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공수경 / 일상의 기억, 침투하는 파편 본문

Arts & Artists

공수경 / 일상의 기억, 침투하는 파편

yoo8965 2013. 9. 26. 04:04



   기억이 현재의 의식을 매개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 속에서 마주하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활동을 기억으로 남겨놓는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의 내재된 심리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요인일 때, 그것은 이후 신체적 증후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은 현대인들이 다양하게 경험하는 이른 바 '포비아(Phobia : 공포증)'로 볼 수 있는데,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의하면 포비아는 일종의 불안 히스테리이며, 이러한 불안은 특정한 외부 대상이나 상황에 연결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회피가 중심적인 증상이 된다. 공수경은 인간의 무의식적인 그러나 일상적인 기억에 주목하는 작가이다. 그녀는 기술이 매개하는 인간의 소통 방식에 주목해 왔다. 우리의 소통이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는 방식에 흥미를 가졌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보다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혹은 아주 개인적일 수도 있는 기억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증후에 주목한다. 글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파편적 기억, 무의식에 숨어있는 내면적 공포가 그것이다.

 

   작가는 흰 천으로 덮여있는 나무 프레임에 뾰족한 송곳같은 장치를 설치하여 관람객이 작품에 접근하면 천을 뚫어버릴 것처럼 솟아오르게 만들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러한 구성으로 제작된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데, 표면적으로 보자면 이들 작품은 작가가 경험한 '선단공포증(先端恐怖症)'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위 · 바늘 · 연필 · 나이프 · 커터 등 끝이 날카로운 물체가 시야에 들어 오면 정신적으로 강하게 동요하게 되는 선단공포증은 대부분 유아기에 경험하여 성인이 된 이후까지도 정식적으로 영향을 주는 공포증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해보자면, 이 작품군은 단순히 선단공포증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환경에서 마주하는 정신적 히스테리 전체를 표상한다. 각기 다른 형태로 제작된 이 작품들은 모두 동일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흰색 천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송곳,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프레임이 그것이다. 마치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포피아 증상들의 원인이 결국 유사한 패턴으로 야기된 정신적 트라우마라는 것을 이야기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이 작품들의 백색 천은 우리의 의식적 수준, 구체적으로는 백색으로 상징되는 무의식을 은유하며 그것에 대응하는 날카로운 송곳은 우리의 포피아적 상징체로서 무의식을 뚫고 솟아오르는 히스테리적 순간을 의미하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의 면역기능 때문인지 우리는 피하고 싶은 증후 유발 현상을 다시 상기하여 그것이 우리에게 제공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공수경의 작업은 공포증에 대한 '카운터포비아(Counterphobia)'적 대응이 된다.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그녀는 우리의 무의식에 기거하는 심리적 공포를 다시 끄집어낸다. 그것도 매우 직접적인 상호작용적 방식으로 말이다.사실, 이 작품이 제시하는 상호작용적 요소들은 상징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작품에 접근했을 때 솟아오르는 날카로운 첨단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의식적 차원이 외부의 자극에 의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관람객의 존재는 작품을 작동시키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주체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순간을 일깨우는 외부자극으로서 기능한다. 물론, 그렇게 침투하는 관람객 또한 유사한 포비아적 증상의 희생자 일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관람객에 의해 만들어지는 직접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그것이 은유하는 의미를 동시에 발생시켜 극적인 긴장감을 유발한다.

 

   공수경의 작업이 전반적인 포비아 혹은 정신적 히스테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전시에 포함된 다른 유형의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마치 신경막과 세포 줄기처럼 엮여있는 3장의 서로 다른 색천과 프레임으로 구성된 작품은 아주 서서히 엇갈리며 미묘한 색의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 변화가 매우 느리고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은 부지불식간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색의 대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미디어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무의식적 수준을 보여줄 때 그것이 지닌 기능을 상회하는 정신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는 미디어는 우리의 무의식적 순간에 드러나는 자아의 모습을 은밀한 방식으로 유추하게 만든다. 흰색과 대조되는 강렬한 원색의 천을 통해 숨겨져있는 개인의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공수경은 현재까지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그녀에게 미디어는 때로는 훌륭한 외피로 때로는 작품을 구동시키는 프로세스로서 작용했다. 이는 기술 미디어가 지닌 새로운 기능과 가능성을 작품의 내용으로 연결시키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그녀는 미디어를 철저히 작품의 표면에서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미디어를 숨김으로서 드러나는 정신적 매개를 경험케 한다. 이제 미디어는 단순히 우리의 외부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우리의 지각을 매개하고 내면을 현상하기 때문이다.



- 일상의 기억, 침투하는 파편 : 공수경 개인전 <The HABITUAL>展, 전시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