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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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대전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

yoo8965 2019. 12. 17. 18:17

2018 대전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
: 과학은 진정 예술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자신의 작품 에서 세계 창조의 순간 조물주(창조주)가 인간을 만들어내기 직전의 모습을 묘사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조물주가 두 갈래로 손가락의 방향을 가리키는 장면인데, 작가는 각각의 방향으로부터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상징하고자 하였다. 이성적 영역과 감성적 영역의 결합에 의해 탄생한 인간, 요즘 말로 풀이해보자면 근원적인 부분에서부터 융-복합적 결합에 의해 탄생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일정 부분 의존하여 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물감 안료에 관한 접근에서부터 원근법과 사진, 영상과 최근의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과학을 원천으로 세계를 관찰하고 조명해왔다. 과학 또한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아 스스로의 미적 규범을 확립하였다. 과학철학자인 제임스 맥칼리스터(James W. McAllister)는 ‘미적귀납(aesthetic induc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학자들이 과학적 실행과 반복과 축적을 통해 미적 규범을 확립하여 왔음을 지적하는데, 과학 영역에서의 세계에 관한 혹은 인간에 관한 탐구 역시 예술적 절차와 연동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예술적 영감이 과학 분야의 발전을 견인하고 과학적 발견이 예술의 문제의식을 고취시키는 양자 간의 융합의 시도는 일정 정도 이상의 성과를 보이는 듯하다. 동시대 예술의 흐름에서 과학적 지식이 토대가 된 예술 작품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으며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매체와 예술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의 열매를 예술 분야에서 단순 차용하는 1차적 결합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화학적-생물학적 결합에 관한 갈망은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이러한 두 분야의 융합 및 수렴에 관한 과정조차 찾아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전시립미술관의 ‘대전 아티스트 프로젝트’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올해 7회째를 맞이하여 지속적으로 과학 분야와 예술가들의 연결 고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8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는 대전비엔날레 2018과 내용적으로 연동하는 동시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의 협업을 통해 이러한 맥락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였다. 5팀의 예술가들은 융합적 문제의식에 기반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카이스트 연구원들의 자료가 결합된 방식으로 전시가 진행된다. 대전 비엔날레의 주제가 ‘바이오아트(Bio Art)’임을 떠올려보면 아티스트 프로젝트 2018은 대전 비엔날레의 주제와 간접적으로 연결되지만 생물학(Biology)으로 제한되지 않는 미시 세계 및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와 카이스트 비전관의 두 파트로 구성되는 이번 전시는 각각 ‘부분과 전체’, ‘타자의 시선’이라는 독립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에서는 노상희, 두루필, 러봇랩이 작품이 전시되며 카이스트 비전관에서는 리트리버(박승순, 이종필)와 신승백-김용훈의 작업이 선보여진다. 

  우선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의 작품들을 살펴보자. 전시의 소주제를 ‘부분과 전체’로 설정하고 있는 만큼, 전시는 우리 세계의 부분들을 통해 전체의 모습을 또한 전체 모습으로부터 상기되는 부분적인 양상을 추적해보고자 시도한다. 노상희의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러한 전시의 주제를 적확하게 표현하는데, 어느새 우리의 삶 속 중요한 변수로 인식되는 미세먼지를 소재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에 관한 비전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과거 테미 예술창작센터를 통해 선보였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번 전시에는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상호작용적 설치를 통해 우리의 인식 체계 속에 들어오지 못한 미시 세계를 경험하게 만든다. 노상희의 작업이 자연 환경에서의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한 관찰을 담은 시도였다면, 두루필의 작업은 우리의 삶을 필연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인공적 세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파라노이아 테스트 #2, 끊고 맺는 방>은 전작(<파라노이아 테스트>)에서의 설정, 즉 백남준의 협주자였던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발병 원인이 전자파였다는 추정을 그대로 유지한다. 작가는 이러한 설정으로부터 관객들을 전자파 차폐막이 형성된 전시장으로 유도하여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막고 그녀의 삶의 단편들을 찾아보게 만든다. 한편 러봇랩은 외부 세계로 표출된 현상을 통해 내부 세계로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군 , <로봇윤리헌장기념비>,  시리즈들은 이미 현실에 침투하고 있는 로봇이라는 이질적 존재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추적한다. 은 머신러닝을 통해 데이터 학습을 한 로봇이 인간의 관상을 봐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으며 로봇윤리헌장과 같은 작품의 소재는 로봇이라는 상징적인 인공 개체를 통해 오히려 인간에 관한 고찰을 시도하려는 작가들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 작품은 로봇을 일종의 타자로 간주한다는 측면에서 카이스트 비전관에서 진행되는 전시와 연결되는 작품인데 카이스트에서는 ‘타자의 시선’을 주제로 현재의 시점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타자, 즉 로봇과 인공지능의 면모가 드러난다. 

   신승백 · 김용훈의 와 는 인공지능 및 알고리즘의 인식 프로세스가 인간의 그것과 차이가 나는 순간을 묘사한다. 사실, 인공지능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및 그것을 다시 출력하는 일련의 과정은 일견 인간과 유사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는데, 두 작품은 인공지능의 이러한 (인간과의) 차이점을 정반대의 입장에서 보여준다. 는 얼굴의 형태로 인식되는 이미지를 피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관객은 얼굴을 찡그린 상태로 거울을 마주하여 스스로의 인상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반면 는 의도적으로 왜곡된 꽃의 이미지마저도 꽃의 이미지로 분류하는 인공지능의 결과 값을 보여주고 있는데, 찡그린 얼굴을 얼굴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의 오류적 상황과 왜곡되어 있음에도 꽃 이미지로 분류해버리는 (역)오류적 현상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양가적 측면은 리트리버(박승순, 이종필)의 에서도 발견된다. 이 작품은 자연 혹은 도시 풍경 이미지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하여 그에 부합하는 사운드와 이미지를 다시금 출력하는 일종의 신호-변환장치인데, 관객들은 자신들이 이미지로부터 상상한 사운드를 경험하거나 자신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사운드를 듣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정반대의 상황이 동시에 발생하는 까닭은 앞서 신승백 · 김용훈의 작품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인식하고 해독하는 과정에서 인간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동시에 발생하는 데에 기인한다. 여기에서 숨겨진 사실은 우리가 이미지 혹은 사운드를 인식하는 행위가 객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지 않는다는 부분인데, 의미적으로 연동되는 작업인 <소리풍경 인지능력 평가(SLCAT) II>에서 그러한 특성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관객들은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살려 그것의 진원지를 추적하지만 결과 화면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주관적 기억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이는 인간의 인식적 프로세스를 논리적으로 학습하려는 인공지능이 오히려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비논리적인 차원의 감성적 영역에 관한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위의 작품들을 통해 ‘대전 아티스트 프로젝트 2018’이 전달하는 예술의 모습은 매우 명료하다. 이전까지 예술의 소재 및 주제는 우리(인간)의 가시적 시각에 들어오는 세계에 관한 그리고 나와 너로 대변되는 (인간 범주에서의) 주체/타자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제기하는 세계에 대한 시각과 주체/타자의 문제는 과거의 사유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다. 앞서의 작품들이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미시적 세계와 우리의 현실을 연결시키며 로봇 및 인공지능과 같은 이질적 존재를 우리의 타자로서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관찰하는 우리의 시각은 확장된다. 예술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방식으로 현실에 관한 또 다른 시각을 가능케 하는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기술)은 예술의 구원자가 아니라 지극히 친밀한, 아니 이전부터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던 동반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전제로부터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함은 매우 당연한 결론이 된다. 단순히 서로를 향한 응시를 넘어 양자가 서로의 존재 이유로 수렴되는, ‘대전 아티스트 포로젝트‘의 이후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 2018 대전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 도록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