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서정희, <HOLE_LY> / Para-Complex : 젠더의 이중속박 본문

Arts & Artists

서정희, <HOLE_LY> / Para-Complex : 젠더의 이중속박

yoo8965 2015. 11. 14. 18:41

EXPERIMENTAL FILM / ANIMATION . ONE CHANNEL VIDEO PROJECTION . HD. 16/9 . 3Min. 2014. Color& NB. Stereo . No dialogue


   에로스의 황금화살에 맞은 명계(冥界)의 신 하데스는 처음 본 제우스의 딸 페르세포네에게 사랑을 느낀다. 결국 그녀를 자신이 사는 지하세계로 납치하게 되는데, 이후 제우스의 중재로 페르세포네는 3분의 1은 지하세계에, 3분의 2는 대지의 신인 어머니(데메테르)의 품에서 살게 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이야기의 행간을 추측하여 페르세포네에 관한 다른 접근들을 시도한다. 폭력적 남성과 수동적 여성, 그리고 여기서 나타나는 여성의 대-남성 콤플렉스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관계 설정은 이후의 소설 및 다양한 작품에서 주요하게 나타나는 소재이기도 하다. 서정희가 주목하는 지점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동된다. 성(Gender)의 차이는 각기 다른 특성을 담보하는 근본적 요소이지만, 결코 같은 기준으로 비교될 수 없는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 속에서 불평등과 차별, 몰이해로 자행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차이에 의한 차별과 선입견은 그 간극에서 불평등한 감성과 인식 또한 발생시켰다. 성차에 의한 폭력적 강제와 이로부터 발생한 콤플렉스는 단순히 남성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1차적 감정을 유발시키는 것을 넘어, 타자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구현될 수 없는 스스로의 부재와 결핍을 생성시킨다. 이것이 마음 속 서로 다른 두 개의 구조를 지닌 힘을 구축하게 된다. 한 방향으로 귀결될 수 없는 모순적 힘은 이에 기인한다.

   서정희의 <HOLE_LY>에서는 강인한 팔로 여체를 움켜쥐고 있는 남성과 머리를 바닥에 곤두박고 있는 여체의 모습이 나타난다. 각각은 위에서 언급한 남성에 의해 강탈당한 육체와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당하여 지적 능력 및 언어적 능력을 박탈당한 신체를 상징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로즈마리 케네디라는 상징적 기표를 작품 속에서 뚜렷하게 등장시켜 이러한 신체의 박탈이 남성(아버지)에 의해 폭력적으로 수행된 결과임을 암시한다. 이는 일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차의 문제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남성이라는 기표로 상징화되는 사회로부터 거세당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신체적 - 정신적 측면에 가해지는 거세는 그 자체로 무자비한 폭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이 자행되는 공간과 맥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품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등장하는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로 구성된다. 마치 조각상의 모습을 본 따 만든 듯한 이미지는 실재하는 구체적 상이 아닌, 매우 인공적이고 상징적인 도상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도상의 효과는 보다 암시적이고 우회적인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다. 상징적 이미지는 주제가 전달하려는 바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품이 실행되는 중간 사이에 삽입되는 자막들은 이러한 우회적 이미지의 상처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고주파음으로 상징되는 두통 혹은 지적장애는 뒤이어 따라오는 삽입음과 함께 제거된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장애와 아픔의 해소가 아니다. 마치 실험대에 누워있는 대상체처럼, 피실험자는 실험에 의한, 그리고 폭력에 의한 부작용과 콤플렉스라는 이중 속박에 노출된다. 그리고 그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백색의 공간 속에서 부유하며 나지막히 읊조린다. “이제 나는 여기서 꿈을 꾼다. 당신과 함께 꿈꾸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잃어버린채”



대전시립미술관, <The Brain>전, Skyload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