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John Gerrard / 현실 세계의 확장된 거울 : 포스트-미디어 아트의 현재 : 존 제라드의 버추얼 옵티콘(Virtual-Optikon)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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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Gerrard / 현실 세계의 확장된 거울 : 포스트-미디어 아트의 현재 : 존 제라드의 버추얼 옵티콘(Virtual-Optikon)

yoo8965 2018. 1. 16. 18:56


John Gerrard, <Solar Reserve>, 2014

 


‘뉴욕 맨하튼 한복판에서 네바다 사막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면’


  링컨센터(Lincoln Center)는 지난 2014년 뉴욕의 공공예술기금(Public Art Fund)의 후원 을 받아 아일랜드의 미디어아티스트 존 제라드(John Gerrard)의 <Solar Reserve>를 선보였 다.이 작품은 네바다 사막에 위치한 태양열 발전소와 주변 사막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을 실시간으로 뉴욕 한복판에 전송하는 설치 작품이다. 복잡한 도시 속에서 이러한 풍경을 마주 하는 것은 분명 매우 생경한 경험임에는 틀림없지만, 사실 이 작품은 실시간으로 관측된 실제 풍경의 모습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재구성한 하이퍼-리얼한 작품이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반사각을 조정하는 10,000개의 태양열 거울로 둘러쌓여 높이 솟아있는 중앙의 타워는 마치 모든 곳을 감시하는 판옵티콘(panopticon) 구조의 현대 사회를 표상하는 듯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작품 속 풍경의 모습이 매우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엄밀 히 말하면, 실제 풍경이 아닌 컴퓨터 게임 엔진으로 재구성된 가상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러 한 작품의 모습이 우리에게 현실이 아닌 가상적 모습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작품의 기반이 컴 퓨터 시뮬레이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실재하는 풍경이지만 도시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생경한 모습인 탓에, 그것의 현실성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고 가상의 무엇으로 추정해버리는 까닭이다.


  여기서 현대 예술, 특히 기술-미디어를 이용하는 미디어아트의 주요한 흐름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새로운 기술 미디어를 통해 우리 사회 조명해 보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를 둘러한 실제 세계의 모습을 파악해 보는 것이다. 독일의 미디어 철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는 “미디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Media determine our situation.”라고 말하며 미디어에 의해 주도되는 현대 사회를 분석했다. 이는 단순히 미디어의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라는 예측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미디어의 조작자와 수용자가 전도되어가는 현대 사회의 모순적 지점을 꼬집는 언급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존 제라드의 작품 이전에도 미디어가 지닌 이러한 특성, 특히 기술-미디어의 상호 연결성, 가상성 등을 이용한 예술 작품은 존재했 다. 백남준의 <Good Morning Mr. Owell, 1984>의 경우,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파리의 퐁피 두센터와 뉴욕의 WNET 텔레비전 스튜디오를 연결하고 세계 각지의 모습을 생중계했는데, 이 는 조지오웰(Gerge Owell)의 유명한 소설인 <1984>에서 예견했던 미디어에 의해 지배받는 디 스토피아적 미래상을 정반대로 해석한 작품이었다. 즉, 미디어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가 함께 섞일 수 있는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미디어아트로 제시했던 셈이다. 또한, 폴 서먼(Paul Sermon)의 <Telematic Dreaming, 1992>은 원거리의 있는 상대방을 한 장소에 현전시켰다. 이 작품은 멀리 떨어져있는 두 개의 공간에 놓여있는 침대를 통해 서로간의 온기를 미디어를 통해 재생시켰다. 물론 시각적 이미지를 통한 원격현전의 체험이었지만, 미디어가 지닌 생생 한 가능성을 전 세계인의 눈에 확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Richard Estes, <Paris Street Scene>, 1972


  그러나 초기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기술-미디어가 지닌 그 자체의 특성을 예술적 요소로 만 들어냈다면, 현재의 미디어아트 작품들은 오히려 기술-미디어가 왜곡하고 덮어버리는 현실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1960년대 후반 등장했던 극사실주의 (Hyperrealism)의 흐름과도 연동된다. 리처드 에스테스(Richard Estes)의 1972년작인 <파리 의 거리 풍경>은 사진처럼 보이는 세밀한 묘사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러한 정밀한 이미지 속 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모습이 숨어있다. (거울 속에 반영된 자동차의 모습을 살펴보기 바란 다!) 즉, 정밀하게 묘사된 사진과 같은 이미지로부터 보는 이들의 눈을 속이는 작용을 하는 것 이다. 이러한 효과는 생생한 미디어 화면에 현혹되어 현실을 망각해버리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John Gerrard, <Farm>, installation view at Thomas Dane Gellery, 2015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존 제라드의 작품이 현실에서 촬영된 이미지로부터 가상적 이미지-세 계를 재구축한 것이라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현실이 재구축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세계에 관한 관찰자와 해석자는 인간이었다. 아무리 기술-미디어를 통해 그것의 이미지 를 포착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술적 이미지의 조작자는 우리들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이제 그러한 역할 또한 기계가 수행한다. 가령 구글(Google)은 이미 과거로부터 세계의 이 미지를 스스로의 알고리즘으로부터 포착하고 있으며,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과정에 개입하여 데이터가 가진 또 다른 맥락에 주목한다. 존 제라드가 오는 6월 중국 베이징 Ullens Center 에서 선보이는 작품인 <팜(Pryor Creek, Oklahoma) 2015>, <엑서사이즈(Dunhuang), 2014> 역시 이러한 프로세스를 통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다. <팜>의 경우, 오클라호마에 위 치한 구글의 서버 센터 중 한 곳을 모델로 하여 이를 디지털-합성하여 탄생시킨 작품이며, <엑서사이즈>는 고비 사막의 한 가운데 미스터리하게 위치한 도로망을 위성 사진으로 바라본 모습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제 세계에 대한 유일한 관찰자와 해석자로서의 인간은 새로운 역 할을 부여받는다. 우리는 오히려 기술-미디어들 사이의 연합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새로운 환 경의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며, 기술-미디어로 제작된 예술 작품은 이러한 현재-미래상에 대한 반영적 무엇이 된다. 기술 미디어는 이미 우리 앞에 현실 세계의 확장된 거울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Beyond 2016년 5월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