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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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래를 준비하는 예술계의 현재: 영상-예술 아카이브

yoo8965 2015. 11. 14. 20:12

영국 리버풀의 FACT(Foundation for Art and Creative Technology) 웹페이지


   흔히들 기록(사실(事實)을 적음)을 남기는 행위를 과거라는 시점을 중심으로 이해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무언가를 남기려는 행위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 행위는 분명 현재적인 행위와 맞닿아 있다. 지나버린 사실들에 관한 기록은 당시의 기준이 아닌 현재의 시각으로 분류되고 저장된다. 따라서 이러한 시간의 뒤틀림에 의해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대상과 그 시점이 괴리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 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분류되지 않는 분야들, 가령 예술 분야와 같은 장르는 그것의 기록물을 아카이빙 하는 데에 있어서도 관점 및 시기의 차이에 의해 그 기록의 질과 형태, 양식이 달라진다. 예술에 대한 이해는 당연하게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매우 큰 폭으로 변화한다. 당시의 유명한 작가와 작품을 현재의 기준으로 측정하기가 소원한 일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과거의 예술 작품에 대한 기록물은 남아있는 물리적 형태의 작품들과 인쇄물에 기반한 기록 양식들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물리적 형태가 남아있지 않은 혹은 남아있을 수 없는 예술 작품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그것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까. 예술을 기술적으로 지지해주는 매체 자체의 변화가 진행되었음에도 그것을 과거의 형태에 속박시켜야 할까?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예술 변화의 양상을 수반하는 새로운 예술-아카이브의 형태를 가능케 했다. 바로 영상-예술 아카이브이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 뉴욕 맨하탄, 샌프란시스코의 모마(MoMA) 라던지,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의 경우, 발 빠르게 이러한 예술 흐름의 변화에 대처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까지 진행해왔던 예술 아카이빙 시스템에 새로운 미디어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포맷을 접목하여 앞으로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비디오아트에 주목했던 샌프란시스코 모마는 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아카이브를 구축해오고 있으며 테이트 모던의 경우, ‘인터미디어 아트(Intermedia Art)'라는 온라인 페이지를 따로 개설하여 기존 형식과 차별되는 ’뉴 미디어, 사운드, 퍼포먼스(New Media, Sound, Performance)'와 같은 빗물질적 예술 형식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기술-매체와 예술의 융합을 선도하는 (미디어 혹은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아트 센터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작품들의 아카이빙이 그들의 존립 이유와 맞물려 있기에 그 고민의 심도 또한 상당했다. ‘팩트 TV(FACT TV)’ 라는 자체 영상 플랫폼을 만들어 그들 스스로의 전시와 이벤트를 기록했던 리버풀의 팩트(FACT)는 최근 자신들의 페이지 전체를 영상 수용에 적극적인 형태로 변경했으며, 오스트리아의 알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는 미디어 랩(Media Lab) 기반의 활동을 거점 삼아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을 유치하는 동시에 이를 자신들의 DB로 구축했다. 반면 독일의 ZKM은 몇몇 형식들을 아예 상설 전시로 만들어 전시 자체를 아카이빙하고 있다. 특히, 교육 프로그램과의 연계를 통해 이러한 흐름에 대비하는 자세를 보여주고도 있는데, 최근 뉴욕대학교(NYU)가 '무빙 이미지 아카이빙 프로그램(Moving Image Archiving Program)'이나 UCLA의 ‘무빙 이미지 아카이브 스터디즈(Moving Image Archive Studies)’와 같은 교육 과정을 개설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변화하는 예술 형태와 흐름에 연동되는 교육과 전시, 상영 시스템의 재설계가 요구되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공식 오픈한 한국 비디오아트 아카이브 더 스트림(THE STREAM) 웹 페이지

 

  국내의 경우에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대비하는 움직임들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3년 ‘미술연구센터’를 개소하며 예술 전반에 걸친 자료들을 모으며 새롭게 오픈한 서울관을 중심으로 디지털 자료 수집을 시도하고 있으며 광주아시아문화중점도시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예술 자료, 특히 비디오아트를 중심으로 하는 무빙 이미지 자료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최근 오픈한 민간 단체의 반가운 움직임도 포착된다. 한국의 비디오아트 아카이브 플랫폼을 표방하며 런칭한 ‘더 스트림(THE STREAM)’과 같은 온라인 영상 공유 시스템이 그것이다. 공 기관과 미술관의 무거운 행보와는 달리 더 스트림은 발빠르게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에서 손쉽게 공유하여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영상 예술 작품에 관한 출판물을 제작하여 영상 작품에 관한 비평적 접근까지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발빠르게 변화하는 우리의 세계는 무엇인가를 기록하여 남기는 행위가 왜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변화의 흐름과 세기가 너무나도 강한 나머지 하나에 집중하는 동안 다른 것들을 놓쳐버리기가 일쑤이다. 따라서 특정한 형식으로 자료를 정의하고 분류하던 과거의 기준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한 시기이다. 만약, 이전의 아카이브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면, 이제 그 흐름 자체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제 조건들이 충족될 때, 최근의 유동적인 기술-미디어 및 영상 예술에 관한 앞서의 접근들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이정표로서 또한 과거를 비추는 현재의 거울로서의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Art Now 2015년 6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