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장지희 / 우연히 마주치다 _그들의 상호작용적 전위(轉位)작용 본문

Arts & Artists

장지희 / 우연히 마주치다 _그들의 상호작용적 전위(轉位)작용

yoo8965 2008. 10. 27. 04:43


 어두운 공간 속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네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맞은편의 대상을 응시하며 관찰한다. 관찰자인 나와 그 관찰의 대상인 타인. 이러한 관계설정은 자아와 타자의 근원적인 구분을 넘어 작용의 송신자와 수신자로서의 서로를 전제하고 있다. 작가 장지희의 신작 <데자뷰>는 우리가 흔히 겪게 되는 무수한 마주침의 순간들에서 서로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처음 오는 곳, 처음 대하는 장면,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어디선가 이미 본 것 같은 느낌 을 가리키는 심리학적 용어인 데자뷰[déjà vu] 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관계에 대한 탐색 과정에서 오는 결과적인 현상으로서 제시된다. 서로에 대한 차이를 인식하고 구분하는 행위를 통해 그들은 서로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서로를 우연히 인지하게 된 그들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탐색하게 되며, 자신들 스스로의 몸짓으로 서로를 지각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집요한 탐색 과정 끝에 알게 되는 것은 그들은 결국 동일인이라는 사실이다. 작품은 자신과 다르지 않은 서로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다른 이들과의 동질성을 느끼는 일상적 순간에서의 극적인 카타르시스적 상황으로 보여준다. 예전 작업에서 자아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타자들과의 관계성으로 문제를 발전시키게 되며,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의 동질성을 발견하는 그러한 순간을 관심 어린 시선으로 소개한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지하철에서>는 또 다른 우연한 마주침이 발생하는 장소에서의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순간을 포착한 스틸 이미지로부터 시작된다. 지하철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러한 정적은 깨어짐의 순간을 맞게 되고 정지되었던 이미지에 생명이 불어넣어 지듯이, 포착된 순간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흘러가는 영상의 시간적 흐름 속에서도 처음 장면에서 보여졌던 순간의 궤적은 남아있는데, 장지희는 이러한 궤적과 흘러가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중첩시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 일상의 한 장면 속으로 침투하여 매일 무심코 반복하는 순간에서의 기억을 더듬어보고 있다. <데자뷰>에서의 클라이막스가 마지막 부분에서의 마주침의 순간이었다면, <지하철에서>의 클라이막스는 정적이 깨어진 순간으로부터 서서히 소멸하여 잔잔한 느낌으로 지속된다. 그녀는 일상의 이러한 작고 우연한 마주침의 순간을 우리들에게 같이 관찰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녀의 제안에 따라 그들과 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순간적인 클라이막스를 느껴 본다면, 그녀가 의도한 상호작용적 전위(轉位)작용을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에 관한 방법적 인식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유원준(앨리스온 디렉터)



** 위의 글은 2005년 9월 진행되었던
Space MASS 기획초대 장지희 개인전 도록에 삽입되었던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