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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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 Research

코스프레와 블랙페이스 사이

yoo8965 2020. 8. 9. 05:58

의정부고 코스프레 사진과 이에 대한 샘 오취리씨의 인스타 내용

 

차별의 역사는 길고 길다.

 

우리들의 역사에서도 그리고 바다건너의 다른 문화적, 사회적 영토에서도 온갖 종류의 억압과 차별은 존재했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주체를 중심으로 짜여진 관념론의 전통이 해체되고 '다른 이'와 '다른 것'을 주체로 환원하거나 동화하고자 하는 타자 중심의 철학이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세상은 그러한 담론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최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때아닌 인종 차별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발단이 된 사건은 의정부고 소년들의 '관짝소년단 코스프레'에 대한 샘 오취리씨의 발언이었는데, 요약하자면 코스프레를 위한 의정부고의 학생들이 취한 '블랙페이스'(1)가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내용으로 읽힐 수 있어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 사건은 그저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의 표식이 될 수 있음을 알리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해당 내용을 지적한 오취리의 발언은 단어와 문장들로 해체되어 엄중한 사회적 채에 걸러지고 분석되고 있으며 그의 과거 행적까지도 모두 추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공중파 뉴스에서도 사건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많은 국내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계속하여 해당 사건에 대한 감정적 게시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타인이 아픔을 호소하고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당연히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아픔을 호소하는 이에게 사과하고 그 아픔을 어루만져 줘야하는 의무가 있음은 아주 기본적인 윤리적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사건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사항들에 둘러쌓여 있다. 인종 차별까지 가지 않더라도 의도의 유무와 그것의 결과로 얻어진 불쾌에 대한 위로의 몫은 항상 행위자를 걷돌게 된다. 따라서 '왜 그들이 타인의 아픔에 공명하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욱 키우기 쉽상이다. 간단히 생각해보자면 인종차별적 표식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오취리의 태도가 그리고 그의 발언이 더 나아가 그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이들의 계몽적 태도가 문제였을게다. 그리고 해당 사진을 보면서 유희적으로 받아들였던 이들의 후회가득한 부끄러움이라던지, 코스프레를 하고자 했던 의정부고 소년들의 순수한 열정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까지, 감정은 여러가지 층위를 통해 두터워졌을 것이리라.

 

타자(성)의 철학자로 인식되는 레비나스는 인간을 삶으로서의 존재와 사유하는 존재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삶으로서의 존재에는 이미 삶을 위해 투쟁하는 자기의 수축, 자기를 위함, '보존 본능'이 있고, 사유하는 존재에는 존재의 의지, 이해 관심, 이기주의가 있다고 한다.(2) 사건에 대입해보자면 오취리는 해당 게시물을 보며 삶의로서의 자신의 존재 그리고 자기로부터 대변되는 인종의 문제를 떠올렸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기를 위한, 보존(호) 본능이 작동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한편에서는 한국에 수년 전부터 정착해서 유대감을 형성해오던 자신에 대한 믿음 또한 전제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인종)에 대한 보호본능으로부터 차별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 즉 우리들(의정부고 학생들)은 의도치않게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의 표식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황망하기 그지없는데, 어느순간 그것으로부터 피해자가 발생했고 나를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나의 의도없음을 읍소해봐도 돌아오는 것은 내 무지의 소산이요, 타자에 대한 이해부족의 결과라는 말뿐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유를 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사유자로서 나 스스로의 존재 의지가 발생하고 이해와 관심을 요하게 된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속하려 했고 또한 동일자라 생각했던 그(오취리)가 우리의 바운더리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타자의 행세를 하고 있음은 너무나도 불쾌한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우리와 동일한 자인가? 아님 본질적으로 다른 누구인가?

그의 지적은 우리와 같은 자리에서 생산된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바라보는 상대의 자리에서 쏘아진 것인가?

 

그리고...

왜 결국. 타인에 대한 공명은 위의 사항들을 헤아려보고 난 이후에 행해져야 하는가?

 

 

 

......

타자에 대한 사유는, 그리고 그 이해와 공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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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o.wikipedia.org/wiki/%EB%B8%94%EB%9E%99%ED%8E%98%EC%9D%B4%EC%8A%A4

 

블랙페이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블랙페이스(영어: blackface)는 흑인 이외의 출연자가 흑인을 연기하기 위해 하는 무대 메이크업이자 그 메이크업을 한 공연자와 공연을 의미한다. 1848년까지 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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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mmanuel Levinas, 김성호 역, 우리 사이 : 타자 사유에 관한 에세이, 그린비 출판사, 2019, p.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