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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단일화된 감각, 결여된 예술 : 한국의 미디어아트 본문
1. 전위적 활용에서 전방위적 침투로, 미디어아트의 전개
각 시대별 아방가르드는 항상 존재해왔다.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은 단순히 20세기 초의 예술 운동만이 아니라 동 시대의 예술 흐름을 넘어 다음 세대의 예술을 준비하는 움직임으로서 존재하여 왔다. 다만 생각해 볼 지점은 과거로부터, 특히 190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에게 있어 예술과 과학 기술의 관계는 그 위상과 비중을 달리하며 항상 문제의 중심부에 머물러 왔다는 사실이다. 들뢰즈는 새로운 사유와 개념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상상력 혹은 감성이 개념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는데, 예술이 취한 전략들을 살펴보면 스스로의 개념 종속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미디어들을 적절히 사용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은 예술의 면모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왔으며, 어떠한 측면에서는 가장 순수한 사유 자체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설치와 퍼포먼스를 동반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에 TV 모니터나 비디오와 같은 새로운 기술-미디어를 사용하였으며,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컴퓨터가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디어는 당시의 전위적 위치에서 실험적으로 활용되는 수단 이상으로 인식되지는 못했다. 미디어가 예술을 구성하는 성분 자체가 된 것은 백남준에 이르러서이다. 백남준은 비디오라는 매체가 지닌 성질 자체를 예술적 표현의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서 이전까지 보조적 수단에 머물렀던 미디어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즉, 미디어는 예술의 개념 종속화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부터 추상적으로만 표현되었던 시-공간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예술의 표현 범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효과적 미래 예술의 주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를 넘어 현대 예술의 흐름은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 작업들이 혼성적 결합의 형태를 띄고 발생하고 있으며 미디어에 의해 매개된다. 미디어는 멀티미디어적 속성을 바탕으로 각 장르가 공고히 유지했던 고유의 성질을 융합시킨다. 따라서 현대 예술은 매우 혼성적 모습으로 전개된다. 마셜 맥루한은 인간의 감각들이 분배되는 비율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의 예언처럼 현재의 기술-미디어 및 그와 결합된 예술은 본래의 예술이 중시했던 의미와 메시지보다는 서로의 교류에 의해 만들어진 혼성 감각의 전달을 더욱 중시하는 듯 보인다. 이는 앞으로의 예술이 장르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해 개진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희망을 갖게 만드는 반면, 미디어에 의해 구성되고 연결되는 예술 형식과 내용에 관한 진정성에 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러한 시선은 예술과 기술-미디어와의 결합이 아방가르드 정신이 왜곡된 채 형식적인 실험으로 물화되는 이유는 매체를 예술의 대립항으로 위치시키는 일종의 오래된 습관 때문이다. 모더니즘 시기에는 이러한 기술 미디어의 전면화 (당시에는 좀 더 형식주의적 측면에서 두드러졌지만)에 관하여 ‘심미주의’와 ‘기술주의’로 나뉘어 각각 테크놀로지의 심미화와 예술의 테크놀로지화를 부추겼는데, 이러한 관점들은 예술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주요한 시선, 즉 감성과 이성의 측면으로도 확대되어 이해되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현 시대의 예술을 바라보는 데 있어 그리 유용하지 못하다. 현대 예술과 결합된 기술-미디어는 과거처럼 이성적 측면에서 바라보기엔 매우 감성적이고 혼성적이기 때문이다.
2. 미디어에 의해 매개된 사회, 한국이라는 첨단
예술은 사회를 반영한다. 그리고 사회를 통해 그 개념을 변화시켜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미디어와 융합하여 전개되는 최근 현대 예술의 모습은 보다 분명하게 사회의 모습을 형태적인 측면에서부터 반영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미디어아트는 개념미술이 보여주었던 예술의 개념과 범위의 문제를 현대의 시점에서 다시 새롭게 제기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디어가 그 자체로서 예술의 몸체가 되는 것을 넘어 예술과 예술을 연결시키고 융합시키는 가교 역할 또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우리 사회는 미디어에 의해 매개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를 활용하여 일하고 유희하며 미디어를 통해 소통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러한 미디어에 의한 사회 변화의 폭이 매우 크고 넓은 국가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은 최첨단의 IT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서 언제 어디서나 또한 누구라도 손 쉽게 인터넷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으며, 국가별 컴퓨터/모바일폰 보유율에 있어서도 항상 수위권에 들어간다. 한국은 세계 속에서 미디어 강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정의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미디어아트 역시 주목받는 대상이 되곤 하였다.
국내에서 미디어아트에 관한 관심이 적극적으로 표명된 해를 2000년 남짓으로 보자면(한국에서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초, 아트센터 나비와 같은 미디어아트 전용 센터의 건립 및 2000년 서울에서 '미디어시티 서울'이라는 미디어아트 전문 페스티벌이 만들어진 이후 여타의 지역에서 앞다투어 미디어아트 전문 행사들이 발생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국가적으로 과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행사가 기획되고 있었으며, 그러한 행사들의 주제는 항상 '새로운 예술, 미디어아트, 과학과 예술의 만남' 등등이었다. 해외의 유관 기관들이 보다 구체적인 주제를 통해 미디어아트가 지닌 잠재력과 다양성을 보여주던 상황에 비하면 기대에 비해 늦은 출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이유들에 의해 혹은 백남준이라는 선구자격 아티스트에 의해 주목받고 기대되는 국가였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한국의 미디어아트의 발전 속도가 혹은 그러한 예술 작업을 소개하는 틀거리가 그리 크게 바뀌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미디어아트는 다분히 시각적 차원으로만 발전하고 있다. 워낙 시장이 작아 다른 실험적인 추구가 상업적으로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0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이제 '미디어아트가 과거의 예술과는 어떠한 점이 다른가'라는 해묵은 질문을 또 꺼내놓는 것보다는, '어떠한 매체를 통해 예술이 우리에게 새로운 감성을 전달하고 있는가'에 집중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디어'라는 '아트'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점점 그 모습을 감추어간다. 마치 처음 미디어아트가 소개될 때, '미디어' 앞에 붙는 '뉴'라는 수식어구가 없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에는 필요한 것이 있다. 미디어아트가 지닌 진정성에 관한 반성과 다양한 실험에 대한 추구가 그것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미디어아트가 보여주는 시각적이면서도 화려한 쇼만을 무비판적으로 즐기기보다는 보다 실험적인 미디어아트의 수용과 소개가 시급한 상황이다. 화려함과 반짝거림을 강조한 미디어아트의 일면을 체험하고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미디어'라는 기술적 시도가 결합된 예술이 제시할 수 있는 광범위한 영역을 탐구해야 할 시기이다.
3. 창의적 실험과 내용의 깊이, 가능한 시도, 불가능한 조화?
미디어아트는 20세기 후반에 소개된 이래, 지속적인 견제와 혹평을 견뎌왔다. 이는 한국에서만이 아닌 전 세계의 현대 예술 흐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미디어아트가 직면한 현실이다. 몇 가지 주요한 쟁점들을 열거해보자면, '기술적 요소들에 치중하여 예술로서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라는 점을 첫 번째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본질적인 미디어아트가 내포한 딜레마일 수 있다. 이러한 딜레마는 '예술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속성들을 예술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라는 연이은 질문들을 발생시킨다. 더군다나 미디어아트가 제시하는 새로움이 기술적인 차원에서만 발생할 때 이러한 질문들은 예술의 근본적 개념과 범위의 문제로 회귀한다. 두 번째로 미디어가 가진 근본적 성질에 기인한 문제들이다. 가령, 저작권 문제 및 그로부터 기인한 상업적 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운 점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디어아트는 다양한 장르의 결합에 의해 혼성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작가가 작품의 모든 부분을 스스로 제작하고 또한 제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하는 미디어아트의 성격상 갈수록 더 확대되어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아트는 예술의 경계들을 건드리며 양적으로 또는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예술의 모습으로 인정받고 있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미디어아트가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 해결해야만 하는 선결 과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미디어아트가 수없이 반복해왔던 기술적 차원의 형식적 실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미디어아트의 경우에도 이러한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해외에서 수년전 시도되었던 기술적 시도가 내용적 연결 없이 반복된다면 과거의 기술 시연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적 놀라움이 예술로 표현되고 정의되려면 분명 그 기술이 의미있게 구현될 내용적 맥락이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두 번째로 제기된 사항들과 밀접한 상호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미디어아트의 내용적 속성들이 안정성있게 구현될 시장이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기존의 예술 작품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채널로는 미디어아트가 가진 특성이 발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새로운 형식의 시장 개념 형성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분야의 협업과 관련 부처의 지속적인 지원 정책도 해당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예술가 개인이 접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의 수준과 실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미디어의 수량이 얼마나 되겠는가? 미디어아트는 기존 예술과는 차별되는 분명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것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방법 역시 달라져야 한다. 이제 몇몇 천재적인 작가를 통해서 장르가 형성되고 발전되는 시대는 지났다. 해당 영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과 그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이론적, 행정적,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012 경남도립미술관 한국현대미술의 흐름Ⅴ-미디어아트전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