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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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나요? _인간의 숲

yoo8965 2020. 12. 3. 23:09

0.

9월의 시작은 항상 분주한 일들로 가득하다.

 

학생들은 길고 긴 여름 방학을 마무리하고 다시 학교를 향해야하며 직장인들은 다가올 하반기 업무에 관한 새로운 이정표를 가다듬을 시기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라는 세계적 질병에 의한 혼란스러운 상황이 그 틈새에 끼어들었다. 점점 바빠질 시기인 것은 자명한데, 원래의 리듬으로 그 시간을 준비하는 것 또한 어지러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필자의 경우 학교에서 근무를 하는 까닭에 2학기 교과목을 점검하고 강의를 준비하며 나름의 템포를 찾아가던 터였다. 그러한 와중에 도착한 메일 한통. '만화 속 인생 명대사, 명장면'에 관한 짧은 에세이 청탁이었다. 흥미로운 기획임에 틀림이 없었고 항상 현실의 복잡한 틈바구니에서 만화 세계 속으로의 탈출을 갈구해 왔기에 금번의 요청은 그러한 탈출(혹은 외도?)을 정당화 시켜주는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고민은 그 이후에 찾아왔다. '인생'이 걸린 만화의 명대사와 명장면이라니... 만화를 좋아하지만 인생을 걸만큼 그렇게 훌륭한 대사와 장면이 있었던가? 머리 속으로 지금까지 좋게 읽었던 만화 몇 편을 빠르게 스캔해봤지만, 그 정도의 감흥을 주었던 작품을 쉽사리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도 그럴것이 개인적으로 만화나 게임과 같은 콘텐츠의 미덕을 순수 예술의 그것과 다른 맥락에서 발견해왔던 터라,,, 갑자기 인생 명대사와 명장면에 대한 요구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던 탓이다. 서둘러 웹툰의 즐겨찾기 목록을 뒤적거리던 중, 그럭저럭 이번 에세이에 부합하는 작품을 찾아냈다. 처음 연재될 때 오싹하게 스릴러물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묵직하게 전달되는 인간에 관한 성찰어린 대사들 또한 발견할 수 있었던,,, 그런 작품.

 

바로 황준호 작가의 <인간의 숲>이다.

 

1.

<인간의 숲>은 네이버 웹툰에서 2013년 1월 20일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연재되었고 2017년 6월 16일에 재연재된 만화이다. 연재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라고 하니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작품의 줄거리는 매우 심플하다. 한 기관에서 국제 강력범죄 심포지엄의 일정에 맞춰 연구 성과를 내고자 어떤 실험을 기획했다. 이 실험은 정신병원을 개조해 만든 폐쇄 시설에서 진행되며, 서류상 이미 사형 처리된 사형수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상으로는 실험 후 증거를 인멸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한 연구원의 삽질?로 인해 사형수들이 모두 풀려나버린다. 사형수들이 연구원들을 몰살한 뒤, 서로 죽고 죽이는 살인 게임을 벌인다는 것.(1) 마치 범죄 전문가들이 모여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를 수행하는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의 사이코패스 버젼 정도로 요약될 수 있겠다. 온갖 종류의 살인마 혹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누가 더 지독한 사이코인가?'와 같은 병맛?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첫 장면에서 느껴지는 재미의 요소이다. 때문에 이 작품은 프롤로그에서부터 살인마들의 인터뷰 장면을 보여주며 독자들을 사건의 주요 인물들에 다가서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살인마들은 주옥같은 명대사들을 내뱉으며 마치 '이 구역의 가장 미친 녀석은 나야'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데, 그들은 발언은 각기 다른 인간의 단면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황준호 작가는 주로 연쇄살인범을 다룬 연구 자료와 영화에서 힌트를 얻고 캐릭터를 구상했다고 한다. 에드먼드 켐퍼(Edmund Emil Kemper III), 앨버트 피시(Hamilton Howard "Albert" Fish) 등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살인마들이 <인간의 숲>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실제 모델이다.(2)

 

2.

평범한 거실 소파에 한 남자가 누워있다. 그가 시청하는 TV 프로그램에서는 회개를 갈구하는 목사(로 추정되는?)의 발언이 흘러나온다. '인간이 행하는 일에는 의로움이 없습니다'라며 부르짖는, 그리하여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인가 싶을 무렵 그의 딸로 보이는 평범한 여성(하루)이 집을 나서게 된다. 아버지에게 잔뜩 짜증을 내며 밖으로 나온 여성은 애인으로 추정되는 이에게 전화를 걸어 해외로 출장간다는 거짓을 이야기하고 어떤 남자(김교수)를 만나 실험 시설에 들어가게 된다. 주인공에 대한 설정은 이렇듯 간결하게 제시된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아버지와의 소원한 관계라던지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개략적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어 주인공이 아무런 부족함없는 환경에서 성장한 것이 아닌, 이런저런 결핍과 일정 정도의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윽고 등장하는 살인마들. 주인공 하루는 김교수에게 시설의 목적이 매우 비인간적이며 비인도적인것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이내 곧 김교수의 설명(현실 논리)에 순응하며 사형수들을 관찰하게 된다. 작품은 곧바로 사형수들이 연구원들을 제압하며 시설을 장악하는 전개를 보여준다. 그러나 본격적인 살인마들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극 중 사형수들을 제외하고 주인공을 포함한 실험실의 모든 인원들 역시 그리 선해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매우 비인도적인 목적을 지닌 실험 시설의 일원들임을 차치하고서라도 사형수를 약으로 마취시키고 강간하려는 구교수를 비롯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해 범죄자들을 태연하게 이용하는 김교수 그리고 선한 듯 또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매우 현실?적으로 그들에 동조하는 주인공 하루까지. 작품의 제목이 '사이코(혹은 살인마)의 숲'이 아닌 '인간의 숲'인 이유를 이와 같은 설정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다.

 

3.

살인마들이 각자의 감금된 방에서 풀려나게 되면서 실험 시설에는 주인공 하루와 살인마들만 남게된다. 주인공의 생존 게임으로 단순화 될법한 작품의 전개는 두 가지 장치를 통해 특유의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첫 번째는 살인마들의 동질감이 매우 빠르게 해체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형 선고를 받은 이후, 어딘지 모를 실험실에 감금되었다는 동일한 조건에 놓여있었다. 다만 감금된 상태에서 해방된 이후, 그들은 서로를 향해 서슴치 않고 본성을 드러내며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비틀어버린다. 작가는 이에 더하여 뜻밖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이러한 혼란을 가중시키는데 동급생 및 청소년 3명을 살해한 '박재준'이 바로 그 캐릭터이다. 재준은 주인공 하루를 돕는 남주인공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그 역시 살인마이며 중간중간 오싹한 대사를 통해 그것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킴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그를 다른 사형수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인식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설정을 의도적으로 몇몇 부분에서 노출시켜 독자들과 공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주인공을 믿음직하게 안정시키는 재준의 모습을 보여준다던지(6화), 끝판왕처럼 보이는 '강기준'의 대사를 통해 하루와 재준을 그러한 상황?에서도 썸을 타는 남녀의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하며(21화), 심지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시켜 작품 전체의 주제 의식에 관한 관찰자의 역할을 부여하기도 한다.

 

4.

이 작품의 구성은 크게 주인공 하루가 실험 시설에서 탈출하기 전(1부)과 후(2부)로 나뉘어진다. 재준의 도움을 받아 아비규환(阿鼻叫喚)과 같은 실험 시설 내에서 사이코패스들과 혈투?를 벌이게 되는 주인공은 시설에서 탈출한 이후 자신이 풀어준 두 명의 사이코패스(박준호, 김혜선)를 마침내 처단(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서의 살해가 아닌, 구속시키는 방식으로)하게 된다. 인생 명대사까지는 아닐지라도 생채기 정도는 남길 수 있는 대사는 중간중간 살인마들에 의해 내뱉어진 말들에서 발견된다. 가령, 실험 시설에서 (주인공을 제외한) 살인마들만 남은 것을 확인한 후, 박준호의 대사인 "우리가 살아남은 걸 아는 사람은 없는 거죠?, 당신만 없으면요" 라던지, "역시 당신을 죽이기로 했습니다"(박준호), "재밌을 것 같아서요"(박재준, 3화) 등등 사이코패스들의 발언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흘러나와 독자들을 섬찟하게 만든다. 그러한 대사 중 가장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하나 꼽자면, 실험 시설을 빠져나오기 전 사형수 중 한명인 김혜선이 주인공을 설득하며 태연자약하게 내뱉은 말인 "인간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나요?"(23화)가 될 것이다. 자신들과 같은 살인자들이건 보통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주인공이건 간에 모두 같은 인간인 까닭에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그의 발언은 주인공(하루)과 독자 모두를 경직시키는 한마디가 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메시지는 모든 사건이 종결된 이후 흘러나오는 하루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꽤 괜찮은 조건'에 현실 세계로 복귀한 이후 우연히 (재준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와 상담을 하게 된다.

 

재준

: 오늘은 좀 어때요?

 

하루

: 여전하죠... 

수많은 숲이 있네요. 나는 그 숲의 숲에서 살고 있지요.

 

아무엇도 보이지 않아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죠.

가지 너머엔 뭐가 있을까요? 수풀을 헤치면 무엇이 보일까요?

 

당신은 무엇을 보았나요? 숲에는 뭐가 있던가요?

 

재준 :

그 숲은...  너무나 깊고 어두워...  저도 아직 끝을 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루씨.

그래서 더 재밌는 것 아닐까요.

 

 

지하철 승강장에서 만난 이들은 위와 같은 대화와 함께 세상 속으로 사라지고 작품은 끝을 맺는다.

.....

 

오늘은 좀 어떠냐는 재준의 물음.

 

보통의 여느날처럼 하루는 오늘 역시 수많은 숲에 둘러싸여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살인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평온한 일상을 보냈을 법한 주인공의 답변 치고는 꽤나 회의적인데, 이는 그녀가 마주한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그리고 살인마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인 삶 또한 깊고 어두운 숲과 다름 아니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된다. 이쯤 되면 독자들 역시 작품의 제목이 왜 '살인마의 숲'이 아닌 '인간의 숲'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살인마들로 뒤덮힌 실험 시설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인간)들의 숲과 그것에 의한 짙은 어둠이 자연스레 연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하루의 표현 중, '숲의 숲'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숲'은 인간들로 구성된 숲을 의미하지만 인간들 각자의 숲을 지칭하기도 한다. 따라서 하루의 마지막 대사는 자신을 둘러싼 타인들의 숲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인간 스스로의 숲(심연)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

결국 그들이 수풀을 헤치고 가지 너머로 보고 싶어하던 숲은 끝은 어디였을까?

 

 

'지금 만화' 9호 기고글. 2020.12

 

 

(1) 나무위키. 인간의 숲 참조 : namu.wiki/w/%EC%9D%B8%EA%B0%84%EC%9D%98%20%EC%88%B2

(2) 살인자 숲에 들어간 당신, 한겨레 21 : 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107.html

 

살인자 숲에 들어간 당신

 

h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