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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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화 / 현재에서 시도된 미래, 라디오키트 세대의 유토피아적 기술-세계 파괴하기

yoo8965 2014. 2. 22. 18:47


현재에서 시도된 미래,
라디오키트 세대의 유토피아적 기술-세계 파괴하기 : 작가 김원화


1. 라디오키트 세대와 기술 낭만주의

   과거, 낭만주의 혹은 관념론적 입장을 지닌 작가들은 산업자본주의의 착취적이고 비인간적인 결과를 과학의 합리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 기술을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열쇠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주요한 동인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 사회에 속한 인간의 고유한 성격 자체도 변화한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만능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과학-기술적 진보는 우리들에게 미래에 관한 유토피아적 이상을 꿈꾸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있어 과학 기술의 적극적 행보는 자연스럽게 유토피아적 미래를 꿈꾸게 만들고, 그러한 세계의 주인공으로서의 자아를 설정케 한다. 만약, 일본에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기점으로 형성된 ‘마징가Z’ 세대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도 과학상자와 라디오키트로 대변되는 80년대의 ‘라디오키트’ 세대가 존재한다. 비록, 그러한 세대의 경험이 해당 국가가 지닌 개발(도상)국으로서의 목표와 이상을 현재화했던 정책상의 이유였다 하더라도 말이다.

   김원화는 유년 시절, 과학상자 조립을 좋아하던 앞서 언급한 과학상자-라디오키트 세대로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당시의 기억은 현재에도 그의 작업 성향을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가 된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에서 국가의 정책적 차원에서 진행된 개발 사업과 조립과 해체로 상징되는 과학 상자로의 호기심적 차원이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장남감을 조립하듯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장치들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장치의 기능은 기존 장난감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장치들이 장난감에서 기대되는 특정 기능을 목표로 제작되지는 않기 때문에, 현실성을 전제한 예술 영역에서 작업을 진행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언급처럼 예술에 있어서 현실 인식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러한 시점으로부터 생성된 현실은 예술의 근본적 출발점이자 주요한 내용적 원천으로 체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추상적 흐름의 작업 일지라도 해당 시대의 현실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이를 해석하는 이들조차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카시러(Ernst Cassirer)는 하나의 인식형식으로서 ‘상징형식’의 개념을 설정하고, ‘상징’ 개념을 통하여 인간문화의 일반적인 현상들에 대한 철학체계를 수립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는 “다른 모든 상징형식처럼 예술도 단지 기존의, 주어진 현실의 재생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인간생활에 대한 객관적 견해에 이르게 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언급하며 예술이 현실에 관한 인식작용을 도울 뿐만 아니라 사물의 존재와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자면, 김원화의 작업은 우리의 현실에 관한 통찰력 있는 인식의 기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가상의 차원과 연결시켜 자칫 묵과될 수 있는 잠재적 현실을 가시화한다.



2. 상징과 우의, 바나나맛 우유와 개발도상국



   2007부터 2010년까지 진행된 <바나나맛 우유 시리즈 Banana Tasted Milk Series>는 ‘바나나 맛 우유’의 형상을 이용하여 70~80년대 한국의 개발상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현창민 작가와의 공동 작업으로 진행된 이 시리즈는 바나나 우유의 외형으로 만들어진 오브제가 5가지의 상이한 형태로 변신하는 작품이다. (공격용) 헬기와 불도저, 장군 로봇과 탱크, 마지막으로 시위진압용 차량 이라는 변신체들은 명확하게 한국 근현대사의 치부를 드러낸다. 근대화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된 당시의 가혹한 상황이 마치 실제 과일이 들어있지 않은 채, 과일의 맛만 제공하여 인기를 끈 과일 음료처럼 달콤하게 제시된다.

[바나나 맛 우유 시리즈]는 한국의 개발시대가 내포하고 있는 ‘달콤한 추억’과 ‘비극적 폭력성’을, 바나나 맛 우유와 야쿠르트를 사용하여 만든 일종의 우화이다. 서구인 못지않은 한국인을 만들기 위해 우유급식을 시행했으나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을 위해 만들어진 ‘향우유’, 여러 가지 향 중에서도 당시엔 너무나 비싸서 쉽게 먹을 수 없었던 과일인 바나나의 향을 첨가한 바나나 맛 우유는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의 여러 모습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소재이다

 - 김과현씨(김원화, 현창민) 작가 노트에서 발췌


   사회상을 조명하고 분석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이후의 작업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각각 2009년과 2010년부터 진행된 <Sustainable World>와 <Launch Pad>가 그것인데, 앞서의 <바나나 맛 우유> 시리즈가 70~80년대의 한국 상황에 관한 조명이라면, 이후의 작업들은 성장기를 거쳐 안정기로 접어든 한국 사회의 모습을 분석한다. 대한민국은 이른바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으로 분류되어 국가의 근본적 구조 및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로부터 성장을 꾀하는 흐름을 반복해 왔다. 현재 대한민국은 개도국을 벗어나 성장이 완료된 국가로 분류되기에 이르렀지만, 섣불리 ‘선진국(Developed Country)’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힘든, 급격한 성장과 개발에 의한 성장통을 겪는 국가로서 인식된다. <Sustainable World>는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세계’를 의미하는데, 이는 현재 한국이 처한 ‘지속 가능한 발전의 시대’를 유비하는 제목으로서 개발에 의해 국가의 발전이 담보되거나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드러낸다. 김원화의 작업은 현실과 가상이라는 존재의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이용한다. 분명 현실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작품의 전반적인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그러한 현실적 요소를 제시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가상적이다. 예를 들어, 5가지의 변신체를 지닌 바나나맛 우유는 그 자체로 추억의 단편을 엿보는 듯한 달콤함을 선사하는 현실적 오브제이지만, 그 속에는 근대사에 함몰되어 버린 아픈 기억이 가상적으로 깃들어있으며, 이러한 기억은 또 다시 매우 현실적인 외형을 지닌 변신체의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또한, <Sustainable World>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작품은 이순신 동상으로 대변되는 현실의 상징체를 넘어 금속적 표면을 지닌 가상의 세계를 유영하는 구조로 제작되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본격적으로 가상의 세계로부터 현실적 문제들을 우의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Sustainable World>의 구체적 상징체이자 부속물격인 <Generator>는 새로운 동력을 찾아 제 2의 성장을 이루려는 국가적 열망을 증기를 내뿜으며 피스톤 운동을 하는 엔진-기계 장치로 치환한다.


3. 가상과 현실의 교차점, 우주발사체



   만일, 작가가 제시하는 가상-현실의 연결된 세계관을 엿보게 하는 단초가 <Sustainable World>에서 제시되었다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Launch Pad>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더욱 더 극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Launch Pad> 시리즈는 초고층 빌딩을 우주발사체(Space Launch Vehicle)로 비유하여 한국의 현재와 미래상을 조명하는 일련의 작품 군이다. 초고층 빌딩이라는 경제 성장의 지표가 우주를 향한 염원의 상징, 즉 우주발사체의 모습과 결합되어 과학 기술에 의해 제시될 수 있는, 그러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조망케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발사체의 외형과 이것의 기반이 되는 배경에서 최근까지도 불거졌던 국내 현실의 모순적 상황이 그대로 포착된다는 점이다. 가령, 상암동 DMC(Digital Media City)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우주발사체 DMC>를 살펴보면, 실제 서울시 상암동 DMC 지구에 들어설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라이트타워(지하9층, 지상133층(최고높이 640m), 연면적 724,675m2)’의 외형 이 우주발사체의 구조물로 변형되는 동시에 상암동에 우주센터 전망대가 설치된다는 가상적 스토리가 근간을 이룬다. 예컨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배경은 현실적 상황 그 자체이지만,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가상적 속성이 덧씌워지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이 지닌 모순적 상황은 작가가 창조한 가상적 환경 속에서 위트 있게 제시된다. 구글 어스와 SNS가 결합된 형태의 작품 속 가상공간은 마치 게임과 같은 3D 그래픽 환경으로 구현되어 있다. 관객들은 게임기의 콘트롤러를 이용하여 발사체를 둘러싼 주변 지역의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서 작가가 감추어놓은 현실 풍자적 요소가 드러나게 된다. 가상의 발사체이지만 작품의 곳곳에서 현실적 수치로 구성된 분석 화면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지역 주민들의 기대치가 고조되는 장면 등이 펼쳐진다. 특히 발사를 앞둔 우주센터 전망대에서의 희망에 가득 찬 주민들의 포스팅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드러내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좌절된 초고층 빌딩의 어두운 현실을 오버랩 시키는 역할 또한 수행하기 때문에,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적 상황이 연출된다. 물론, 이러한 구성은 작가가 만들어놓은 가상 세계 속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 세계를 단순한 허구적 세계로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문제들은 작가가 제시하는 가상 세계에 관한 충실한 참고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가상을 현실의 또 다른 존재 방식으로 보자면, 작가의 가상은 현실과 밀접하게 연동되는 증강 현실적 차원으로 이동하게 되며 동시에 우리의 현실이 꿈꾸는 유토피아적 미래상에 대한 반성적 사유로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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