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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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bit)는 형태(form)를 만들 수 있을까?

yoo8965 2007. 12. 11. 11:19

과연 비트(bit)는 형태(form)를 만들 수 있을까?


2005년 9월. 의류회사인 (주) 한섬의 투자를 받아 국내에 들어온 '비트폼(bitforms) 갤러리 서울'이 2007년 11월 전시를 마지막으로 2년여간의 활동들을 뒤로한채 사라진다. 비트폼 갤러리는 그동안 국 내외의 참신한 뉴 미디어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그들의 작품이 지닌 시장적 가치를 발견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최첨단의 디지털 미디어 예술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고자 시도했던 비트폼 갤러리가 지난 시간동안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최근 국내에서는 다양한 형식의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 작품들이 선보여지고 있다. IT 관련 최첨단의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국내의 상황과 맞물려 호기심어린 시도부터 시작하여 과학과 예술의 연결성을 제시하며 구체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전시까지 다양한 형태의 전시와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구체적 '형태(form)'가 없는 디지털 미디어의 유동적 성질때문에 다소 포함되기 어려웠던 뉴 미디어 아트의 형태들은 조금씩 현대 예술의 한 양상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의 상황을 느긋하게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후기산업사회의 도래 이후, 예술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회적 생산물로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자연스럽게 예술이 가지고 있던 소장가치들은 재화가치로 변화하였고, 경제적 가치로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물론, 예술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비롯하여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지만, 현대의 예술 작품은 경제성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척도를 지니고 사회와 복잡한 함수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예술의 흐름에서 뉴 미디어 예술 작품의 경우, 그 설자리가 분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기 위해서는 우선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의 형태, 즉 '뉴 미디어 아트' 라는 새로운 예술 형태(혹은 장르)에 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뉴 미디어'는 본질적으로 복제와 합성이 가능하며,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서는 본질적 속성 조차 물질적 체계를 벗어나 비물질적 체계에 근본을 두게 되었다. 즉, 뉴 미디어 예술 작품의 경우 벤야민이 말을 빌자면, '원본성'은 사라지고 그 원본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의 개념또한 몰락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원본성을 잃은 생산품은 그 가치 또한 함께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매우 현실적인 이유도 동시에 존재한다. 뉴 미디어 예술 작품을 구성하는 '미디어'가 계속 발전함에 따라, 기술 중심적 예술 작품인 뉴 미디어 예술 작품의 경우, 시간의 경과와 함께 작품의 의미 또한 퇴색되기 쉽상이며, 의미 보존을 위한 기술적 지원(유지 및 보수) 또한 행해져야 한다. 이러한 '일회성' 혹은 '번거로움'이 뉴 미디어 예술 작품의 경제적 가치를 상승시키지 못하는 현실적이고 주된 이유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미디어들을 활용한 예술의 경우 아직까지 경제성을 담보로 한 뚜렷한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기존의 예술의 형태와 결합된 다양한 시도들이 선보여지고는 있지만, 이 또한 안정된 형태로서는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뉴 미디어 예술 작품을 대상으로 활동을 보여온 전시 공간들의 상황(특히, 국내의)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 몇 년간의 동향을 살펴보자. 뉴 미디어(혹은 디지털) 전문 갤러리 혹은 지원 공간을 표방한 다양한 공간들이 그 목적과 형태가 전환되거나 폐관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이르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대의 예술 흐름이 그 경제적 가치와 산업적 시스템과의 영향 관계에 속해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뉴 미디어 예술 작업들이 놓여져 있는 현실은 어쩌면 너무나 살벌하고 냉엄하다. 이러한 냉엄한 현실 속에서 뉴 미디어 아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떤 것일까? 과연 새로운 미디어 예술 작품을 구성하는 '비트(bit)'는 현실적 '형태(form)'로서 자리잡을 수 없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보다 지속적인 뉴 미디어 예술 작품에 대한 연구와 실행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다.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새로운 미디어는 예술가들에게 있어 기존에는 생각지 못했던 '상상' 과 '이상'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있는 도구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미디어를 통한 예술 작품이 표면적으로만 포장되고, 기술적 신기함으로만 그치며, 예술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소장 가치'를 저버린 채 정체(滯)된다면, 뉴 미디어를 통한 예술의 형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현실적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미디어 예술 작품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역설적일지 몰라도 가상적인 그 무엇이 아닌 '실체'이자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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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앨리스온 12월호에 개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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