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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게임과 예술성 :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본문
0. 인식의 변화
지난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성년자들에게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캘리포니아 주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미성년자에게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할 경우 최고 1000달러 벌금을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대법원은 게임을 예술의 한 장르로 판단하여 책이나 만화, 연극처럼 언론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원 판사의 판결이다. 그는 “어린이를 위해로부터 보호할 권한은 있지만 미리 판단해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재량의 권한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혹자는 이러한 위의 사례를 단순히 미국 게임 산업계의 승리로만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게임을 보는 우리의 인식과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단순히 게임을 하나의 오락-산업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상하고 경험했던 다양한 문화-예술의 일부로서 인식한 것이며, 게임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 판례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는 곳곳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 지난 5월 세계 최대의 박물관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The Art of Video Games'을 주제로 80여개 이상의 유명 비디오 게임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갖는다고 밝혔으며, 미국 전역에서 심사를 통해 선발된 문화 예술 단체 및 예술인에 지원금을 전달하는 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국립 문화 예술 진흥 기금)의 지원 대상에 게임이 포함되면서 비로소 게임이 예술의 한 종류로 인정받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들은 대중들에게 게임을 예술의 일부분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게임과 예술은 아직까지 그 개념적 간극이 존재하고 있으며, 실행 형태나 접근하는 방법 또한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를 기반으로 한 기술-미디어의 발전 및 예술 개념의 변화는 이러한 간극을 좁히고 있다. 과거 예술이 고집했던 화이트 큐브에서의 전시나 고차원적 추상과 같은 이해하기 힘든 예술 작품은 보다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 보다 친절한 설명 및 형태로서 제시되고 있으며, 게임은 제한적인 사적 공간과 매체의 한계를 벗어나 사회의 전반적인 요소에서 차용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에 몇 가지 단초를 제공한다.
1. 공유의 전제
게임과 예술이 지닌 공통 분모를 찾아보기 위해 우선 근본적인 부분에 접근해보자. 게임 및 놀이 문화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에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호이징하의 언급에 따르면, 역사적인 순간들 속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유희적 놀이 본능이 발현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데 그가 접근하고 있는 인간의 놀이 본능은 예술 영역에서 발견되는 근원적 조형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1] 그는 인간이 행하는 ‘놀이’의 근거를 ‘형상화 작용’에 근거하는 현실의 이미지 전환 작업이라고 조건 짓고 있으며 놀이와 예술의 관계에서 ‘시’ 와 ‘음악’을 예로 들며 둘 사이의 밀접한 연결성을 설명한다. [2] 특히 ‘시’ 라는 장르에 관하여 ‘시를 짓는 것(Poiesis)’ 자체가 사실상 놀이 기능이며, 그리스 시대 이후로 사회가 고도로 조직화하기 시작하면서 종교, 과학, 법률, 전쟁, 정치 등이 놀이와의 연관성을 잃어버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의 기능만이 여전히 놀이 영역 속에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논리와 인과 과정, 관념과 판단의 영역이 들어서기 전 인간에게 유희적이고 자유로운 혹은 자연스러운 영역으로서의 놀이의 영역을 산정하고 예술이 지닌 감성적이고 유희적인 영역으로부터 그 연결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놀이의 동기가 구체적인 목표를 따로 설정하지 않고 순수한 ‘기쁨’이라는 덕목을 추구하는 점에 있어서의 창작적이며 예술적인 지점 또한 언급한다. 그러나 게임은 자신이 지닌 형식 및 규칙이라는 점에서 놀이와 구분된다. 놀이는 구속을 벗어나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데 반해, 게임은 규칙의 체계로 제약된다는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3] 그러나 최근의 예술 작업들이 일종의 규칙들에 의해 제어되고, 관객들과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게임과 예술의 공유 지점은 보다 확장된다.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의 1968년작 <비디오 복도 Video Corridor>는 관객들이 일방적인 작품의 수용자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작가가 만들어놓은 규칙-환경으로 스스로 진입하게끔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는데, 관객들은 좁은 복도를 지나 모니터를 통해 자신들을 감시하는 카메라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관객들은 작가가 미리 만들어놓은 이러한 규칙-환경을 통해 작품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브루스 나우만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는데,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읽을 수 있는 도시 Regible City>의 경우 관람자가 탈 수 있는 자전거를 설치해놓고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작가가 만든 (일종의 규칙에 따라) 가상 도시를 탐험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흔히 우리가 게임센터에서 볼 수 있는 각종 라이드물(자동차 및 모터사이클 류의)과 유사한 설치-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관람자들에게 요구되는 규칙과 목적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놀이-게임-규칙-예술 이라는 요소들을 자유롭게 차용한 작품 또한 찾아볼 수 있다. Stephan Eichhorn, Tjark Ihmels, KP Ludwig John, Michael Touma 등의 실험적 작가들은 1996년 <Die Veteranen>이라는 영화와 게임을 합쳐놓은듯한 상호작용적 이벤트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은 각종 이미지가 뒤섞이고 사운드 또한 이미지에 연동되지 않는 일종의 가상 환경 게임을 만들었는데, 그들은 관객(or 사용자-게이머)들이 이 작품을 통해 자신들(작가)에 의해 제시되고 만들어진 규칙이 아닌 스스로의 규칙을 고안하길 원하였다. 이와 같은 사례는 예술과 게임이 더 이상 내부적인 규칙의 유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점 (게임의 규칙성, 예술의 무규칙성)을 이용하여 새로운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단계임을 시사한다.
2. 현실의 가상 및 심미화 : 재생산된 실재의 기술적 조작
게임과 예술이 위에서 언급한대로 형상화 작용 및 내재되어 있는 규칙성에 기반을 두고 그 공유를 전제한다면,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사회의 변화하는 모습들은 그러한 공유 지점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소가 된다. 현재 우리의 실제 세계는 매체에 의해 강력히 매개되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탈실재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우리의 현재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이 꽤 설득력있는 주장이라는 데에 큰 이견을 제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령 우리는 핸드폰 알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인터넷 페이지를 열어 세상의 소식을 찾아보고 핸드폰을 통해서 타인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는 일터를 생각하기 힘들게 되었고, TV/인터넷이 없는 여가시간을 떠올리기 힘들다. 우리들의 삶의 방식들이 자연스레 가상화 된 현실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매체가 지정한 시각으로 신체의 리듬을 조정하고, 세상의 갖가지 이야기들을 사각 스크린을 통해 접하고 있는 우리는 전자파의 파동으로 친구의 음성을 기억하며 가상의 이미지들로 삶의 위안을 얻게 된다. 어느새 철저하게 가상화 된 현실은 이렇듯 기술 집약적 매체들로 매개된 실재로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볼프강 벨쉬(Wolfgang Welsch)의 말을 빌자면, 현실은 매개적으로 자기의 근원에까지 가상적이고 조작 가능하며 심미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 하나의 산물이 된 것이다. 그는 현실에 대한 재생과 시뮬레이션 사이에 있는 차이가 점점 더 모호해져 매체 자체는 자신의 이미지들을 점점 가상성 및 놀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시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최근 등장하고 있는 가상적 예술 및 게임들은 유사-현실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관객 및 사용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듯 하다. 2002년부터 <Common-Grounds>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물리적 공간과 가상적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실험을 해온 Workspace-Unlimited는 3D 게임인 <Quake III>의 물리엔진을 변형시켜 실제 존재하는 공간들을 가상적으로 구성하는 동시에 관람객들을 온라인으로 접속시켜 가상 공간 속에서 소통하게 만든다. 반면, 록스타(Rockstar)에서 제작한 <그랜드 테프트 오토 (Grand Theft Auto)> 시리즈를 살펴보자. 이 게임의 경우 ‘액션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 ‘액션’에 치중하고 있지만, 실제로 게임을 접하는 유저는 실제 도시를 모델(마이애미, 샌프란시스코 등)로 제작된 게임 환경과 현실과 유사한 여러 가지 설정에서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게임과 예술의 차이점은 분명해 보인다. <Common Grounds>가 사람들의 소통 자체에 목적을 두고 가상과 실제 현실 공간을 매개했다면, <GTA> 시리즈의 경우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를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의 목적과 기능은 여러가지 형태로 변화할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린든 랩(Linden LAB)의 3D 온라인게임인 <세컨드 라이프>는 게임이 지닌 새로운 가능성을 잘 보여주었던 사례이다. 제목처럼 ‘제 2의 인생(Second Life)’을 온라인 가상 커뮤니티를 통해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닌 이 게임은 다른 여타의 게임처럼 달성해야 할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대신 그 속에서는 실제의 삶과 마찬가지로 모든 활동들이 발생한다. 플레이어는 가상공간 속에서 또 다른 자아(Avatar)를 설정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다양한 활동들을 실행한다. 이 게임은 그 자체로서 또 다른 새로운 환경이자 인터페이스가 된다.
3. 반성-취미로서의 게임 예술 :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앞에서 언급한 현실의 가상화 및 심미화는 감성적인 지각으로부터 발생한다. 여기서 말하는 감성적 지각이란, 매체에 의해 탈실재화 된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감각적인 ‘쾌’를 추구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에서 제공하는 가상적 환경에서의 대리만족 현상과 유사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현실을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형상화 작용에서부터 유희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만들어진(형상화된) 이미지 세계 속에서 물리적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감각 만족을 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감성적 지각이 지닌 이중적 특징이 드러난다. 바로 감각과 지각이다. 심미적이라는 것은 감각에서 쾌를 강조한다는 관점에서 ‘쾌락적인’ 의미를, 지각에 대한 고찰 태도라는 관점에서 ‘이론적인’ 의미를 취하는데, 이러한 부분은 취미-만족에 있어 단순한 '감각-취미 Sinnen-Geschmacks'로서와 '반성-취미 Reflexions-Geschmacks'로서의 구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자가 보다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인간의 욕구라면, 후자는 그것에 대한 반성적인 태도이다. 일종의 거리두기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 반성-취미로서의 심미화에 대한 욕구인 것이다. 이러한 도식에 게임과 예술을 도입해보자. 몇몇 사례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게임과 예술이라는 상이한 장르에서 그 좁혀진 거리를 체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게임이 스스로가 지닌 제한적인 규칙들을 포기하고 예술 작품이 관객들을 더 이상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닌 창조적 시스템의 일부로서 받아들인다면, 게임과 예술의 공약 가능성은 보다 확대될 것이다.
[1]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놀이의 본질을 순수한 생리 현상이나 심리적인 반사 작용 이상의 것으로서 ‘본능(Instinct)’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정신(Mind)’이나 ‘의지(Will)’와도 다른 비물질적 성질의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람: 요한 하위징아, 김윤수 역, 호모 루덴스, 놀이와 문화에 관한 한 연구, 까치글방, 1993, pp. 9∼10 참조.
[3] 제임스 뉴먼, 박근서 외 역, 비디오게임,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7, p. 28. 놀이와 게임의 규칙성에 따른
분류 및 차이점에 관한 연구는 사회-심리학자인 로제 카이유와(Roger Caillois) 및 피아제(Jean
Piaget)의 놀이-게임의 규칙성에 관한 연구를 참조하기 바란다.
퍼블릭아트 2011년 8월호 기고글
References
Ian Bogost, Unit Operations, An Apporach to Videogame Criticism, MIT Press, 2006
James Newman, Videogames, 2007, 박근서 외 역,『비디오게임』, 2007, 커뮤니케이션북
Johan Huizinga,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 Element in Culture, 1955, 김윤수 역, 『호모 루덴스, 놀이와 문화에 관한 한 연구』, 도서출판 까치, 1993
Ralf Schnell, Medienaesthetik, 2000, 강호진 외 역, 『미디어미학』, 2005, 이론과실천
Wolfgang Welsch, "Artificial Paradises? : Considering the World of Electronic Media - and Other Worlds", Grenzgynge der? Sthetik, 1995, 심혜련 역, 미학의 경계를 넘어』, 향연,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