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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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진화 : 상상력과 기술이 만들어내는 유희적 세상

yoo8965 2015. 2. 3. 02:52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과학이 ‘개념을 가지고 자유롭게 노는 것’임을 강조하며, 과학의 본질이 상상력을 이용하여 단순성과 같은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상상력이 미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자유로운 유희적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놀이 문화가 주목해야만 하는 소중한 덕목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다양한 놀이 문화를 경험해왔다. 원초적으로 주어진 몸을 이용한 놀이 형태에서부터 말과 언어를 이용한 유희적 제스쳐와 말판과 카드를 이용한 보다 전문화된 게임의 형식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놀이 문화는 해당 시기의 시대적 문맥과 조우하여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왔고 이들 중 일부는 현재의 디지털 미디어와 결합하여 보다 확장된 형태의 놀이-게임의 모습으로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놀이의 역사에서 변화의 추이가 집중되는 시기를 가늠해보자면 최근의 50년 정도의 시간에 귀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 자체가 상품화-산업화 되어가며 발생된 부차적 결과일수도 있겠지만, 기술적으로 보자면 디지털 미디어라는 기술적 진보를 통한 보다 직접적인 화학 작용의 결과이다. 디지털이라는 근본적 인자의 변화는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화 사회적 가치들을 변화시켜 왔다. 그러나 놀이 문화의 경우 보다 적극적으로 이러한 흐름을 수용해 왔다. 이러한 까닭은 놀이가 기본적으로 여타의 부문 혹은 장르에 비해 열려져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며, 보다 분석적으로는 그것이 전제하는 상호작용성이라는 특성 때문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공모를 통해 최종 선정된 5개의 프로젝트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생태계에서 인공-생태계로의 극적 변화를 감지한다. 디지털 미디어가 우리의 환경을 점점 더 새로운 그러나 인공적인 생태계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그들의 감지는 계몽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이전의 시도들과 사뭇 다르다. 일 방향적이고 다소 딱딱했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관객들과의 유희적 소통을 중시한다. 마치 놀이처럼 말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지닌 상호작용성에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의 상호작용성을 너무나도 당연한 ‘기능’의 일종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상호작용성은 그것의 기능적 의미보다는 무한대에 가깝게 확장될 수 있는 소통의 능력, 혹은 이를 기반으로 한 유희적 속성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5개의 작품/프로젝트는 디지털 미디어가 지닌 상호작용성을 기반으로 우리의 예술 및 놀이 문화의 진정성 있는 시도로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강유진+이수연의 <Sound of Breath>는 우리의 숨결을 사운드로 변환시킨다. 자연의 숲이 제공하는 신선한 공기에 둘러 쌓여본 경험을 가진 관객이라면, 따로 작품의 작동 방식이 설명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체험이 가능하다. 우리는 자연스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행위를 통해 작품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참으로 놀이처럼 전개된다. 관객들은 자신들 앞에 위치해있는 통에 스스로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자신의 호흡에 의해 파생되는 사운드를 듣게 된다. 매우 직관적이고 짧은 호흡의 상호작용이다. 또한 촉지각적-청각적 경험을 통해 감각간의 전이를 경험하게 된다. 반면 지하루의 <Artificial Nature>는 다분히 시각적인 환경을 구현한다. 그리고 관객의 상호 작용 이전에 존재하는, 전자적으로 매개된 생태계는 자신의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작동된다. 일견, 이 작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비가시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지만, 결국 관객의 개입에 의해 변화하는 현실 및 세계와의 유사성에 의해 이해된다. 즉, 각각의 생체 리듬을 가지고 증식하는 인공적 환경이 자연적 개체인 관객의 개입에 의해 다른 삶의 생체적 리듬을 획득한다. 이러한 작품의 리듬감은 즉각적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의미의 틈을 발생시키는 장치이다. 위의 작품들이 메시지를 창조하기 위한 기재로서의 미디어를 보여준다면, 하이브의 <Leaf>는 보다 충실히 매개자로서의 미디어의 기본적 역할에 충실한 작업이다. 관객은 앞에 놓여진 인터페이스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입력하고 작품은 자연적 개체들과 마찬가지로 관객에게 그의 메시지로 열매를 맺는다. 이 작품은 자신의 메시지를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해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전달한다. 따라서 관객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태계의 소통에 관한 매개체가 된다.

   464의 <Augmented Pinball>의 경우, 좀 더 과감하게 상호작용성을 작품의 표면에서부터 제시한다. 마치 게임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지닌 이 작품은 우리의 삶 속 환경의 변화를 표상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의 상호작용은 관객과의 것이 아닌, 작품 속 개체간의 작용이며 가상적 이미지와 실제 오브제 사이의 문제라는 점이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이라는 전통적 상호간의 문제는 가상과 현실의 ‘사이’ 공간에서 다시 제기된다. 이러한 흐름은 김은수의 <Lines>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은 현실에 침투한 가상적 이미지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어두운 골목에 설치되어 지나가는 행인과 자동차에 반응하여 활성화되는 이 작품은 마치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감시 카메라가 우리를 감시하며 동시에 보호하는 것과 같은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즉, 보이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의 세계는 그것의 가시성 유무를 떠나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침투한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예술의 문법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놀이 체험에서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사고 체계를 필요로 한다. 20세기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놀이-유희성의 구조와 전략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해왔다. 이러한 흐름은 모더니즘 시기의 예술이 지닌 형식주의적 관념들을 넘어 관객들과의 직접적 소통을 중시한 현대 예술의 전략이라 볼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현대 미술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면, ‘관객’과 ‘수용자’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동시에 자기 완결성을 미덕으로 삼았던 예술 작품들이 완성된 텍스트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변화하는 다의적 존재로서 등장하였다.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가 주장한 ‘열린 예술작품 Opera aperta’이라는 개념은 예술의 이와같은 새로운 가능성을 전제한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현대 예술의 ‘열림’ 혹은 ‘개방성’은 예술의 복수성과 다수성, 다의미성 그리고 문학에 대한 해석과 반응에 의한 독자와 텍스트 간의 상호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술은 더 이상 관조와 침잠을 통해서만 경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은 우리의 기술적 상상력을 토대로 또 다른 유희적 놀이로서 전개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게 될 창의적 세계에서의 놀이의 진화, 바로 그 모습이다. 

상상력발전소 프로젝트 시범사업 <놀이의 진화> 전시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