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미술(박물)관의 기원과 정의에서 디지털 뮤지엄의 새로운 방식으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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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박물)관의 기원과 정의에서 디지털 뮤지엄의 새로운 방식으로

yoo8965 2020. 1. 15. 01:35

THE FUTURE MUSEUM DUBAI PROTECTED BY NAFFCO

 


들어가며

  오늘날 우리들은 뮤지엄(Museum)을 통해서 예술 작품을 접하고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뮤지엄을 통해서 예술 작품을 중심으로 과거를 경험하고 현재를 판단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뮤지엄은 예술 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전시, 교육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러한 뮤지엄의 기능은 디지털 매체의 도입에 따른 예술 작품의 변화와 그러한 매체들을 변화하게 만든 주요한 동인으로서의 기술 발달에 의해 변화한다. 본 글은 이러한 기술 발달에 따른 디지털 매체 예술과 그에 의해 변화하는 뮤지엄의 새로운 특징을 고찰하고 미래의 뮤지엄에 대하여 전망해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기술 발달로 인한 매체의 변화는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예술과 기술의 관계는 아직까지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술 결정론적인 입장을 차치하고서라도 기술이 현재의 예술 형태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산업 발달에 의한 기술 변화는 매개체를 전제해야 하는 예술의 본질을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 기술 발달에 의해 매체들은 변화하게 되고 그러한 매체들을 매개체로 이용하는 예술 형태는 영향을 받는다. 새로운 매체들은 이전 예술 작업의 매체들을 포함하고 확장시키며, 기존의 것들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낸다. 또한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매체에 의한 예술 작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측면의 변화를 넘어 스스로의 존재 방식과 수용 방식의 변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예술 작업들을 수용하고 관리하는 뮤지엄의 기능과 특성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뮤지엄(Museum)’ 이란 용어는 그리스어 ‘무제이온(mouseion)’ 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박물관(博物館) 또는 미술관(美術館)으로 번역되고 있다. 무제이온은 원래 학예를 관장하는 아홉 명의 뮤즈(muse) 여신들의 전당을 지칭하였는데, 기원전 29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설립된 일종의 연구 ․ 교육 센터였다. 뮤즈 여신들에게 봉헌된 '무제이온’은 도서관 외에 천체 관측소와 다양한 연구 및 교육 시설 그리고 모든 분야의 수집품을 보유하고 있었다.(1)  '무제이온'은 중세 서양 수도원의 ‘보고(寶庫)’를 거쳐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메디치가의 우피치(Uffizi)에 소재한 ‘트리부나(Tribuna)실’과 같은 형태를 갖게 되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유산인 트리부나는 본격적인 수집품들의 보관소로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16세기 유럽 각지에서의 새로운 전시공간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영어권의 ‘캐비닛(cabinet)’(2)과 독일어권의 ‘분더캄머(Wunderkammer)’(3)라는 용어들이 그러한 전시 공간들을 일컫는 용어이다.(4) 위와 같은 전시 공간 및 진열 공간들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유산에 힘입은 바가 컸다. ‘대우주’의 숨은 질서를 담은 ‘소우주’로서의 진열 공간, 그리고 이 소우주의 주인으로서의 수장가라는 새로운 이념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소우주’에 자리 잡은 사물들은 이른바 ‘세계라는 극장(Theatrum Mundi)’에 등장하는 각각의 배역을 맡고 있었다. 세계를 구성하는 무수한 사물들은 이곳에서 새로이 ‘재생’되고 의미 있는 연관성을 얻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5) 뮤지엄은 사물들의 연관성이 생성되는 의미를 지닌 장소로서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의해 오늘날의 뮤지엄으로 발전하게 된다. 제도적 기관이 아닌 그 안의 소장품들, 즉 ‘콜렉션(collection)’을 지칭했던 '뮤지엄(museum)' 이라는 명칭은 ‘구체제’에 대한 강한 도전의 산물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그동안 특정한 계층이 독점하였던 놀라운 유산들은 1792년 9월 27일 옛 루브르궁의 갤러리 자리에 프랑스 박물관(museum Francais)이 설립되어야 한다는 법령이 공포되면서 ‘국민(nation)’의 소유로 전환되었다. 이후 ‘혁명의 세기’였던 19세기에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을 필두로 유럽 전역에 박물관이 설립되면서, 뮤지엄은 오늘날의 기능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무제이온과 그 이후 뮤지엄으로의 성립과정을 살펴보면, 과거의 신성한 지혜와 유산을 보존하는 성소(聖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뮤지엄이 사물이 모여져 있는 공간의 의미를 지닌 ‘박물(博物)’관으로의 번역되는데, 사실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6)

 

image 1. 카밀로(Giulio Camillo)의 기억극장(Theatro della Memoria) 설계도


  현대 뮤지엄은 자료의 수집, 보관, 정리, 전시, 조사 연구 그리고 교육 활동 등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뮤지엄의 기능들은 근대 이후 뮤지엄 개념이 정립되면서 형성된 것이지만, 각각의 기능들은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했던 뮤지엄의 역사 속에서 발견된다. 뮤지엄의 가장 근원적인 기능인 자료의 수집 및 보관, 정리 기능의 역사는 뮤지엄의 진열실이 과거의 ‘유산’과 만나는 곳이라는 16세기에 있었던 뮤지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기인한다.(7) ‘기억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러한 새로운 공간은 고대로부터 전수된 ‘기억술(art memoriae)’을 극장 형태로 가시화시킨 것으로서(image 1 참조), 말 속에 담긴 정보가 생생한 이미지들에 결부됨으로서 이 이미지들이 허공에 떠돌지 않게 하려면 그것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으로부터 생성되었다. 기억 극장은 일종의 도서관 또는 데이터베이스(database)의 기능을 수행하며 이미지들에 담겨 있던 각각의 ‘데이터’는 비로소 확고히 저장되고 동시에 생생한 기억으로서 반복해서 불러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서의 ‘기억’이 특정한 과거에 대한 기억 혹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유물에 대한 정보는 아닐지라도 현대 박물관의 자료 수집 및 보관, 정리 기능의 역사적인 기원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8)


  이러한 뮤지엄의 기능에 대하여 많은 이론가들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입장에 근거해서 각자의 주장을 펼쳤다. 특히 폴 발레리(Paul Valéry),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테오도어 W. 아도르노(Adorno, Theodor Wiesengrund) 등이 자신의 예술 철학에 근거해서 박물관에 대한 독창적이며 중요한 언급을 하였다. 그들의 견해는 아도르노의 글 「발레리 프루스트 박물관 Valéry Proust Museum」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이들의 논의는 이후 기존 뮤지엄이 갖고 있는 기능적 한계와 예술과의 관계를 밝혀주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먼저 폴 발레리(Paul Valery)의 뮤지엄 논의에 대해 살펴보자. 발레리는 그의 글 「박물관 문제 Le probème des Musées」와 에세이집 『예술론 Pièces sur L'art』에서, 뮤지엄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발레리는 뮤지엄이 서로 연관 관계가 없는 대상들을 묶어놓은 건물이며, 피곤함과 야만이 교차하는 공간이라고 언급하는 동시에, 뮤지엄 안에는 죽은 환상들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발레리에게 있어 예술이란 직접적인 삶 속의 지위, 그것이 위치한 기능적 연관 관계, 궁극적으로는 활용 가능성과의 관계 등을 잃을 경우 더 이상 예술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즉, 그에게는 무엇으로도 혼란에 빠지지 않는 명상의 대상인 순수한 예술 작품이 중요한 것이기에, 그러한 예술 작품들이 순수 명상의 대상으로서 사멸하고 공예품 같은 장식품으로 타락하게 되는 박물관 속으로의 편입을 부정적인 입장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9)


  이러한 그의 견해에 대해 동시대의 문학가인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프루스트의 견해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맥락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프루스트는 뮤지엄의 열람실이 예술가가 창작을 위한 내적 공간들을 상징화한다고 언급하며, 뮤지엄에 순응한다. 뮤지엄의 예술 작품을 ‘죽은’ 예술 작품으로 치부했던 발레리의 견해와 뮤지엄은 ‘죽은’ 작품을 다시 살아나도록 일깨운다고 말하는 프루스트의 입장은 서로 대척된다. 그러나 뮤지엄에 대한 대조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술 작품에서 느끼는 행복의 전제 조건을 공유하고 있는데, 아도르노는 그들의 예술 작품에 관한 공유지점에서부터 뮤지엄에 대한 대조적인 견해를 비교하며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10) 아도르노는 뮤지엄이 전통을 보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전통이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변화할 수 있다는 지점을 경계하는데, 이러한 부분은 발레리의 뮤지엄에 대한 비판과 유사하게 뮤지엄에 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을 전제로 뮤지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전통적인 것을 경험할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포기하려고 한다면, 문화에 대한 요란스러운 헌신 때문에 야만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뮤지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11) 그는 뮤지엄에 귀속된 예술 작품이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을 뮤지엄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발레리의 견해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그러한 부분을 감상자의 몫으로 가져간다. 즉, 아도르노는 발레리가 지적한 사항들이 예술 작품들에 대한 진지한 수용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12) 아도르노의 이러한 견해는 뮤지엄의 근본적인 개념 및 기능들과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수용 관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유도한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변화에 따른 수용 방법의 변화 및 그들이 보존되는 뮤지엄에 대한 접근은 이러한 기존 뮤지엄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들을 반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뮤지엄은 근대 이후 새로운 매체들의 발전에 의해 형성되는 예술 작품들을 수용해야 하는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뮤지엄의 변화는 기존 뮤지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한 검토가 수행될 때, 비로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보다 확장될 수 있다. 

 


기술 발달에 따른 뮤지엄의 의미 및 기능 변화

  앙드레 말로(André Georges Malraux)는 기술 복제 시대의 사진 복제가 시간적, 공간적,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의 뮤지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13) 그는 기존 뮤지엄이 가지고 있던 시간적인 한계를 ‘상상의 뮤지엄’이 뛰어넘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14) 과거의 작품들이 초시간의 세계 속으로 진입하는 장소로서의 뮤지엄을 언급한다.(15) 그러나 말로가 말한 상상의 뮤지엄은 기존 뮤지엄의 한계들을 개념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실제적 대안으로서의 개념은 되지 못하였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분명, 기존 예술작품의 기술적인 복제를 가능하게 하였지만 같은 형태로의 완전한 복제는 아니었기에 뮤지엄의 진품에 대한 수집 기능을 멈추게 하지는 못하였으며, 또한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가 예술 영역으로 쉽게 인정되지 못하였기에 전통적인 뮤지엄 공간으로 쉽게 편입되지 못하는 한계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기술 복제 시대의 도래에 따른 상상의 뮤지엄에 관한 논의는 기존 뮤지엄에 대한 반성과 원본 중심의 사유에 대한 반성, 그리고 원본을 중심으로 전시되었던 뮤지엄에 대한 반성을 시도하는 기회가 되었지만 실제적인 형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하였는데, 기존 뮤지엄이 고수하는 원본 중심의 사유가 기술 복제에 의한 예술 작품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가 제시한 상상의 뮤지엄은 컴퓨터의 보급에 의한 디지털 기술 복제 시대에 이르러서 현실화 될 수 있는 적극적인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사진이라는 매체의 한계 사항이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복제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뮤지엄에서 중시했던 원본의 개념은 디지털 매체의 속성에 의해 사라져가고 있으며, 이제 더 이상 원본과 복제품 사이의 물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컴퓨터는 존재하는 사실과 함께 비존재의 허상까지도 창조할 수 있게 되었는데,(16) 이러한 사실들은 예술의 근본적인 개념의 변화와 그것이 소통되고 보존되는 방법을 변화하게 만들었으며 기술 복제 시대의 상상의 뮤지엄 개념을 현실화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디지털 복제 기술은 기존의 매체들을 복제 조합하여 새로운 매체들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복제 기술에 의한 새로운 매체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매체 스스로가 예술 구성을 촉진하게 만들었다. 예술은 과거의 수공적 복제 기술 시대를 거쳐 사진과 영화와 같은 광학적 복제 기술 시대, 이를 넘어선 디지털 복제 기술 시대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기술 발달에 따른 매체 변화는 예술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변화하게 만들었다. 사진의 등장으로 기술적인 복제가 가능해진 예술 작품은 디지털 복제 기술 시기를 맞이하여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전기 기술의 도입 이후, 발명된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매체들의 보급이라는 이유가 존재한다.(17)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디지털적이다. 컴퓨터는 자체적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다른 매체들을 포함하는 동시에 가공시켜 새로운 매체들로 만들어내는 작용을 하게 된다. 때문에 기존의 모든 매체들을 통한 예술 작업들은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 안으로 정보의 형태, 즉 디지털화되어 저장된다. 이러한 컴퓨터를 통한 디지털 기술의 보급은 예술 작품의 존재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컴퓨터를 통하여 디지털화된 예술 작품은 기존의 예술 작품과는 다르게 데이터 영역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데이터 영역 속에 존재하게 된 예술 작품은 현상과 본질의 차이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전자세계에서 존재함으로 인해 물리적 공간에 속한 예술 작품과는 다른 존재 방식을 획득하게 되었다. 또한, 데이터로 전환된 예술 작품들은 스스로 증식하고,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즉, 데이터 결합으로서의 예술 작품은 한 순간에 다른 형태로 증식할 수 있고, 스스로를 생산할 수 있게 되는 새로운 존재 방식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18) 이러한 디지털 방식의 보급에 의한 예술 작품의 본질적인 변화는 문화 활동과 예술 작품 보급의 대중화를 가속화시킬 뿐만 아니라 생산자와 수용자의 관계에도 커다란 변화를 야기한다. 디지털 매체는 예술 작업을 위한 도구로서의 한계를 넘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상호 작용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존 매체들의 자체적 완결성을 지닌 구조에서 벗어나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스스로의 완성을 꾀하게 된다. 또한 컴퓨터에 의해 파생된 디지털 매체들은 그들 상호간의 연결을 통한 융합이 가능하다. 소위 말하는 멀티미디어로의 변화이다. 기존의 예술 매체들은 단일 감각의 수용을 전제로 한 가지 형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들의 융합은 여러 가지 감각의 복합적인 수용을 자체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디지털 매체들의 객체는 독립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한 무한한 변종이 가능하다. 이에 서로 융합하고 변이되어 새로운 형태를 형성한다. 때문에 이러한 디지털 매체 예술작품은 스스로 ‘가변적(varialbe)’이며 ‘유동적(liquid)’이다.(19) 이는 예술 작품을 대하는 관람객의 태도 또한 변화하게 만든다. 이러한 디지털 복합 매체 예술은 단일 감각의 수용에 익숙해진 관람객에게 보다 다차원적인 공감각적 수용을 요구하게 된다. 예술은 이제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정통적 취미 기호와의 일방적인 만남도 아니며, 개인적인 해석에 의한 이차적 만남도 아니다. 그것은 관객이 창조적인 시스템에 통합된 일부가 될 수 있는, 변형과 상호작용성을 포함하는 제 3의 긴밀한 만남인 것이다.(20)


  이러한 새로운 매체들의 기술적 토양을 제공한 것은 컴퓨터 및 반도체 기술과 광섬유를 이용한 정보 처리 기술의 발전이다. 오늘날 컴퓨터는 모든 정보를 'on-off'의 이분법에 의해 처리하는 디지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방식이 새로운 매체들의 개발에 보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정보의 전송 부문에서도 디지털화가 이루어지면서부터이다.(21) 정보의 전송 부문에서의 디지털화는 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게 되는데, 작품 자체의 디지털적인 속성으로의 변화와는 별개로 예술 작품의 새로운 형태를 파생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전송 부문에 있어 디지털화된 작품들은 기존 예술 작품의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한 소통 구조에서 벗어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전자 기술에 의한 예술 작품들은 이전의 전통적인 뮤지엄의 틀에서 전적으로 수용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은 관람객들이 물리적 공간으로 들어오는 기존 뮤지엄의 일방향적인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시 , 공간을 초월한 쌍방향의 연결 공간을 구성하고 있어(22) 전통적인 뮤지엄의 틀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미디어 아트 작가 겸 이론가인 로이 애스콧(Roy Ascott)은 이러한 상황에서 제 3의 뮤지엄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는 기존의 뮤지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뮤지엄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가 언급하는 제 3의 뮤지엄은 연구자가 말하고자 하는 디지털 뮤지엄의 속성들과 유사한 형태이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그의 제 3의 뮤지엄을 살펴보며, 연구자가 언급하는 디지털 뮤지엄과의 상관 관계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애스콧은 이렇게 새로이 탄생하고 있는 문화 속에서, 뮤지엄의 근본적인 관심이 조형예술로부터 이종 합성 예술(Xenoplastic arts), 즉 연결성과 상호작용성의 예술로 이행하게 되며, 공식적인 리얼리티의 수호자의 역할 수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리얼리티를 인도하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3) 즉 애스콧은 새로운 예술 형태를 수렴하고 기존 뮤지엄의 역할을 뛰어넘는 제 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제 3의 공간은 확장된 예술 형태의 수렴 공간을 의미한다. 즉, 뮤지엄은 새로운 예술 매체를 수용하는 자체적인 혼성 매체가 되어야 하며, 이에 다른 매체들을 포괄하고 관리하는 역할로 그 기능적 변이가 이루어져야 한다. 애스콧은 이러한 제 3의 뮤지엄을 언급하면서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디지털 뮤지엄의 구체적 속성을 언급하며 애스콧이 언급한 제 3의 뮤지엄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해보며 기존 뮤지엄과의 차별점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제 3의 뮤지엄, 디지털 뮤지엄?

  디지털 뮤지엄은 ‘디지털(Digital)’과 ‘뮤지엄(Museum)’의 합성어이다.(24) 전자 시대의 컴퓨터 보급 이후 눈부시게 모든 장르의 영역에 도입되고 있는 디지털의 개념은 과거의 유물 및 예술 작품을 보존하는 뮤지엄의 개념으로까지 침투하고 있다. 디지털 뮤지엄이 뜻하는 바는 기존 뮤지엄이 가지고 있던 개념과 기능의 디지털화가 진행된 개념이라 볼 수 있겠으나, 그러한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특히 정보의 전송 부분에서의 디지털화는 기존 뮤지엄의 자료들이 디지털화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만들었다. 따라서 디지털 뮤지엄은 기존 뮤지엄의 디지털화된 개념이자 또한 새로운 개념이다. 이에 이러한 새로운 기능적인 요인에 따라 여러 가지의 명칭이 혼용되어 사용되는 실정이다. 사이버 뮤지엄(Cyber Museum)이나 넷 뮤지엄(Net Museum), 버츄얼 뮤지엄(Virtual Museum) 등이 그것인데, 각각의 용어는 분명 기존 뮤지엄에서 진보된 혹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물론 이러한 용어들이 다소 모호한 분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뮤지엄(Museum)’ 이란 접미어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 합성어들은 미묘한 기능적 차이를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사이버 뮤지엄의 경우, 사이버(Cyber)의 의미인 ‘컴퓨터와 관계있는, 컴퓨터(네트워크)의’란 뜻으로부터 전기에 의한 컴퓨터 보급 이후의 모든 ‘컴퓨터상’ 의 데이터를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디지털(digital)’이란 용어와 ‘버츄얼(virtual)’이란 용어는 모두 컴퓨터로부터 파생된 용어이기 때문에, 의미론상 ‘디지털’과 ‘버츄얼’은 ‘사이버’의 하위 개념일 수 있다. ‘사이버’와 ‘버츄얼’은 의미상 서로 혼용되어 사용될 수 있지만 기술적 개념으로서의 의미하는 바는 분명히 구별된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이전까지의 기술 형태에 따라서 발전적인 기술로의 과정적 사실에 기인하겠지만, 앞으로의 발전적 형태를 염두에 두었을 때, 상위와 하위 개념의 수직적인 위계 분류는 무의미 할 수 있다. 

 

표 1. 기존 뮤지엄과 디지털 뮤지엄의 속성 비교


  ‘넷 뮤지엄(Net Museum)’은 보다 특화된 기능적 용어이다. 넷 뮤지엄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파생된 개념으로 볼 수 있는데, 인터넷이란 용어는 말 그대로 ‘네트(net)의 사이 혹은 네트 간(inter)’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곧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사이를 연결하는 통합된 네트워크란 의미로서 인터넷은 뮤지엄과 결합하여 넷 상에 존재하는 넷 뮤지엄이란 개념을 형성하며 인터넷의 특징적인 면을 반영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25) ‘가상의 뮤지엄’이란 의미를 지닌 ‘버츄얼 뮤지엄(Virtual Museum)’은 단어의 의미가 주는 확장적인 의미보다 축소된 기술적 개념으로서 사용된다. 가상현실 기술에 기반한 이러한 버츄얼 뮤지엄의 개념은 분명, ‘사이버 뮤지엄’의 하부 개념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가상(virtual)'의 범위를 기술적인 의미를 넘어선 것으로 가정할 경우, 위의 용어 중 가장 큰 확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래의 뮤지엄이 컴퓨터로 운영되며, 네트워크가 기본으로 전제된 경우라고 예측해볼 경우, 가상의 박물관, 즉 ‘버츄얼 뮤지엄’의 개념이 가장 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디지털 매체로의 변화와 더불어 그 속성을 공유하는 형태로서 뮤지엄의 변화를 다룰 것이기에, 기존 연구 개념에 이어 디지털 뮤지엄(Digital Museum)을 사용하고자 한다. 물론 연구자가 제시하는 디지털 뮤지엄은 디지털 매체를 전제로 한 가상  공간으로서의 개념과 위에서 언급한 사이버 뮤지엄, 넷 뮤지엄, 버츄얼 뮤지엄의 개념을 통합하는 공간으로서 제시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분류에 따른 속성들도 살펴보자. 디지털 뮤지엄은 새로운 매체들을 도입한 예술의 형태, 즉 전기 기술의 발달에 의한 일련의 미디어아트 작품들 또는 디지털 매체들로 이루어진 예술 형태들을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속성들을 지니고 있다. 본 글에서는 그러한 디지털 뮤지엄의 새로운 속성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각각의 성질이 기존의 뮤지엄과는 어떤 차이를 지닌 기능들인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또한 디지털 뮤지엄으로의 변화가 단순한 형태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질의 변화와 더불어 다른 제반 사항들을 변화시키는지에 관하여 연구해 보고자 한다. 아래의 표는 기존 뮤지엄과 디지털 뮤지엄과의 존재 방식 및 작품 구성 등의 차이들을 표로 정리한 것이다. 이분법적인 체계에 의한 이러한 분류가 발전적 과정에서의 연속적 성격을 갖고 있는 뮤지엄과 디지털 뮤지엄과의 관계에서 다소 무리한 분류가 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점을 분명 가지고 있으나, 이러한 시도는 디지털 뮤지엄이 가진 새로운 속성들에 대한 기존 뮤지엄과의 차별 요소에 대한 분류의 시도로서 받아들여져야 하며, 보다 세분화되고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2018년 백남준 미술관 특강 수록글.

 

 

1) 전진성, 『박물관의 탄생』, 살림출판사, 2004, 9쪽.
2) 이탈리아어로는 ‘gabinetto' 라고 하며, 당시의 일상용어로서 주로 선반과 서랍을 갖춘 찬장을 의미하였다. 상류층에서는 이 의미가 전이되어 회합장소인 ’살롱(salon)'에 대비되는 작은 방을 가리킬 때 쓰였다. 16~17세기의 영어에서 캐비닛은 소장품을 진열하는 장소를, 때로는 소장품 전체를 가리키기도 했다. 전진성, 같은 책, 9쪽. 
3) 분더캄머(Wunderkammer): ‘경이로운 방’ 이라는 의미로서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 힘든 온갖 진기한 광물이나 이국적인 도자기, 희귀동식물의 화석, 심지어는 성자의 유골이 화려한 그림이나 조각품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 이 방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놀라움(Wunder)’을 자아내었다. 왕실에서는 ‘쿤스트캄머(Kunstkammer)'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예술품이 있는 방‘을 의미한다. 전진성, 같은 책, 9쪽.
4) Jay david Bolter와 Richard Grusin은 자신들의 저서인 Remediation 에서 16세기의 캐비닛(cabinet)과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인터페이스 및 정보 공간 디자인과 유사점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람: 
Jay david Bolter, Richard Grusin,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The MIT Press, 1999, 35~36쪽. 
5) 전진성, 같은 책, 25쪽.
6) ‘박물관(博物館)’은 ‘넓다, 많다’의 의미를 가진 ‘박(博)’ 과 ‘만물’을 의미하는 ‘물(物)’이 합성되어 번역된 것이지만, 분문의 내용처럼, ‘성소(聖所)’로서의 의미를 띄고 있는 뮤지엄의 의미는 번역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7) 물론 15세기 이탈리아의 진열실도 과거와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지만 특별히 과거를 ‘기억’한다는 발상은 작용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람: 전진성, 같은 책, 28쪽.
8) 전진성, 같은 책, 27~31쪽.
9) Theodor W. Adorno, “Valéry Proust Museum”, PRISMEN; Kulturkritik und Gesellschaft, 1995, 홍승용 역, 「발레리 프루스트 박물관」,『프리즘』, 문학동네, 2004, 204~211쪽 참조.
10) 아도르노는 발레리와 프루스트가 예술작품에서 느끼는 행복의 전제조건을 공유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각각, 예술작품에서 느끼는 행복의 전제조건을 ‘더없는 즐거움(delices)’, 도취적 기쁨(joie envivrante)' 라고 말하며 공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람: Theodor W. Adorno, 같은 책, 209~217쪽. 
11) Theodor W. Adorno, 같은 책, 204쪽.
12) Theodor W. Adorno, 같은 책, 216~219쪽.
13) 말로가 언급한 ‘상상의 박물관’은 복제를 통한 전 지구적 수집이 전제가 되며,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을 보완하는 도구로서의 개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람: André malraux, Le Musée Imaginaire, 1947, 김웅권 역,『상상의 박물관』, 東文選, 1965, 288쪽.
14) 상상의 박물관이 선별된 모든 예술 작품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수메르나 바빌론의 조각가들이 요구했던 영원성이나, 혹은 페이디아스와 미켈란젤로가 요구했던 불멸성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시간으로부터의 수수께끼 같은 해방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람: André malraux, 같은 책, 288쪽.
15) 말로가 말하는 ‘초시간의 세계’ 는 ‘초자연의 세계(le surnaturel)’ 및 ‘비현실의 세계(l'irreel)’ 와 대비되면서 이 둘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는 편의상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종교 예술을 ‘진리의 상상계’를 구현하는 ‘비현실의 세계’로 규정했으며, 마네 이후의 현대 예술을 ‘초시간의 세계’로 규정했다. 이 초시가의 세계는 이전의 두 세계를 포함해 과거의 모든 예술들이 부활되고 변모되고 정복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예술만의 특수한 ‘초세계(超世界, le surmonde)'를 말한다. André malraux, 같은 책, 299쪽.
16) 이용우, 같은 책, 19쪽.
17) 디지털화는 샘플링과 수량화라는 두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전기의 보급으로 전자 매체 시대에 돌입한 매체 예술은 컴퓨터의 보급으로 기존의 연속적인 성격을 지닌 아날로그적 매체에서 각각의 요소가 일정한 단위로 쪼개어져(sampling) 수량화 된 디지털화(digitization)된 상태가 된다.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는 이러한 디지털화의 과정을 연속적인 데이터를 수적 재현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Lev Manovich, The Language of New Media, 2003, 서정신 역, 『뉴 미디어의 언어』, 생각의 나무, 2004, 71쪽.
18) Wolfgang Welsch, 같은 책, 310~311쪽 참조.
19) Lev Manovich, 같은 책, 80쪽.
20) Roy Ascott, "The Museum of the Third Kind", 1996, 이원곤 역, 「제 3의 미술관」,『테크노에틱 아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2, 143쪽.
21) 이광형, 「디지털 문화 시대」, 『디지털 시대의 문화 예술』, 문학과 지성사, 2003, 25~26쪽.
22) Axel Wirths, "The Digital Museum - A Museum in Data Space", Media Art Perspective, ZKM, 1995, 191쪽 참조.
23) 애스콧은 새로이 탄생하고 있는 문화 속의 리얼리티를 ‘창발적 리얼리티(Emergent Reality)’라고 부르며, 기존 미술관이 제 1의 자연을 수집의 근본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 새로운 박물관의 수집 대상은 '제 2의 자연(Nature II)'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Roy Ascott, 같은 책, 145쪽.
24) 애스콧은 ‘디지털 뮤지엄’ 이라고 부르는 것이 현재의 관례이지만, 이것은 잠정적인 것이며, 실제로는 일종의 당착어법(oxymoron)적인 표현이라고 언급한다. 그는 ‘디지털’ 이라는 말은 유동성(fluidity), 일회성(transience), 비물질성(immateriality), 그리고 변형(transformation)을 의미하지만, ‘뮤지엄’은 늘 고체성(solidity), 안정성(stability), 영구성(permanence)의 편에 서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Roy Ascott, 같은 책, 151쪽.
25) 라도삼, 『비트의 문명 네트의 사회』, 커뮤니케이션 북스, 1999, 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