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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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예술, 수렴과 융합의 기점 _2014 아티언스 랩

yoo8965 2015. 3. 24. 16:28



   도시 계획가이자 문명비판가인 루이스 멈포드(Mumford. L)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며, 과학 기술의 진보로서가 아닌 순수한 인간의 결과물로서 피라미드를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그는 결국 과학 기술이 도구적 수단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지배체제와 관련이 있으며, 인간의 활동 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파악한다. 만약, 멈포드의 인식처럼 인간의 내재적 활동 속에서 기계적인 혹은 과학적 원리들을 찾아본다면 우리가 체감하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은 매우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화두 또한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 될 여지를 지니게 된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 가능성은 그 자체로 두 흐름에 관한 이분법적 구도를 전제한다. 서로 다른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그러한 흐름의 공약 가능성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켜 왔고, 근본적으로 인간의 상이한 측면을 반영한다는 가정을 통해 이들을 수렴시키고자 시도해왔다. 그러나 하이데거 (M. Heidegger)가 ‘테크네 techne’ 개념을 통해 주장하듯, 이들은 서로 다른 무언가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의 어원이 라틴어‘Scire[안다]’이며, 체계화된 보편적 지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에피스테메 Episteme'에서 유래한 것임을 떠올려보면 예술이 추구했던 이상향과 과학이 추구했던 목표가 일정 부분에서 다른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플라톤(Platōn)은 인간의 지식을 에피스테메와 더불어 사실과 맞지 않는 거짓 혹은 사실과 맞더라도 논리가 결여되어 있는 지식을 의미하는 ‘독사 Doxa’로 나누어 인류에게 가장 기본적인 지식에 관한 입장을 정리했는데, 이는 예술이 사실 [실재] 그 자체가 아닌, 현존하는 대상의 모방이라는 점, 그리하여 과학의 근원이 되는 에피스테메보다는 독사적 지식에 가깝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입장들은 서구를 넘어 전 세계의 기본적 인식 구조를 형성시키는 큰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우리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주장하는 동시에 두 영역을 양극단으로 위치시키고 있는 사실은 그리 이상한 전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과 예술이 서로를 향해 수렴되려 한다는 사실은 각각의 발전단계 및 개념 확장의 흐름 속에서 발견된다. 과학은 최근 눈에 보이지 않는, 과거 우리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던 사실을 입증하려 하고 있으며, 예술은 논리적 구조 속에서 체계화된 보편적 지식을 전제한다. 즉, 현재까지의 상호간의 영역이 전복되어 대상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들은 예술의 과학화, 기술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예술화를 가속화시킨다. 프랑스 철학자 질베르트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기술적 대상들을 분석하며 생물적 특성으로 기능화 된 기계들에 관하여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생물학적 기술들, 더 나아가 인간의 특성을 내재한 기술들은 서로 끊임없이 연결, 해체, 수렴되어 스스로의 비결정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자면, 기술은 그리고 좀 더 확대하여 과학은 이러한 비결정성의 문제로 회귀하는 듯 보인다. 이는 결정된 사실을 입증해 온 과거의 행태와는 확연히 차별되는 행보이며 예술과 조우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대조적으로 예술 또한 이러한 비결정성을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 에코(Umberto Eco)가 언급했듯, 현대 예술이 강조하는‘열린예술작품’이라는 상호작용적 형태로서 말이다.

   아티언스 랩 2014에서의 시도들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술가의 시간, 과학자의 공간’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과학자와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예술 개념에서 과학적 토대를 발견했다. 지하루와 그라함 웨이크필드(Graham Wakefield)는 지난 2007년부터 ‘인공자연 Artificial Nature'라는 주제에 몰두했다. 우리가 마주하는 자연계의 복잡성이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작품이다. 이들의 시도는 단지 과학의 인터페이스로서의 예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때때로 [과학이 입증하는] 우리의 현실을 구현하는 원칙들이 어떠한 예술 작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의미로 우리에게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에 관한 예술의 호기심은 때때로 과학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안성석은 개인과 사회가 마주하는 현실적 사건을 가상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현재의 기록이 다른 의미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 기술이 제시했던 냉동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한편, 문준용은 매체 기술이 제기하는 공간의 다의성을 탐색한다. 그는 프로젝션 맵핑(3D Projection Mapping) 기법이 고정되어 있는 대상에 머물러 있음을 파악하고, 유동적인 빛을 투사하는 기계와 대상의 관계에 의해 재편되는 공간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작품들이 과학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들의 현실을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라면 과학의 원칙 자체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도 존재한다. 김희원의 작업은 ‘표준시’라 명명되는 과학적 시간 개념에 관하여 예술적 문법, 특히 사진이라는 매체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관객들은 사진기에 의해 파편화된 개인의 시간들이 과학이 정의하는 표준시라는 개념과 충돌하는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 로와정은 보다 적극적으로 과학과 예술의 프로세스의 상이함에서 논의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그들은 ‘뇌자도 측정실험’의 데이터를 자신들의 예술 작품으로 제시하는데 과거, 몇몇 과학자들의 자신들의 실험 과정을 예술적 프로세스로 제기한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로와정의 방식은 오히려 과학이 예술로서 성립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다시금 제시하는 셈이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 작가인 미나미 슌스케의 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적 매체 상호간의 전환 과정을 통해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매체 환경을 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이 예술에 있어 개념적 원천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영화감독 김대현과 웹툰 작가인 김명호의 작업은 이러한 측면을 잘 드러내는데, 김대현에게 있어 과학적 개념인 특이성(Singularity)은 작품을 구상하는 모티브이자 내터티브의 주요한 요소이며 또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보편타당한 과학적 근거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특성 또한 과거의 과학적 대상을 상회하는 예술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대조적으로 김명호는 만화가 가진 특성들을 통해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려 시도한다. 그가 주목하는 주제는 ‘시간’인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연구분야인 ‘원자시계’라는 요소가 우리의 삶과 어떠한 상관관계를 지니는지에 집중한다. 또한 심소연은 매우 현실적인 방식으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실천하는 작가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예술과 과학의 괴리감을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프로그램을 통해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시네마토크, 단편영상제작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은 과학자와 예술가를 직접적으로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융합적 시도들의 한계 또한 명확하다. 이는 비단 2014 아티언스  랩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는데, 예술과 과학의 수렴의 지점을 발생시키려 했던 시도들이 일종의 시대적이고 문화적인 스타일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융합의 프로세스는 그 자체로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예술의 [혹은 과학의] 실험적인 형태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융합 프로세스의 부산물 격인 실험적 형태 자체로의 의미 획득에 그치는 시도들은 융합의 진정한 지점에는 도달할 수 없다. 또한 과학 분야 및 예술 분야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흐름이 아닌, 행정적 제도 속에서 인위적으로 구성된 시도들은 자연스럽게 융합의 결과물에 관한 시간적 압박을 전제해야 했다. 따라서 과학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는 데에 있어 그리 큰 기여를 하지 못한 채, 실험적 시도를 행했다는 자위적 만족감만을 스스로 충족시키는 데에 급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오히려 두 분야의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역설적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만약, 이러한 융합의 시도가 이전까지의 과학과 예술의 이분법적 구도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본래의 목적을 스스로 위반하는 자기-모순적 행위로 그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그리 쉽게 달성될 수 있는 목적지향적 대상이 아니다. 또한 단시간의 시도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이 전제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제 더 이상 예술과 과학, 인간과 기계는 이제 더 이상 서로 대치하는 관계가 아닌 조화로운 상호 협력적 지형을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예술은 과학의 틈을 드러내고 과학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아무쪼록 대전의 아티언스 랩 프로젝트가 예술가와 과학자들의 영감을 북돋으며 서로를 향해 수렴하는 기점이 되길 기원한다.

대전문화재단 2014 아티언스 랩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