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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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Creators in LAB / A.I Visual & Sound LAB

yoo8965 2020. 8. 6. 17:59

ACC Creators in LAB / A.I Visual & Sound LAB 
인공지능이 자연을 다시금 상상하다

 


“인공지능이 자연을 다시금 상상하다. 그것은 놀라운 동시에 두렵다. 
AI has reimagined nature and it’s both amazing and terrifying”

 

 

   지난 10월 3일, 과학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는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개제했다. 기사의 내용은 Heriott-Watt 대학의 앤드류 브록(Andrew Brock)이 동료들과 함께 구글(Google)의 ‘딥마인드(DeepMind)’를 이용하여 ‘GAN (생성적적대신경망 :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으로 작동되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와 나비 등의 이미지들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자연적 창조물이라 간주하는 것들의 이미지가 현재의 시점에서 인공적인 방식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최근 이러한 실험들은 일종의 유행처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공 지능이 우리의 시각을 대체하며 청각을 재구성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사유 방식을 재정의하는 이러한 시도들은 결국 기사의 제목처럼, 자연을 다시금 상상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첨예하게 기술 개발과 함께 다양한 논점이 제기되고 있는 분야를 손꼽아보자면 단연 인공지능과 관련한 시도들이 수위를 차지할 것이다. 이는 기술의 진화와 더불어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인간의 실존 문제를 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공 지능은 단순히 이전까지 정의했던 도구적 기술을 범위를 상회하여 우리의 사유의 범주를 확장시키고 과거의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예술의 범주에서도 인공지능과 관련한 창조 행위는 다양한 논점을 제기해 왔다. 1950년대 개념화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나 60년대의 ‘알고리즘 예술(Algorithm Art)’, ‘로보틱 아트(Robotic Art)’와 같은 장르들은 각기 다른 방향성을 지닌 시도들이었지만 현재의 인공지능 예술의 기초를 구성했던 프로그램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들 시도들을 관통하는 명확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인간과 기계 혹은 자연물과 인공물의 구분에 관한 것이었음을 떠올려보면, 현재의 인공지능이 도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목표지점은 더욱 명확해 보인다. 즉, 인간이 아닌 기계(혹은 다른 생명체)가 이미지를 판독하고 분류하며 심지어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현재의 상황은 과연 예술이라는 행위가 인간만의 유일한 창조적 행위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제작센터의 A.I Visual & Sound 랩은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시의성이 있는 목표 지점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과 관련한 시도들이 그것의 복잡한 기술적 맥락을 고려하여 단독 창작자가 아닌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유를 떠올려본다면, 랩 시스템을 통해 이러한 움직임을 독려하려는 센터의 시도는 현재의 상황에서 매우 유의미한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ACC 창제작센터 랩 프로그램의 경우 랩에 기반을 둔 과정적 의미가 강조된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결과물을 발표하고 공유하기 위한 것임을 파악할 수 있다. 공고문에서부터 강조하는 것은 쇼케이스 때 선보일 최종 작업물에 관한 것인데, 입주한 작가들은 입주한 이후 비교적 짧은 레지던시 기간을 갖고 쇼케이스를 앞둔 최종 작업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ACC를 비롯한 국내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및 랩 활동을 표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등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연구 활동의 일환으로 랩 활동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을 발표하기 위한 사전 프로그램으로서의 레지던시를 상정하는 것은 그만큼의 깊이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 해외의 유사 프로그램과 비교를 해보면 이러한 특성은 더욱 명확해지는데, 이는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근본적인 기반 구조의 차이에 기인한다. 가령, 해외의 경우 해당 기술 및 창작 행위를 표방하는 학제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전문적인 기술자와의 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작품이 아닌 논문 형태의 결과물 공유 방식을 통해 연구의 결과가 전시의 형태 같은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닌 축적될 수 있는 형태를 지향하는 점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은 각기 다른 장단점을 지닌다. 특히 인공지능이 예술 흐름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작품의 형태로 나타나는 전시 및 쇼케이스를 통한 결과물 공유 방식은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지점에 관한 최근의 흐름을 즉각적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ACC의 ‘A.I Visual & Sound’ 랩의 경우에도 그 수식어구로부터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시-청각적 예술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미 미디어아트 작품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동되고 있었지만, ‘알고리즘을 통해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사운드가 구현된다면 이에 부합하는 발생적 지점이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그것이다. 

   2018년 상반기 ACC Creators in LAB의 ‘A.I Visual & Sound LAB’에는 3팀의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Mint Part(박하진), 정승, 배정식 작가로 구성된 이번 랩의 작가들은 각각 프로그래밍을 통해 제작한 사운드 스케이프(SoundScape), 센서와 연동되는 이미지 스케이프(ImageScape), 기계적 작동을 통해 구현되는 메이크 무브먼트(Make Movement)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전통적으로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정의해왔던 각각의 하부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는 않는다. 가령, 박하진의 작업, <Tangram 2.0 : 七巧, 공교로운 공간을 찾아서>는 언뜻 소리로 공간을 그리게(인식하)게 만드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류의 작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리는 명료하게 들리지 않고 관객의 행위에 의한 피드백의 속도 또한 즉각적이지 않다. 따라서 관객들은 노이즈 사운드처럼 들리는 전자음이 파생시킨 파편적 공간에서 헤메이게 된다.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칠교(七巧)놀이 : 일곱 개의 교(巧)를 맞추는 놀이’를 재매개하고 있는데, 이 ‘교’의 의미가 생각지 않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사실이나 사건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기이한 감정을 느끼는 ‘공교롭다’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임을 떠올려보면 작품의 제목은 꽤 타당하게 느껴진다. 알고리즘은 관객의 칠교 조각을 맞추는 행위를 사운드로 변환시키는 1차 작용을 함과 동시에 놓여있는 칠교 조각들의 다양한 정보(위치, 서로간의 떨어져있는 정도, 조각들을 움직일때의 속도 등)를 다시금 분석하여 발생시킨 사운드를 교묘하게 섞어놓는다. 알고리즘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사운드 공간, 그것이 <Tangram 2.0>이 제시하는 공교로운 공간인 셈이다. 반면, 정승의 작품, <시체들판>은 왠지 으스스한 분위기의 ‘이미지 들판’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프로젝션에 의해 바닥에 투사되는 이미지는 그야말로 시체들로 구성된 들판의 모습인데, 좀 더 분위기가 고취되는 것은 시체들이 고정된 채 정지되어 있는 풍경으로 의미가 완료된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관객들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죽은 것도 아니 살아있는 것도 아닌 마치 좀비처럼 보이는 상태로 널브러져 있다는 점이다. 마치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제작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전시되는 장소(광주 ACC)의 맥락과도 맞닿아있다. 이제 시체가 되어버린 이후에도 온전히 죽어 정지되어버린 상태가 아닌 각각의 개체들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이미 지나가버린 역사의 파편이 되어버렸음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당시의 정신을 전달하는 듯하다. 작품을 관찰하다보면 미세하게 ‘모르스 부호(morse code)’의 사운드가 들리는데, 작가는 모스부호 해독지를 비치하여 관객들 스스로가 ‘WRONG’이라는 암호를 해독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배정식의 <스윗 스팟 로봇 드러머>의 경우, 최근 예술 분야 밖의 활동으로 간주되는 메이크 무브먼트를 연상케 한다. 최근 메이커들의 활동 범주는 현대 예술이 지닌 특징적 요소들을 아우르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키네틱 아트로부터 움직임에 관한 관심을 표명했던 예술의 형태는 기술적 진화와 더불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배정식의 작품도 이러한 선상에 놓여있다. 예전 음악 작업을 했던 작가의 경험과 기억은 그것을 대행해주는, 그것도 인간이 연주할 때 보다 더욱 정확한 음의 지점을 파악하여 작동하는 기계 장치를 고안하게 만들었다. 쇼케이스에서 선보인 <스윗 스팟 로봇 드러머>는 인간 드러머를 대체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현재의 인공지능-기계 시스템에 관한 비판적 입장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정확한 연주는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 매우 필수적인 요소지만 인간이 연주곡을 들을 때의 묘미는 그것이 정확한 연주의 지점(스윗 스팟)을 비껴감에도 현장의 느낌과 감정이 전달되는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윗 스팟을 찾아 정확한 연주를 시행하는 로봇 드러머의 연주로부터 알고리즘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다시 그려질 수 있다. 즉, 알고리즘 및 인공지능의 발전적 지점에 예술이 기여해야 할 부분이 의외의 지점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우리의 자연이 거대한 규칙을 전제하여 작동되는 듯 하지만, 그 안에서 나타나는 무수한 변화를 통해 다양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음을 상기해보자면, 인공지능이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정보의 정확성과 규칙성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랩 기반의 활동이 단순히 과학 기술 분야의 전유물이 아닌 인문학적이고 예술적인 기반을 지닌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ACC의 랩 기반의 활동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여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및 전시-프로젝트들과의 차별성을 지녀야 한다. 특정 아이디어 혹은 개념이 작가에 의해 혹은 과학-기술자 및 문화 (사회) 연구자들에 의해 제기될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를 지닌 결과물이 되기까지에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그것이 인공적으로 우리의 지능을 그리고 자연을 구성하려는 시도라고 한다면 단 기간의 프로그램을 통해 결과물을 내어놓아야 하는 현실적이고 행정적인 형식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숙제일 수밖에 없다. 주제에 연동하여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 기간 설정 및 해당 기간 동안 작가를 지원할 수 있는 교육 및 멘토링, 비평가 매칭 그리고 타 분야와의 협업을 전제한 콜라보레이션 작업 등이 필요하다. 아무쪼록 ACC 창제작센터의 랩 프로그램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예술 및 과학 기술의 수렴적 실험실로 기능하기를 희망한다. 
 

 

2018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ACC Creators in LAB 도록글.

 

 

www.newscientist.com/issue/3199/

 

ISSUE 3199 | MAGAZINE COVER DATE: 13 October 2018 | New Scientist

Features Prehistoric humans were sexual adventurers, mating with Neanderthals and Denisovans, but DNA studies reveal dalliances with populations we never knew ex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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