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Daniel Steegman Mangrané, <Phantom> / 가상은 우리와 호흡하는 현실의 이면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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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Steegman Mangrané, <Phantom> / 가상은 우리와 호흡하는 현실의 이면이다

yoo8965 2019. 12. 9. 20:48

Daniel Steegman Mangrané, <Phantom>, 2015


   최근 가상(Virtual)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이유는 기술발전에 따른 새로운 가상현실테크놀로지의 출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기술 문화로부터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삶의 전면적 가상화에 기인한다. 다만 그러한 현실의 가상화에 관한 인식이 특정 기술 영역에 매몰되어 피상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Daniel Steegman Mangrané)는 가상의 범위를 현실의 덧붙여져 있는, 그리하여 마치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은 이면의 세계로 이해한다. 그는 과거로부터 물리적 세계의 단단한 (그래서 견고하게 보이는) 물질성 자체에 관심을 가져왔고 우리 사회가 지닌 현실적 문제들과 그것들을 결부시켜 왔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의 이러한 현실적 조망과 연동되는 세계의 이면에 관한 시각인데, 그는 견고한 현실이 지닌 이면의 모습이 언제나 유기적이고 탈 물질화된 사물성(objectness)으로 귀결됨을 지적해왔다. 만그라네는 197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생했으며, 바르셀로나에 있는 에이나 미술디자인 학교와 GRISART 사진학교 공부했다. 현재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그는 유망한 젊은 라틴 아메리카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권위 있는 PIPA 프라이즈에 2012, 2013, 2014년 세 차례 후보로 오른 바 있으며 2012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2015년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 등을 비롯한 다수의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Daniel Steegman Mangrané, <Phantom>, VR 헤드셋 내부 이미지, 2015

 

   2015년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에서 선보였던 <Phantom : kingdom of all the animals and all the beasts is my name>은 가상 세계를본격적으로 그의 작품 환경으로서 제시한 첫 시도였다. 그는 2008년 이후 브라질 남부의 마타 아틀란타(Mata Atlântica) 우림지의 공간적 차원에 집중한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는데, 이는 그 일대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소멸하고 있는 공간인 까닭이다. 그는 스캔랩(ScanLAB)과 협업하여 브라질의 열대 다우림 지역의 몇몇 장소를 스캔하여 사진 이미지로 제작하는 한편, 특수 제작된 짐벌 카메라를 이용하여 360도로 주변 환경을 촬영했다. 또한 오큘러스(Oculus)의 기술로서 시선 추적을 가능케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관객들은 VR 헤드셋(H.M.D : Oculus Lift)을 착용하고 화이트 큐브 전시장에서 마타 아틀란타의 환경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단지 멀리 떨어져있는 물리적 공간의 연계나 우리 세계와는 동떨어져있는 별개의 가상 세계를 보여주려 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멀리 떨어져있다고 인식되기에 현실과의 일정 정도 이상의 괴리감을 갖고 있는 지역의 현안을 우리 현실과 매우 밀접한 틈새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360도로 펼쳐지는 영상 화면에 의해 숲의 나뭇가지, 줄기와 잎, 덩굴 등과 같은 복합적인 환경을 경험하며 자신의 보이지 않는 신체가 얼마나 다우림 지대의 숲과 상호작용하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귄터 안더스(Günther Anders)는 텔레비전 시대를 관찰하면서 ‘팬텀(Phantom)’으로 명명될 수 있는 제 3의 층을 설명하고 있는데, 매체에 의해 현상된 세계는 아무리 그것이 생생하더라도 현실이나 가상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그라네는 이러한 팬텀 층을 축으로 두 세계의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치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용해시켜보려는 것처럼.

2017년 10월 퍼블릭아트(Public Art)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