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김가람 / 가상-존재와의 조우 : 타자라는 이름의 이중적 세계 본문

Arts & Artists

김가람 / 가상-존재와의 조우 : 타자라는 이름의 이중적 세계

yoo8965 2015. 11. 14. 19:13


타자라는 존재는 항상 이중성을 갖는다. 이러한 이중성은 자기 지시적 모습으로 드러나는 존재의 또 다른 영역이다. 타자의 존재의 영역은 사건에 대한 해석을 통해 우리의 인식 속으 로 들어온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서 종종 시선의 이중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것이 바로 타자의 이중적 측면을 감지하는 때이다. 사건을 마주할 때 우리는 그 사건 을 보며 때로는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또 다른 경우 타자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전혀 다른 각도의 해석을 내어놓는다. 만약 타자가 필연적으로 이중성에 노출되어 있다면, 이 러한 역할 전환에 따른 태생적 속성에 기인한 것이리라. 타자의 유형 또한 다양하다. 이데롤 로기적으로 볼 수도 있는 이 존재 유형은 결국 우리를 둘러싼 사회 속에서의 주체와 객체로서 혹은 대상과 본질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결국 나의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발생한다. 예술은 이러한 타자의 모습을 오랜 기간 동안 외면해 왔다. 예술은 지속적으로 주체화된 타자 를 그려왔으며 대상으로서의 타자에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경향은 변화하고 있다. 타 자는 오롯이 주체의 자리를 밀어내고 예술의 주요한 주제로 등장한 것이다.



<Jesus>, 캔버스, 아크릴, 40 X 40 cm, each, 2014


김가람은 사회적 시선을 감지하고 추출하며 이를 작업에 매우 유쾌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작가이다. 특히, 스스로의 젠더(여성)로부터 인식되는 사회적 시선에 민감하다. 드로잉 작업에 서부터 최근의 복합적인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일관되게 여성적인 것 (혹은 타자로 인식 될 수 있는 대상-주체들)과 그것의 사회적 인식 구조에 관한 실험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이러 한 인식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을 다양하게 선보인다. 드로잉 작업에서는 이를 상징적인 팝아 트적 구성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영상 및 온라인 웹 사이트, MP3와 같은 과감한 매체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직접 퍼포먼스를 수행하기도 하며, 최근엔 그러한 퍼포밍을 대신하 는 가상의 대리자를 세우기도 한다. 2011년 작인 <Jesus>와 <Allure>는 각각 여성의 하이힐 과 속옷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하이힐과 속옷은 그 자체로 여성성이 드러나는 상징적 오브제 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요소가 지닌 주체적 입장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인식적 측면에서 발생한다. 하이힐은 여성의 다리를 늘씬하게 보여주며 섹슈얼한 감성을 자극 하는 오브제이지만, 그러한 하이힐이 그것을 착용하는 여성에게 주는 고통에 관하여 우리는 짐짓 모른 채한다. 작가는 이러한 요소를 십자가 모양의 리본으로 형상화한다.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며 사회적 미를 획득하려는 시도를 희생이라는 상징적 행위로 재-포장하는 셈이다.


<Virgin Candy>, animation & installation, 2013


위의 방식을 구조적으로 분석해보면, 이른바 매개물에 대한 재-매개의 방식을 차용하는 것 인데, 같은 해 진행했던 <thesexybikini.com, 2011>은 보다 강화된 이중적 시선의 재-매개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최근 발생하는 현상,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 비키니 수영복이나 속옷 등 을 구매하고 이에 대한 착용 샷을 보내주면 할인을 받거나 무료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 게 되는 사례들에 대한 사회적 리포트에 가까운 작업이다. 작가는 실제로 온라인 페이지를 제 작하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14.99 파운드에 비키니 수영복을 판매한다. 그리고 위의 사례와 같 이 수영복 착용 사진을 제공한 이들에게는 구입 비용을 환불해 주었다. 오프라인 공간에 마련 된 탈의실에 부착된 카메라를 이용해 셀프 샷을 찍으면 온라인 페이지에 등재되는 구조이다. 이 프로젝트는 여성들의 자신의 신체에 관한 이중적인 심리를 교묘하게 드러낸다. 실제 비키 니를 구입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출된 몸을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한 채 기록으로 남기고, 또 한 이를 감추려고 하는 이중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이중적 욕망이 문화적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면, 2013년에 진행된 <Virgin Candy>의 경우 한국이라는 유교 문화권이 지닌 처녀성에 대한 모순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혼 전 순결에 대한 서약 을 약속하는 의미의 이른 바 ‘순결 캔디’는 1990년대 한국 일부 중, 고등학교에서 나누어 졌 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상반된 가치관을 유머러스하게 드러 낸다. TV 광고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실제 설치되어 캔디를 구입할 수 있는 밴딩 머 신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마치 이 사탕만 먹으면 처녀성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헛된 과 장 광고의 형식으로 나타나며, 본래 화장실에서 콘돔을 판매하는 자판기를 통해 ‘순결 캔디’를 구입할 수 있게 유도한다. 지켜야 하는 것으로서의 성이 우리 문화가 지닌 주체적 시선이라 면,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른 문화적 가치, 즉 타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인식과 충돌 한다.



<Sound Project by 4 Rose>, 2014 ~ ongoing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4 Rose> 프로젝트는 우리의 인터넷 환경에서 발생하는 수많 은 주체와 타자의 교차적 시선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댓글 문화로 대변되는 이러한 온라인 피드백 시스템은 본래 상호작용적인 미디어의 진화에 있어 필연적 기능이지만, 이는 숨겨진 채 나타나는 무수히 많은 타자들의 시선에 노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보이지만, 보 여지는 대상은 결코 나를 볼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은 대상에 대한, 즉 타자에 대한 무분별한 주체의 욕망이 폭력적으로 재현되는 역기능 또한 수행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러한 특성이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는데,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매우 가상적 이고 유희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작품의 개념은 매우 간단하다. 얼굴 없는 사이버 가수인 4 Rose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뉴스에 대한 댓글들을 노래하는 형식이다. ‘4 Rose’는 한국 사회 가 열망하는 걸 그룹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Red Rose, White Rose, Black Rose, Blue Rose 4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이 댓글을 노래로 변주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이들은 실 제 익명의 가수가 존재했던 기존의 사이버 가수 시스템이 아닌, 말 그래도 컴퓨팅에 의해 만 들어진 가수들이며, 노래 또한 댓글을 음성으로 변조하는 컴퓨터 시스템의 로직을 따른다. 따 라서 이 그룹의 디렉팅을 맡은 작가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가수와 그들의 음성은 가상적 형태 로 실재한다.


2014년 5월 디지털 싱글 ‘사심’ 발매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0개의 싱글앨범이 발매되 었으며 국내 음원사이트 포함 전 세계 80여개국의 아이튠즈와 아마존 뮤직을 통해 발매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발표되는 싱글 앨범마다 당시 한국 사회가 주목하는 사회적 이슈들을 담 고 있다. 가령, 2014년 8월에 발표된 디지털 싱글 <YOU C>의 경우, 유병언 사망사건 관련 국과수의 부검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반응을 담고 있으며, 2015년 1월, <It’s a crazy news>의 경우, 최근 떠들썩했던 대한항공 사건 - 이른 바 땅콩리턴 사건에 대한 갑과 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치 타자들의 언어를 또 다른 가상의 타자의 입을 빌어 전달하는 듯 하다. 이 프로젝트는 앞서 언급한 사회의 이중적 시선-욕망에 대한 장기적인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 특히 타자로 분류되는 사 회적 층위들로부터 발생하는 이중적 시선을 관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중요한 사실을 전제한다. 특정 사건에 대한 주체 및 이를 관찰하는 주체로서의 타자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감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해당 작품을 감상하는 모든 이들을 가상적 타자들의 시선에 포획된 주체의 위치로 고정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된 위치에서 누구도 온전히 빠져나갈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가상이라는 이름의 타자 역시 현실의 존재로 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러한 타자는 가상과 익명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