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박재영 / 징후(徵候)의 재구성 : 가상의 존재론적 역설 본문

Arts & Artists

박재영 / 징후(徵候)의 재구성 : 가상의 존재론적 역설

yoo8965 2015. 2. 3. 02:55



#1. 이상징후 / 異常徵候


   무대와 공간이 있다.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등장인물은 매혹적이며 이미지는 함축적으로 이를 표상한다. 마치 연극과 영화를 위한 구성 성분을 열거한 것 같지만, 이들은 작가 박재영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예술의 형태가 생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것이 종합되는 공간 영역의 상이함과 구성 성분이 결합되는 방식에 있다. 우리는 무대라는 요소를 보며 시나리오와 등장인물에서 기대하는 주요한 공간을 이미 설정해버렸다. 기존 예술이 우리에게 주입한 선입견이자 편견이다. 그러나 예술의 기원을 복기해보면 매우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의 경과는 그러한 종합을 분쇄하여 각기 다른 장르의 역사를 만들어 버렸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경계를 넘어 사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박재영의 작업에 있어 이러한 요소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작품의 시각적 형태를 제시하기 전, 시나리오를 우선적으로 구성한다. 이는 그가 제시하고 싶은 메시지가 단일한 구성체로서 파악되기 힘들기 때문이며, 또한 완결 구조를 지니되 관객들이 개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맥락을 제공해주기 위함이다. 작가의 설정에 따르면 다운라이트사(社)는 전자 회사이다. 이 회사는 타국의 유명 작가의 시신을 발굴하기도 하고 상상 속 생명체의 생명공학적 장치를 제작하기도 한다. 전자회사의 행보로는 매우 생소하지만 우리는 ‘다운라이트(downliet)’라는 사명(社名)이 ‘새빨간 거짓말 a downright lie'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작가가 만들어놓은 역사와 배경에 의해 스스로 아우라를 부여하여 일반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혹은 믿기 힘든 사실에 거부감 없이 접근한다. 예술에 있어 이러한 허구적 세계는 자연스러운 전제일지 모르지만, 아무런 장치 없이 곧바로 허구 세계로 진입해오던 시각 예술의 흐름을 작가는 이와 같은 연극적 시도로서 전환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치를 통해 우리 사회의 원인과 결과가 조응하지 않는 모순적 사건들, 즉 이상징후를 이야기한다.  



#2. 장면의 재구성

   징후(徵候)는 어떠한 결과가 도출되기 전 나타나는 존재론적 현상이다. 결국 징후의 대상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지만, 징후 자체는 현실에서 확인될 수 있는 사건이며, 미래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사건에 관한 일종의 가설이다. 이러한 징후의 인식적 도식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능하게 만든다. 징후는 잠재적 힘의 형태로 현재에 나타나는 것이기에, 시간을 전제한 존재론적 역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즉, 징후는 결과의 실존을 전제하기에 징후일 수 있는 것이지만, 사실 징후가 결과의 현실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박재영이 주목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역설 - 징후를 추종하고 현실은 개의치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그것이다. 그는 이러한 장면들을 재구성한다. 그러나 재구성의 방식이 우리 인식의 과정과 순차적으로 부합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결과를 가상적으로 만들어놓고 그 징후들을 이후에 설명하기도 하며, 또 다른 경우에는 징후를 늘어놓아 결과를 예상하게 만들고 바로 그 결과를 비틀어버리기도 한다. 


   2006년작인 <박물관 : 한국의 유명 화가 이중섭의 시신 Museum : Preserved Body of Korean Famous Painter, Jung Sup Lee, 2006>과 이후 작품인 <보카이센 생명공학 연구소 LAB. Animals : Bokaisen. New Evolution, 2008>은 유사한 듯 보이지만, 상당히 다른 접근 방식이 사용된 작품들이다. 전자는 ‘이중섭’이라는 실존했던 작가의 죽음을 다루고 있으며, 후자는 ‘보카이센[Bokaisen]’이라는 설화 속 동물이 작품의 주요한 소재이다. 여기서 두 소재의 실존 여부는 예상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전자가 다루고 있는 ‘사실’은 타인들의 인지 유무를 떠나 현실에서 발생했던 사건이다. 따라서 작품은 존재했던 [그러나 잊혀져간] 사건을 재구성하지만 후자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가설이다. 보카이센이란 동물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창하게 꾸며진 연구실로부터 인큐베이터 속 보카이센이란 가상적 동물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물론 이러한 확증을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이 사용된다. 전자를 위해서는 그럴듯한 미이라가 투명한 전시관 속에 설치되었으며, 후자에게는 강력한 귄위가 부여된 가상의 인물[유명 동물학자, 존 펜시어 John Fancier 박사]이 함께한다. 2011년작 <대리점 - 마인드콘트롤 회사 다운라이트 A selling agency : Manufacturer of Mindcontroller, downliet Electronics>에서는 보다 더 강화된 가상적 실재가 드러난다. 앞서의 작업들이 사건과 그를 뒷받침할 설치들에 의해 결과와 징후가 함께 제시되었다면, 이 전시는 다운라이트라는 회사 및 제품이 직접적으로 공개되며 최종결과물 자체를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앞서의 작품들이 ‘현실적 사건‘과 ’현실에 있을 법한 사건‘에 주목했다면 이 작품은 진정 현실에 존재하는 ’거짓[어쩌면 사실일수도 있는] 효과들‘에 주목하는 작업이다. ‘마인드콘트롤러‘라는 다운라이트사의 제품은 허구적이지만 실재적인 현상들을 상기시킨다. 이 작품은 결과의 현실화를 보장하지 않는 징후와 가상적 징후에 의해 오히려 굳건해지는 결과에 대한 믿음을 다루고 있는데, 실제로 생산되고 판매되며, AS까지 진행된다는 제품에 관한 설명은 자칫 흔들릴 수 있는 가상에 대한 관객의 믿음을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3. 두 개의 실재, 함입의 이중주

   박재영의 작업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각기 다른 작업들이 다운라이트라는 존재로 인해 상호 연결되는 ‘함입(invagination, 陷入)’ 함입[invagination, 陷入]이란 세포층의 일부가 안쪽으로 향해 파들어 가며 경우에 따라 깊게 만입하는 것을 지칭하는 의학 용어이지만, 데리다와 아감벤 등이 사용한 철학적 개념이기도 하다.[각주:1] ‘외부로 유출된 내부, 내부로 함입된 외부’로 이해될 수 있는 함입의 개념은 작가의 연속된 작품을 관통하는 내부적 요소들이 외부적으로 표현되고, 외부적으로 나타난 작품의 요소들이 내부적 출처를 지속적으로 지닐 때 사용한다. 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동일한 작가의 서로 다른 작업들이 비가시적인 구조 속에서 연결됨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이러한 인식적 연쇄를 동일한 배경 속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전 작업에 이어 <자가최면장치 Self Hypnosis Machine, 2012>와 <불안한 남자의 방, 2013>등의 작품은 각기 다른 작품이지만 다운라이트 사의 마인드 콘트롤러와 연결되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준다. 각각의 작품은 현대 사회의 불안증 및 허구적 징후들에 대한 광신적 믿음 등의 서로 다른 사회적 징후의 토대를 가지고 있지만 작품들의 흐름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연결되어 있다. 작가의 문제의식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가상적 실재 사이에 놓여진다고 한다면, 작품들에 내재되어 있는 함입의 구조는 작품의 연동되는 배경의 연쇄를 수식하는 개념일수도 있지만, 작가의 현실과 가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설명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가 주목하는 가상적 문제들은 사실 이미 징후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징후의 대상이 결국 현존하는가의 문제 또한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그러한 징후들이 대상인 사건/결과를 전제하지 않고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자면 가상의 컴퍼니인 다운라이트사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현존한다. 그리고 설화의 동물인 보카이센도, 자가최면장치의 효력 또한 실존할지 모른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설명하는 행정적 보증이며, 과학-기술적 도식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도래해있는 잠재적 힘들이 도처에 놓여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러한 잠재적 힘은 누구에게나 그 실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가상적 징후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현실이라는 표피 속에 실체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난지창작스튜디오 / 비평가매칭 프로그램

박재영 작가 비평글 




  1. 함입[invagination, 陷入]이란 세포층의 일부가 안쪽으로 향해 파들어 가며 경우에 따라 깊게 만입하는 것을 지칭하는 의학 용어이지만, 데리다와 아감벤 등이 사용한 철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외부로 유출된 내부, 내부로 함입된 외부’로 이해될 수 있는 함입의 개념은 작가의 연속된 작품을 관통하는 내부적 요소들이 외부적으로 표현되고, 외부적으로 나타난 작품의 요소들이 내부적 출처를 지속적으로 지닐 때 사용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