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현실을 마주한 가상의 질문,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Paul McCarthy, <C.S.S.C. Stage Coach Coach Stage VR experiment “What is your name?”>, 20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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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마주한 가상의 질문,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Paul McCarthy, <C.S.S.C. Stage Coach Coach Stage VR experiment “What is your name?”>, 2017

yoo8965 2019. 12. 9. 20:48

Paul McCarthy's C.S.S.C. Coach Stage Stage Coach VR experiment Mary and Eve, VR 헤드셋 내부 이미지, 2017 © Paul McCarthy and Khora Contemporary


“What is your name?”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누군가의 이름을 묻는 행위는 단순히 그가 가지고 있는 ‘이름’으로 표상되는 기호에 관한 질문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항상 상대방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이자 이질적 존재를 연결시키는 접속의 행위로 이해된다. 따라서 작품의 부제이기도 한 이 명제는 낯선 가상에게 보내는 익숙한 현실의 물음이라기보다는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된 강력한 가상의 현실에 대한 질문이다. 

질문은 여러 가지 의미로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전시장에서의 그것은 작가가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작가 스스로를 향하는 성찰의 행위로도 이해된다. 폴 메카시(aul McCarthy)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미술 현장에 늘 파격적 질문을 던져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작가 본인과 캐릭터들의 모습은 현실로 인정하기 힘들고 어려워서 외면하고 싶은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가상이라는 대피처가 발생한다. 그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던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추어 ‘폰다치오네 조르지오 치니(Fondazione Giorgio Cini)’에서 VR 작업을 선보였을 때, 현대 예술의 장은 여러 가지 의미로 출렁대기 시작했다. 이는 가상현실이 현대 미술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로서 인식되거나 이제까지는 외면할 수 있었던 신기술과 결합한 예술 작품들의 시장가(價)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관한 탄식이기도 했다.  

Paul McCarthy, CSSC VR experiment “what is your name?”, 2017, Virtual reality, © Paul McCarthy and Khora Contemporary Courtesy the artist, Hauser & Wirth, Xavier Hufkens and Khora Contemporary


메카시의 VR 작품 는 그가 오랜 기간 동안 진행해 온 두 번째 장기 프로젝트(‘S.C : Stage Coach’)의 일환으로서 존 포드 감독의 대표적인 서부극 영화(<Stagecoach>, 1939)를 바탕으로 스스로 각본을 쓰고 연출하여 개봉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메카시는 원작 영화와 같이 역마차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는 낯선 이들의 모습으로 현대인들의 군상을 표현했다. 평소 정치와 대중문화, 젠더의 문제에 관심이 많던 작가는 S.C 시리즈를 통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무정부적 도발과 섹스와 폭력 등의 요소로서 우리 사회의 금기를 건드려왔는데, 이번 VR 버전에서는 두 명의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켜 그들 사이의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관객들로 하여금 경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평소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의 공간에 관심이 많음을 피력해왔던 작가의 언급을 통해 그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직접 연출한 영화라는 가상 세계를 통해 완벽히 짜여진 (그러나 실제 세계와 유사한) 세계를 창조한 이후 그는 이번 작품에서 ‘코라 컨펨포러리(Khora Contemporary)’와의 협업으로 현실과 가상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실재적 층위의 연결을 시도했다. 관객들은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자신들의 사적 공간에 침투하는 메카시의 캐릭터들과 조우하게 되는데, 이러한 가상 세계와의 접속을 통해 스스로의 정신성과 신체성이 공명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앞서 그의 질문은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접속 명제로서, 작품에 등장하는 두 명의 캐릭터와 관객들을 한데 묶는 강력한 속박으로서 그리고 관객의 신체와 정신의 합일의 순간을 기대하는 주문으로서 기능한다. 


2017년 10월 퍼블릭아트(Public Art)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