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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이미지의 형상성에 관한 해체와 환대 : 함준서 개인전 오리를 닮은 개가 있다. 지면에 붙어버린 생명체도 보인다. 문자를 닮은 개체와 더불어 이종생명체로 인식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함준서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모습이다. 우리 인식의 범주에서 낯익은 듯 낯설은, 세상의 모습에 기인하지만 존재할 수는 없는 개체 혹은 생명체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에서 이러한 캐릭터들을 발견한다. 창조가 아닌 발견이라는 수식은 그가 견지하고 있는 자세를 설명한다. 그는 실제 세계에서 마주하는 환경적 요소들로부터 캐릭터들의 기본적인 라인들을 추출하고 이를 자신의 세계 속으로 편입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개체들이 어느 한 부분에서는 반드시 이질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
의식과 노이즈: 텔레노이아적 유토피아 / 석성석의 작업에 관한 소고 Scene #1 기술에 대한 편집증적 사유 일종의 편집증[paranoia]일까. 석성석의 작업은 지속적이고 완고한 의심에서 비롯된다. 불필요한, 어쩌면 매우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이러한 의심은 그의 작업에 있어 본질적 작동 기재가 된다. 그는 과거로부터 매체 실험적 작업을 지속하여 왔다. 때로는 매체 그 자체의 매질[媒質]로부터, 때로는 그러한 매체가 상징하는 의식적 수준에 관한 실험이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하이-테크놀로지가 아닌 로우-테크에 가까운 것이었고, 디지털적 변환에 도달하지 못한 그것이었다. 이는 다분히 의식적 선택이다. 아직 그러한 변환과 전개를 따라가기에는 이전 기술에 대한 사유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전 기..
Georges Méliès, , 1902 이미지의 평면성과 마법적 환영 이미지는 결국 평면적이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인식되어온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자 사고 체계였다. 이미지가 특정 오브제에 관한 재현의 역할을 수행할 때부터, 이미지와 실체의 구별은 그것의 존재론적 성분을 넘어 결국 그것이 지닌 차원상의 문제로 귀결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도식은 변화하고 있다. 기술 매체와 결합한 이미지는 적극적으로 2차원을 벗어나 3차원의 것으로 현상하고 있으며, 디지털이라는 근본적인 성분 변화로부터 지시-대상이라는 이전의 전제를 필요치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의 변화가 기술적 진보로서 이야기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꼭 예술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를 통해 제시하고..
2013년. 뉴욕 / 예술과 기술, 게임에 관한 짧은 보고서 : 실험적 뉴미디어아트와 알고리즘-게임을 중심으로 뉴미디어아트, 게임과의 연결을 시도하다 현대 예술의 흐름을 관찰하다보면, 기술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 즉 뉴 미디어 아트에 대한 현대 예술의 소극적 수용 형태를 마주할 수 있다. 사진과 영화의 등장에도 예술은 쉽게 그 문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사진은 예술의 기술적 지지체로서, 영화는 스스로의 해체를 전제한 확장적 형태로서 예술과 극적인 조우를 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마도 새로운 기술 매체와 예술과의 융합은 시간을 두고 숙성시켜야 하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기술 매체에 기반한 비디오 게임과 예술의 연결 지점을 논의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 ..
기억의 주체는 누구인가? _매체에 의해 전복된 주체의 기억 Mioon / 기억극장 : 과 을 중심으로 기억에 앞서.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려 할 때, 과연 떠올려진 기억-이미지는 주체로부터 파생된 것일까, 아님 기억이 주체를 선택하여 실체화된 것일까? 독일의 생리학자 해링 Hering에 따르면, 우리는 ‘기억의 안경을 통해서’ 그 대상을 본다. 따라서 이미 아는 대상을 다시 보거나 ‘다시 본다고 믿을’ 때마다 그것이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한 동시에 불규칙적으로 소환된다. 이는 ‘기억’이란 프로세스가 인식 과정에 후행하기 때문이며, 선행되는 인식의 과정에서 이미 임의성과 자의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기억은 완전한 형태로 소환될 수 없으며, 그 과정 또한 규칙..
1. 놀이로서의 예술, 이미지 미술사에서는 동굴 벽화를 인류가 그려낸 최초의 재현 이미지라고 설명한다. 단순한 의미에서 재현은 눈앞에 존재하지 않거나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실물을 표현하는 행위 혹은 대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고대인들은 동굴에 그들이 경험한 세상의 일부를 다시 존재하게 만들었다. 즉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그 대상을 다시 그들 눈앞에서 현전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동굴 벽화는 자연 세계에 관한 원초적인 모방 행위이며 일종의 환영(Illusion)이다. 일반적으로 초기 예술은 인간이 자연 세계에 남겨놓은 흔적으로부터 발생하였다고 이야기된다. 자신의 흔적을 외부에 남겨놓으려는 본능적 충동은 '손바닥 각인' 같은 흔적들을 남겨놓는데, 동굴 벽화 역시도 이러한 충동으..
드디어 Surface가 자신이 가야할 방향에 관하여 감을 잡은 듯 하다. 물론, 아직까지 태블릿 버젼으로 쓰기에는 앱이 부족하지만, 12인치 컨버터블 노트북 정도로 생각하면 이것처럼 편리한 디바이스는 없을 듯. 서피스 1의 경우에도 나름 만족했기 때문에 이번 3의 경우는 기대가 된다. 내가 mac을 사용하는 이유는. 노트북 전원관리 문제, 터치패드?에서의 제스쳐, 기계완성도!?, 키놋 정도의 프로그램인데, 서피스는 상당부분 위의 이유들을 대체할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키놋 자료들을 ppt로 변환해야 하는 문제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정발되면 이건 꼭... ^^
우리 사회가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단계부터 흔들리고 있다. 사회란. 일정한 경계가 설정된 영토에서 종교 ·가치관 ·규범 ·언어 ·문화 등을 상호 공유하고 특정한 제도와 조직을 형성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성적 관계를 통하여 성원을 재생산하면서 존속하는 인간집단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앞서의 전제가 공유되지 못하고, [혹은 특정한 이들에게만 통용되고] 형성되어야 할 질서가 제도와 조직에 의해 헐거워졌다는 [제도와 조직이 질서를 파괴하는] 사실이다. 아무리 위법과 사고가 우리가 존속시켜야 할 법과 안전망을 공고히 해주는 역설적 작용으로 기능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그 도착 관계가 정도 이상으로 심해진다면, 그 법과 질서, 체계와 구조는 그 사회를 온전히 지탱하는 기반이 될 수 없다. 국민의 ..
현재에서 시도된 미래, 라디오키트 세대의 유토피아적 기술-세계 파괴하기 : 작가 김원화 1. 라디오키트 세대와 기술 낭만주의 과거, 낭만주의 혹은 관념론적 입장을 지닌 작가들은 산업자본주의의 착취적이고 비인간적인 결과를 과학의 합리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 기술을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열쇠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주요한 동인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 사회에 속한 인간의 고유한 성격 자체도 변화한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만능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과학-기술적 진보는 우리들에게 미래에 관한 유토피아적 이상을 꿈꾸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있어 과학 기술의 적극적 행보는 자연스럽게 유토피아적 미래를 꿈꾸게 만들고, 그러한 세계의 주인공으로서의 자아를 ..
미디어 이론가 권터 안더스(Gunther Anders)는 전통적인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이 TV와 같은 새로운 매체에 의해 해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TV 화면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분명 현실을 지시할지 모르지만 TV가 놓여 있는 거실 속의 현실은 아니며, 새로운 매체들이 제시하는 세계들은 일종의 허구이지만 현실이며 동시에 가상인 까닭이다. 박준범은 비디오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적 세계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역설적 상황을 드러내왔다. 안더스의 표현을 빌자면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제 3의 존재층인 '팬텀(Phantom)'으로서의 세계를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전작들로부터의 흐름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시도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거나, ..
2054년, 인류는 각종 첨단 미디어로 점철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는 그 자체로 상호작용적 미디어가 되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길거리의 전광판은 보행자의 신원을 인식하여 그에게 필요한 광고를 디스플레이할 뿐만 아니라 그의 동선을 추적하기도 한다. 이는 보행자의 움직임에 의해 변화하는 거리 풍경과 첨단 미디어를 통해 그들을 통제하는 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제시한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SF 영화에서 제시된 미래의 모습처럼 미디어로 구성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마도 실현 가능성 및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미디어에 의해 구성되고 있으며 동시에 미디어에 의존하고 있..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테오얀센(Theo Jansen)의 예술과 게임은 창조적 기술로 귀결된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넘어 뉴 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술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변적이고 다원적 형태로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은 경험의 요소를 직접적 감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매체의 표현 능력을 확대시켜 왔다. 그러나 현 시대의 예술은 그러한 매체, 특히 새로운 기술-매체들을 좀 더 적극적 형태로 활용하여 자신의 경계를 확장한다.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과도한 매체의 사용은 장구한 역사를 거쳐 구축된 예술의 개념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을 최근에 와서야 두드러지는 경향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모더니즘은 문화-사회..
기억이 현재의 의식을 매개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 속에서 마주하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활동을 기억으로 남겨놓는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의 내재된 심리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요인일 때, 그것은 이후 신체적 증후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은 현대인들이 다양하게 경험하는 이른 바 '포비아(Phobia : 공포증)'로 볼 수 있는데,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의하면 포비아는 일종의 불안 히스테리이며, 이러한 불안은 특정한 외부 대상이나 상황에 연결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회피가 중심적인 증상이 된다. 공수경은 인간의 무의식적인 그러나 일상적인 기억에 주목하는 작가이다. 그녀는 기술이 매개하는 인간의 소통 방식에 주목해 왔다. 우리의 소통이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는 방식에 흥미..
결국, 이미지는 현실을 조작한 일루젼이다. 이미지는 과거로부터 현실 재현을 위한 매개체였다. 동굴 벽화 시기에서부터 이미지는 현실을 기록하거나 전달하기 위한 도구였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상상력을 현실로 구체화시키는 현실 재현을 위한 환경 자체였다. 인간은 이미지를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세계를 구현하였고 그러한 세계는 결국 우리가 경험했던 순간의 재현이자 꿈꾸어왔던 환상에 대한 일루젼으로 나타났다. 한 때, 사진이라는 기계적 이미지는 이러한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를 결정짓는 듯 했다. 정밀하게 현실을 반영하는 사진-이미지는 강력한 현실 재현성을 바탕으로 '사진=현실'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이러한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였다. 디지털은 매체의 근본적 구조를..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접어들 무렵, 전 세계는 '디지털'로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시도했다. 모두가 디지털을 말했고, 디지털 방식으로 생각하자 강조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전화기의 다이얼과 손목시계의 초침은 전자 숫자판으로 바뀌었고, 조심스레 조정했던 라디오 주파수 다이얼마저도 리모콘의 버튼으로 대체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침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진행되었고 우리는 그러한 변화의 흐름을 쫒기에 급급했다. 시작은 달콤했다. 디지털 기술의 침투와 함께 세련된 디자인의 각종 디지털 콘텐츠의 소비 기기들이 등장했으니까. 그러나 소비자들이 행복하게 새로운 기술의 온기를 느끼고 있을 무렵, 생산자와 창작자들이 처한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초기 저항의 몸짓과는 별개로 여기저..
1. 들어가며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학자인 이합 하산(Ihab Hassan)은 20세기에 이르러 과학기술적 의식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발생했으며, 이러한 탄생을 위해 컴퓨터를 비롯하여 우리가 소유한 다양한 매체가 기여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의 이러한 평가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의식 수준이 모더니즘적 절대성에서 보다 초월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술 또한 이러한 변화에 있어 예외는 아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넘어 뉴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술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변적이고 다원적 형태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예술은 자신의 개념을 직접적 감각으로 표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매체의 표현 능력을 확대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 예술은 그러한 매..
2003년 '아톰(Atom)'이 만들어졌다. 아톰은 일본의 만화작가인 데즈카 오사무(手塚治)에 의해 1952년 만화잡지 에 등장한 로봇으로서(원제는 ), 1963년 만화영화로 제작된 이후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아톰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톰은 로봇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힘이 쎈.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울지 몰라도 원자력 기반의 10만 마력!) 게다가 인간의 감정도 가지고 있다. 로봇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하여 항상 고민하지만 죽은 박사의 아들을 대신하여 학교에도 등교한다. 요컨데 인간과 유사하지만 이상적인 기능을 가진 진일보한 기술의 상징체이다. 아톰은 현재의 기술 발달 과정을 볼 때, 결국 디지털 기술의 결정체인 '비트(Bit)'로 구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
누구나 게임을 한다 제인 맥고니걸 Jane McGonigal 지음, 김고명 옮김, RH Korea, 2012 누구나 게임을 한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이와 같은 주장이 영 과장된 주장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것이 예전에는 게임에 관심을 두지 않던 여성들이나 장년층까지도 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 케주얼 게임들(앵그리 버드 등의)을 즐겨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고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게임 산업 및 인구 증가 수치는 가공할 만하다. 수년전 이미 게임 산업은 영화를 뛰어넘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가 되었고 각 국가별 게임인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기존 컴퓨터/비디오 게임 분야에 스마트 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들이 추가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점점 더 확..
1. 전위적 활용에서 전방위적 침투로, 미디어아트의 전개 각 시대별 아방가르드는 항상 존재해왔다.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은 단순히 20세기 초의 예술 운동만이 아니라 동 시대의 예술 흐름을 넘어 다음 세대의 예술을 준비하는 움직임으로서 존재하여 왔다. 다만 생각해 볼 지점은 과거로부터, 특히 190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에게 있어 예술과 과학 기술의 관계는 그 위상과 비중을 달리하며 항상 문제의 중심부에 머물러 왔다는 사실이다. 들뢰즈는 새로운 사유와 개념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상상력 혹은 감성이 개념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는데, 예술이 취한 전략들을 살펴보면 스스로의 개념 종속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미디어들을 적절히 사용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은 예술의 면모를 지속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