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래서 그 누구도 하지 않는 말들 / 곽이랑 개인전, <일상적 해프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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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래서 그 누구도 하지 않는 말들 / 곽이랑 개인전, <일상적 해프닝>

yoo8965 2020. 8. 26. 18:23

미디어극장 아이공 2019 신진작가 지원전 : 곽이랑, 포스터 이미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래서 그 누구도 하지 않는 말들


   과거로부터 경계를 구분해오던 그리하여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강은 그 자체로 특정 흐름의 단절을 의미하거나 역설적으로 그것의 이음 자체를 지시한다. 우리의 문명을 가능케 한 생명의 물줄기이자 죽은 이들이 건너야 하는 생과 사의 갈림길로서의 강, 신화와 성경에서 강(물)을 메타포로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 기인한다. 가령, 성경에 등장하는 요단 강(Jordan River)은 레바논 북쪽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여 팔레스타인을 종단하고 최종 종착지인 사해를 연결하는 거대한 물줄기를 지칭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의 동편 경계를 이루는 요단 강은 죄를 씻는 곳이요, 죄의 세계에서 천국으로 건너가는 길목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성경과 유사하게 삶과 죽음의 갈림길로서의 강이 5가지 종류나 등장한다. ‘비통의 강 : 아케론(Acheron), 시름의 강 : 코퀴토스(Cocytos), 불길의 강 : 플레게톤(Phlegethon), 망각의 강 : 레테(Lethe) 마지막으로 증오의 강 : 스튁스(Styx)가 그것인데, 대중들에게 각인된 망각의 강 레테를 제외하고서라도 나머지 강들 모두 죽음과 관련된 인간의 행위를 은유한다. 

   작가는 360° VR 화면과 싱글 채널 영상으로 구성된 설치물을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두 개의 분리된 작업은 각각 독립적인 환경으로 구성되지만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요소로 사용된다. 전면에 등장하는 화면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추적하는 시점의 영상이며, VR 영상은 과거의 상황을 현재처럼 경험하게 만드는 몰입적 환경으로 기능한다. 이는 작품의 주요한 이야기 구조를 공유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두운 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구리를 밟아서 죽음에 이르게 한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를 반영한다. 이는 각 영상의 매체 형식을 통해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인데, VR 화면은 현실적인 경험을 가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으며 싱글 채널 영상은 그 이후 주인공의 회상 영역을 담당한다. 첫 번째로 VR 영상을 살펴보자면, 이 영상은 우연하게도 죽음에 이른 개구리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영상이다. 매우 일상적인 풍경에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일상은 낮에서 밤으로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며 이윽고 주인공이 나타나 시점의 주인공을 짓밟게 된다.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작품의 메시지는 강화된다. 어떤 대상의 죽음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환경에서 아주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다. 시점의 조종이나 이동이 가능한 본격적인 VR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은 현실의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시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작가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싱글 채널 영상을 통해서이다. 앞서 언급한 삶과 죽음의 경계선으로서의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며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듯 보인다. 이는 죄의 씻김이며 망각이자 새로운 삶으로의 기원이다. 강물이 은유하는 이러한 의미들을 곱씹으며 화면 속 화자의 독백을 듣다 보면 어느새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의 메시지는 죽음에 이르게 된 대상만을 겨냥하지는 않는다. 이는 강물의 흘러가는 모습을 포착하던 화면이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체 강물의 모습을 담아내는 광각 앵글로 변모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독백 형식으로 과거의 사건을 담담하게 읊조리던 화자는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자신도 위로가 필요한 대상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는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우리의 미묘한 정서적 균열을 투사하는 대목이다. 즉,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음에도 특정 상황으로부터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그 자체로 가해자로서의 낙인이 찍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속내가 상쾌하지 않은 까닭은 의도가 없는 가해자로서의 스스로가 또 다른 피해자로 인식되는 탓이다. 수동적 가해자이자 능동적 피해자인 이러한 역설적 상황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서 왕왕 발생하기에 작품 속 화자의 감정 변환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그보다 이 상황은 언제라도 우리 역시 그러한 우연의, 우발적 사고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영상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화자의 멘트는 대상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의 애도의 표현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위의 구절이 되고 마침내는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진심 어린 위로의 한마디가 되어 속절없이 허공을 부유하게 된다. 

 

미디어극장 아이공 2019 신진작가 지원전 : 곽이랑展 비평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