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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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 Artists

조이경, <Vertigo(s)> / 분절된 기억의 공간

yoo8965 2015. 11. 14. 18:34

조이경 | Yikyung Cho

<Vertigo(S)>, 2010



   기억은 일종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우리가 인식하듯, 네모 반듯한 그리고 차곡차곡 물건이 쌓여져있어 선형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억이라는 공간을 떠올릴 때에는 오히려 현실 속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복합적인 층위가 뒤섞여 있는 4차원의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복잡한 공간 속에 놓여져 있는 기억이란 존재는 우리가 원하는 곳에 놓여져 필요할 때에 쉽게 찾아질 수도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그것을 찾는 길이 너무도 험난하고 꼬여있어 좀처럼 기억의 공간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조이경의 <Vergigo(s)>는 우리의 이와 같은 분절되어 있는 공간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Vertigo> 중의 한 장면을 임의로 편집하여 영상-콜라쥬한 작품이다. 그러나 만약 이 작품이 콜라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더라도, 관객들은 쉽게 이 장면의 존재 유무를 기억하기 어렵다. 영상은 수용자와의 관계적 측면에서 기억과 유사한 구조의 형태를 지닌다. 매커니즘 적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기록되지만, 관객들은 영상의 장면을 꼭 그것이 기록되었던 연대기적 질서로 인식하고 기억하지는 않는다. 발터벤야민과 같은 매체이론가는 이러한 특성으로부터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영상-영화의 특성은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기억 매커니즘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의 층위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과거로부터 인간은 기억을 위한 기술, 즉 ‘기억술/므네모테크놀로지(mnemotechnology)’을 발전시켜왔다. 무엇인가를 우리의 머리 속에 남겨놓기 위하여 암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실험해왔는데, 발전된 기술은 이러한 기억을 위한 인공적 보완재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영상 또한 일종의 기억 보조수단으로도 기능해왔다. 그러나 영상이 고유한 가치는 그것의 기록적-기억의 보조수단적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닌, 그것을 인위적으로 편집하고 재배치하여 일종의 새로운 기억 체계, 그리고 가상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데에 있었다. 따라서 이전까지의 기억의 보조 수단으로서의 의미는 약화되었을지 몰라도, 오히려 그 배치와 편집에 의해 발화된 특성은 우리의 기억과 연관된 뇌의 구성과 더욱 유사해진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다. 작가 조이경이 주목하는 요소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상은 작중 인물인 스코티(Scottie)가 부엌에 들어가 차를 만들어 거실의 테이블로 가져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큰 역할을 수행하는 장면이 아니다. 따라서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이전 장면을 추스르고 이후의 상황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여백의 기능을 제공받는다. 따라서 이러한 순간을 공간에 비유하자면, 비워져있는 공백과 같은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장면이 기능적으로 유의미하거나 관객의 기억에 깊숙이 침투하는 인상적 순간이 아니더라도 그 장면의 의미는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우리의 시간들이 사건과 사건의 연결로서 구성되는 것처럼 느끼듯이 이러한 장면을 스쳐지나가게 된다. 작가가 장면을 콜라쥬하여 시간과 공간을 분절시키는 이유는 결국 그러한 흘러감의 순간을 다시 잡아 늘이고, 확대하는 동시에 반복 재생하여 우리의 기억이 소환되는 프로세스와 유사한 영화의 공간-기억의 공간에서의 장면들을 다시금 매개하는 데에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The Brain>전, Skyload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