의적 경향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르네상스 시기에서부터 예술과 과학의 공유 지점에 관한 실험들이 있어 왔으며, 테크놀로지가 예술이 지닌 주술적이고도 마법적인 장막을 제거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예술에 있어 매체 사용에 관한 당위성과 기능성을 입증하는 때늦은 항변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예술이 취해야 하는 기술-매체에 관한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자 한다.

 

 

2. 새로운 기술 미디어와 예술

 

   흔히들, 예술가는 시대의 통념과 절연(絶緣)하여 정신의 내적 필연성에 따름으로써 다음 시대를 창조해낸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반문해보자.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 예술이, 또한 예술가가 다음 시대를 창조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대의 통념을 전제하지 않는 예술이 그 사회를 온전하게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을까? 현 시대는 명백히 과학 기술에 의해 촉발된 새로운 미디어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그것도 예술의 원본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던 광학적 복제 시대를 넘어 전자적-디지털적 복제와 가상 이미지의 시대이다. 빌렘 플루서는 디지털 코드로서 탄생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공간 및 시간 경험이다.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마찬가지로- 모든 종래의 경험들을 부정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과거로부터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세상은 변화해 왔다. 철도는 기존 시-공간에 관한 인식을 바꾸어버렸고, 사진은 복제의 기능으로부터 예술이 지닌 원본성과 아우라의 개념을 소급시켰다. 자연스럽게 각 시대의 예술도 그와 동기화된 감성과 행위를 발생시켰는데, 큐비즘은 사진 기술에 조응하여 사실적 회화공간을 파괴하고 대상을 파편화시켰으며, 비디오아트는 미술의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광활하게 터놓았다. 특히 플루서의 언급처럼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종전의 예술 개념들을 근본적 차원에서 변화시키고 있다.

 

Marcel Duchamp, <Fountain>, 1917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혁신적인 개념을 가지고 종래의 예술 개념들을 변화시켜 왔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형태의 한계 안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이러한 물질적 형태를 디지털적 가상의 숫자 정보로 환원시켰다. 예술은 더 이상 물리적 환경 속에서만 구현되고 기능하는 개념에서 비물질적 환경, 즉 가상적 상황 속에서도 인식이 가능한 비물질적 그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 생각해 볼 점은 현재 예술이 자본주의 사회 체제 안에서 재화적 가치로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지적처럼, 광학적 복제 기술들은 종전의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던 원본성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으며, 디지털 복제 기술들은 원본의 개념 자체를 파괴시켰다. 그러나 현물 개념의 시장 경제 체제 안에서의 예술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원본성이 전제된 물질적 개념을 중시한다. 동시대의 가장 앞선 예술의 모습을 선보이는 세계 유슈의 비엔날레 및 미술관의 전시들이 개념적인 미디어 예술 작품들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지만, 예술-시장에서는 아직도 낯설고 생경한 존재 취급을 받는 것 또한 미디어 예술 작품이다. 이러한 부분이 뉴 미디어아트 작품이 지닌 아이러니이다.

 

 

3. 현 시대의 아방가르드, 미디어아트


Naum Gabo, , 1919-1920

   시대별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항상 존재해왔다.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은 단순히 20세기 초의 예술 운동만이 아니라 동시대 예술 흐름을 넘어 다음 세대의 예술을 준비하는 움직임으로서 존재하여 왔다. 다만 생각해 볼 측면은 190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에게 있어 예술과 과학 기술의 관계는 그 위상과 비중을 달리하며 항상 문제의 중심 주변에 머물러 왔다는 사실이다. 들뢰즈는 새로운 사유와 개념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상상력 혹은 감성이 개념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예술이 취한 전략들을 살펴보면 스스로의 개념 종속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미디어들을 적절히 사용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전통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내용에 따라 다양한 미디어를 도구적인 수준에서 활용하였다. 이러한 미디어의 도구적 개념은 입체주의와 뒤샹에 이르러 오브제·미디어 자체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피카소(Picasso)는 그의 종합적 큐비즘 시대에 실제 오브제를 캔버스에 붙여 그 자체를 작품의 주요한 주제로 제시하였으며, 뒤샹(Duchmp)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생활 용품(변기)을 예술 환경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전통적 미디어의 도구적 속성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은 러시아의 전위 예술가들에 의해 정의된팍투라(Factura)’의 개념에서 나타난다. 팍투라란 재료 자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성질의 실현, 제작 과정 중 재료의 특수한 조건과 그 재료의 변모를 의미한다. 즉 팍투라는 재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손상하지 않고 완전히 살려낸다는 재료의 전체성(Integrity of Material)을 의미한다. 말레비치(Malevitch)의 아르키텍톤, 타틀린(Tatlin)의 레타틀린, 엘 리시츠키(El Lissitzky)의 포토몽타주(Photo-Montage), 예이젠시테인(Eizenshtein)의 몽타주는 팍투라의 이념 아래 태어난 것으로서 피카소가 콜라주(Collage)에서 보여 준 매체의 수동적, 주변적 활용으로부터 미디어 자체가 예술을 구성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미디어 자체의 예술 구성은 기계적 기술에서 전기적 기술로의 발전에 영향을 받으며 더욱 확대된다. 나움 가보(Naum Gabo)는 전기력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키네틱 구조물(Kinetic Construction)>(1920)로 새롭게 규정된 과학 기술을 우리의 생생한 의식과 감각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와 같이 새로운 기술들은 예술의 면모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왔으며 어떠한 측면에서는 가장 순수한 사유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백남준, <TV 부다>, 1974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설치와 퍼포먼스를 동반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에 TV 모니터나 비디오와 같은 새로운 기술-미디어를 사용하였으며,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컴퓨터가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 와서는 예술의 모든 장르에서 기술-미디어와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과의 결합에 힘입어 예술 장르들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시도되고 있다.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인간의 감각들이 분배되는 비율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의 예언처럼 현재의 기술-미디어 및 그와 결합된 예술은 메시지보다는 서로의 교류에 의해 만들어진 혼성 감각의 전달을 더욱 중시하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기술-미디어와의 결합이 아방가르드 정신이 왜곡된 채 형식적인 실험으로 물화되는 이유는 기술-미디어를 예술의 대립항으로 위치시키는 일종의 오래된 관습 때문이다. 모더니즘 시기에는 이러한 기술 미디어의 전면화 (당시에는 좀 더 형식주의적 측면에서 두드러졌지만)에 관하여 ‘심미주의’와 ‘기술주의’로 나뉘어 각각 테크놀로지의 심미화와 예술의 테크놀로지화를 부추겼는데, 이러한 관점들은 예술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주요한 시선, 즉 감성과 이성의 측면으로도 확대되어 이해되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현 시대의 예술을 바라보는 데 있어 그리 유용하지 못하다. 최근 예술과 결합된 기술-미디어는 과거처럼 이성적 측면에서 바라보기엔 매우 감성적이고 혼성적이기 때문이다.

 

 

5. 미디어아트의 이해와 수용

 

   그렇다면 이러한 혼성적 뉴미디어 아트가 현재의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예술과 과학기술의 만남은 예술의 새로운 형식이나 재료로서만 이해되어야 하는가? 사실, 새로운 매체 예술이 제공한 의미는 매체 사용에 따른 예술에 대한 수용 방식의 변화일 것이다. 특히 복제성, 상호작용성, 가상성 등 요소는 기존 예술이 추구했던 의미를 전복시키고 확장시키며 다른 차원의 의미로 전이시킨다. 과거 예술 작품을 마주하는 관객에게 요구되었던 예술 작품의 수용 방식은 대체로 '감상(appreciation)''관조(contemplation)'였다. 그러나 매체 예술은 근대 예술이 강조했던 '참여(participation)'를 넘어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한 작품의 체험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원시벽화에서 프레스코와 사실적인 회화, 사진과 영화의 탄생, 텔레비전의 등장,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미디어 발전에는 일종의 인간의 욕구가 기여했다. 사각 스크린에 펼쳐지는 가상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실현시키려는 욕구인 셈인데, 대상에 관한 재현을 넘어 재현한 대상과의 상호간 작용을 꿈꾸어 온 것이다. 발달된 기술-미디어는 이러한 인간의 꿈과 욕구를 보다 직접적 형태로 가시화하였다. 과거 감성적 차원에서만 가능하던 상호작용은 기술 미디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요소가 된 것이다. 레인하드 브라운(Reinhard Braun)모든 미디어는 인간의 상호작용을 형상화한다. 마치 메타포처럼 그것들은 경험을 변형시킨다. 메타포들과 같은 미디어 작업은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을 미리 구축해왔다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예술과 결합한 새로운 기술-미디어에 의해 이전까지와는 다른 예술적 경험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dwin van der Heide, <LSP>, 2006

 

자연스럽게 예술은 과거와는 다른 수용 형태를 필요로 하게 된다. 칸딘스키(Kandinsky)는 자신의 저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당시 전위 예술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정신의 삼각형’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살펴보자면 시대의 정신생활이 형성하는 3각형 속의 저변(底邊)에는 광범위한 대중이 있고, 정점(頂點)에는 고독하고 이해 받지 못하는 예술가가 있다. 그런데 이 3각형은 위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 오늘 고독한 정점에 있는 예술가의 예감에 지나지 않던 것이 내일은 지식인의 관심사가 되고 모레는 대중의 취미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예술의 모습은 이러한 도식과는 달리 예술가의 예감과 대중의 취미와의 간극이 존재하기 어렵다. 예술가의 실험적 시도가 실시간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예술은 다른 방식의 수용 형태를 요구하게 된다. 과거, 예술이 순수한 형태의 감상을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이었으며 그 이후 해독되어야 할 특정한 무엇으로 존재했다면, 현재의 예술은 그러한 두 가지의 감상 태도에 더하여 공감각적 체험을 전제하는 유희적인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듯 변화하고 있는 예술이 종전 개념 그대로 감상되고 소비되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다. 예술은 더 이상 정해진 틀 안에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닌 살아 움직이며 변화하는 가변적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초월하여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월간 서울+문화 2013년 3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