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Atom, Dolly and Mozart : 디지털 시대의 정보미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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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Dolly and Mozart : 디지털 시대의 정보미학

yoo8965 2013. 5. 12. 00:58


   2003'아톰(Atom)'이 만들어졌다. 아톰은 일본의 만화작가인 데즈카 오사무(手塚治)에 의해 1952년 만화잡지 <쇼넨(少年)>에 등장한 로봇으로서(원제는 <철완(鐵腕) 아톰>), 1963년 만화영화로 제작된 이후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아톰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톰은 로봇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힘이 쎈.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울지 몰라도 원자력 기반의 10만 마력!) 게다가 인간의 감정도 가지고 있다. 로봇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하여 항상 고민하지만 죽은 박사의 아들을 대신하여 학교에도 등교한다. 요컨데 인간과 유사하지만 이상적인 기능을 가진 진일보한 기술의 상징체이다. 아톰은 현재의 기술 발달 과정을 볼 때, 결국 디지털 기술의 결정체인 '비트(Bit)'로 구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톰은 당시 기술이 제시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성적 미래였고 그 상징이자 기술 자체였다. 따라서 아톰은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대세인 현재에 와서도 말 그대로 'Atom(원자)'로서 존재한다.

 

같은 해. 복제양 '돌리(Dolly)'는 결국 안락사 당하였다. 1997년 복제양 돌리가 탄생하자 이전까지의 성숙한 포유류는 복제할 수 없다는 상식이 깨졌다. 이것은 인간 복제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였고, 기술에 의해 모든 것이 복제되고 증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사례였다. 만약 아톰이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에 관한 허구적 전망을 담은 작품이라면 돌리는 우리가 직접 마주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아톰은 기술 발달에 따른 인간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돌리는 인간 복제의 윤리적 문제 등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이와 같이 기술은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변화를 가져오지만 그러한 변화는 분명 사고해야 할 논란거리 또한 함께 제시한다. 과거로부터 해당 시기의 기술은 그 사회를 정의했고 또한 치밀하게 구성하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화-사회를 기술과 연동하여 수식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의 '디지털'이라는 기술 수식은 우리를 구성하는 근본 인자들마저도 바꾸어버린다. 앨빈 토플러가 언급한 것처럼 컴퓨터에 의해 우리 환경은 기술-정보로 점철되었다. 새로운 물결이자 숫자로 치환하자면 제 3의 물결이다. 이러한 기술에 조응하는 예술은 소재와 주제를 달리하며 해당 시기의 문화와 사회를 반영한다. 수렵-채집을 거듭했던 원시 시대에는 그 시대를 모사했던 동굴 속 벽화로, 인간성을 회복하고 예술을 재생시키자던 르네상스 시기의 천재들에게도 예술은 그러했다. 예술이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면 결국 현재 예술은 디지털이라는 감성적으로 차가운 기술 미디어를 끌어안을 수 밖에 없다. 20세기 이후 우리 사회는 근원적인 부분에서부터 디지털 정보 기술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Information Arts>의 저자 'Stephen Wilson'은 우리의 문화 속 예술과 과학, 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는 시도들을 모두 '정보'라는 매개 속에서 전제하며 자신의 책을 기술했다. 다양한 기술과 결합한 예술적 시도 모두를 주요한 정보 단위로서 이해한 까닭이다. 


   예술이 정보로 구성된다면 그것은 두 가지의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기존의 모든 물질에 대한 원소의 치환적 차원에서이다. 디지털은 결국, 0 1이라는 숫자 정보이다. 우리가 이러한 2가지 숫자로 모든 것을 변환시키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컴퓨터와 같은 기계 문명이 이러한 정보를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동력이 이러한 기계 문명으로 대체되면서 우리는 주변의 모든 물질적 정보를 비물질적 숫자 체계 속에서 헤아리게 되었다. 예술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예술 작품은 점점 더 비물질적 정보 체계에서 생산되고 유통된다. 현대 예술에서 점점 더 그 위상을 확인하고 있는 뉴 미디어아트를 살펴보면 근본적 형식에서부터 비물질적 정보 체계, 즉 디지털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1960년대부터 시작된 알고리즘 아트와 같은 시도들은 정보를 예술 작품의 근본 요소로서 차용한 사례들이다. ‘알고리즘 아트(Algorithmic Art)’ 1960년대 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주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을 의미하는 알고리즘을 예술에 활용한 것이다. 주로 컴퓨터에서 사용되던 명백한 규칙들의 집합인 알고리즘을 몇몇 수학자 / 예술가들이 예술에 적용하면서 새로운 컴퓨터 예술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알고리즘 아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와 같은 의외의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디지털 컴퓨터를 처음부터 예술의 창조에 사용할 가능성을 탐구한 작가 마이클 놀(Michael Noll)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1961년부터 벨 실험실에서 연구생으로 근무한 그는 동료의 프로그래밍 오류로 발생한버그’의 괴상한 기호로부터 새로운 예술을 제작하였다. 당시 그가 예측한 미래 예술/예술가의 모습은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사뭇 의미심장하다.

 

“아직까지는 수단이 결과물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  미래가 어떻게 되든

과학자들은 거의 모든 종류의 회화도 컴퓨터로 생성해낼 수 있는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예술가의 실체적 터치는 더 이상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내맡겨질 것이다.

매체 혹은 기법과 작화의 메카닉으로부터 해방되어, 예술가들은 그저 ‘창조’만 할 것이다.

 

- Michael Noll -

 

마이클 놀은 예술가와 프로그래머가 한 인격 안에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일종의 패턴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으로부터 예술과의 접점을 만들어갔다. 이러한 흐름은 스스로를알고리스트(Algorist)’라 명명하며 과거의 예술 작품을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새로운 예술로 탄생시킨 찰스 수리(Charles Csuri)의 작업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하여 당시 회화적으로는 불가능했던 해체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Henry Rousseau, <Sleeping Gypsi>(1897)Charles Csuri : 헨리 루소의잠자는 짚시’의 알고리즘 버젼

 

찰스 수리의 작품은 스트라스부르 사회심리학 연구소장인 아브람 몰(Abraham A. Moles)의 언급을 떠올리게 하는데, 아브람 몰은 컴퓨터가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테마에 다양한 변주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여기에서 컴퓨터가 예술에 제공한 새로운 전망을 엿볼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헨리 루소(Henry Rousseau) <잠자는 짚시(Sleeping Gypsi)>를 찰스 수리가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새롭게 재현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알고리즘 아트가 기존 예술적 주제와 관련된 변주만을 일삼는 예술은 아니다. 위에서 열거한 작품들이 일정 측면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란 방법을 통해 기존 예술의 모습을 답습해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면, 알고리즘의 원리 자체, 즉 정보의 단위를 가지고 예술과의 접점을 만들어내었던 시도들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는 확률을 계산하는 마르코프 체인 모델(Markovian Models)

 

   1913년 마르코프(A.A. Markov: 1856~1922)는 수학적 이론을 시학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그는 기존의 확률론으로부터 시간적 계기를 수학적 계산 안에 포함시켰는데, 예를 들어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앞서 벌어진 사건에 이후의 사건이 확률적으로 구속되는 경우들을 처리하는 새로운 개념의 확률론을 제안하였다(마르코프 체인). 그는 푸쉬킨의 극시 <예프게니 오네긴>의 텍스트에서 처음 2만자를 취해 그것들을 '모음(V)''자음(K)'의 기호의 열로 환원시킨 후, 이 연쇄에서 자음과 모음이 등장할 확률을 계산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의미론적 연쇄에서 텍스트를 벗어나게 하였다. 마르코프의 이론은 이후 후대에 와서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패턴들을 분석하며 확률론의 적용 범위를 수학 바깥의 현상들로 확장되게 만들었다. 일본의 정보미학자이자 예술가인 카와노 히로시(Kawano Hiroshi)의 작품들도 이러한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1959년경부터 정보이론 및 막스 벤제의 정보미학 연구를 시작하여 다양한 컴퓨터 아트의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마르코프 도형의 구조와 촘스키의 언어생성문법이론 등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시도로서 인간의 미의식과 예술 활동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려고 시도하였다.


 

Kawano Hiroshi, <Artificial Mondrian>, 1967

 

그러나 마르코프 체인을 활용한 위와 같은 실험이 텍스트를 의미 기호에서 확률론적 신호의 열로 변환시키고 예술 작품의 근원적인 부분조차 숫자 정보로 전환시켰다 하더라도 이러한 시도들이 과거의 예술과는 다른 입장에 놓여져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전까지의 예술이 현실에 대한 시뮬레이션이자 일종의 일루젼으로 기능했다면 알고리즘 아트의 초기 실험들은 현실을 분해하고 근원적 형태로 회기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현대 예술을 살펴보면,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미적 범주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인상파 화가들이 눈에 포착된 일상의 아름다움 자체를 관객들에게 제공하였다면, 현대 예술은 오히려 우리의 사회 속에 내포된 한눈에 간파하기 힘든 숨어있는 진실을 끄집어내려고 시도한다. 현대 사회를 카오스적 상황으로 파악한 노베르트 볼츠는 우리에게 친숙한 주변 환경이 우리에게 질서로 간주되고 있는 것은 우연적인 상태의 확고한 가상 즉 예외라고 언급한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의 기능을 떠올려보면 이전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이미지-시뮬레이션이 발견된다. 따라서 우리에게 예술이란, 어쩌면 가상 이미지에 뒤덮혀 있는 현실을 들추는 것이며, 현실을 움직이는 일종의 규칙을 탐구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 사회적 시스템이 우리의 현실 세계를 가상화하고 모의 실재화 할수록 예술은 그것을 파악하고 끄집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이 정보로서 구성되는 두 번째 유형이다. , 현대 사회의 전면적 가상-이미지화에 대한 반성적 기능으로서 정보 예술이 기능하는 것이다.



Chris G. Earnshaw, Mozarts dice game Software for the Atari Computer 1991

 

이러한 특성은 컴퓨테이셔널 아트(Computational Art) 및 발생예술(Generative Art)의 기본적 필요 조건이 된다. 발생예술이란 작품의 일부 혹은 전체가 자동기술법에 의해 창작되는 작품을 의미하는데, 현대에 와서는 알고리즘을 통해 제작된 자동화된 컴퓨터 예술을 지칭한다. 발생예술은 음악과 시각예술, 건축과 시, 라이브 코딩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각 예술 영역에서의 발생 예술의 시작은 무작위성 정보, 즉 랜덤(Randomness)의 요소에 기인하였다. 실제로 발생 예술 영역에서는 '모자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Musikalisches Würfelspiel (Musical Dice Game)> (1757)와 같은 작품을 발생 예술의 초기 형태로 언급한다. 이 작품은 미리 작곡된 프레이즈가 주사위를 통해 선택되어 연주되었는데, 앞 사람의 선택에 의해 연주된 곡은 다른 이의 주사위 숫자에 따라 변주되었다(후에 이곡은 여러 가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재매개 되었다).

 


Christa Sommerer and Laurent Mignonneau, <A-Volve>, 1994-1997


그러나 발생 예술이 알고리즘에 입각한 현재의 정보 예술로 거듭난 것은 1990년대 이후, 크리스타 좀머러와 로랑 미뇨뇨의 <A-Volve>와 같은 작품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정보를 예술적 형태로 가공하여 제시한 이후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발생 예술은 알고리즘의 규칙과 피드백 시스템에 더하여 무작위성이 더해지는 것인데, 이러한 무작위성은 컴퓨터를 통한 정보 처리를 통해 기존 뉴 미디어 아트에서 제시된 상호작용적 특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좀머러와 미뇨뇨의 작품은 관람자의 손길에 의해 새로운 생명이 발생하고 이러한 생명체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개체가 증식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관람자는 작품의 초기 상태에서 정보를 입력하는 행위를 통해 생명을 탄생시키는 창조주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뿐, 이후 증식 과정에 있어서는 개입하지 않는다. 작품 자체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발생을 유도하여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기술은 우리의 상상의 영역에 침투한다. 많은 학자 및 과학기술자들은 기술을 발전시키는 필수 요소로서 인간의 상상력을 꼽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 또한 기술이다. 1960년대에 탄생한 아톰은 유토피아적 미래상을 대변하는 상징적 기술 매개체였다. 그러나 2003년 복제양 돌리는 우리의 상상력에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기술중심적 사고로 보자면 시대가 변화할수록 그 변화의 중심엔 기술-매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기술이 본래의 목적대로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선 그것이 지닌 기능적-도구적 역할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것이 기술을 매개한 예술의 최소한의 책임이며, 예술과 기술매체, 기계와 인간이 꿈꾸는 새로운 이샹향을 위한 최대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은 이미지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를 반영하고 숨어있는 진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예술이라면, 그러한 정의는 시대를 관통하여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과 아름다움을 찾는 방법은 변화한다.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광경을 재현했던 예술은 그것을 구현한 기본적 규칙에 주목한다. 규칙은 정보로 시각화되고 정보는 새로운 예술로서 구현되기 때문이다.

 


 월간 미술세계 2013년 2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