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김병호 / 완결된 시스템 : 기계화된 감각의 융합 본문

Arts & Artists

김병호 / 완결된 시스템 : 기계화된 감각의 융합

yoo8965 2012. 1. 21. 18:28


    김병호의 개인전이 지난 10일, 서울 삼청동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렸다. 그간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에서 그는 완성된 제품과 같은 말끔하게 재련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김병호의 작업은 금속 재질로 이루어진 하나의 인공적 조형물이지만, 역설적으로 항상 유기체적 신체를 갈망한다. 마치 우리의 신체가 독립된 기관들로 이루어지듯 그의 작품은 각각의 금속 파트들이 모여 전체 형상을 구성해 왔으며, 인공적일지는 몰라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청각 신호를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금속 부품들이 조립되어 하나의 전체 조형물을 완성하는 도식을 넘어 전체는 부분의 총계-합이라는 공식이 전시 전반에 걸쳐 제시되고 있다. 전시 제목이 <A System> 으로 정해진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전시장에 들어서 처음 보이는 작품은 <Irreversible Damage>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란 작품 제목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날카로운 조형물의 마감을 통해 느껴진다. 이러한 마감 때문인지 작품은 강력한 촉각성을 획득한다. 관람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직접 피부에 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에 찔린 듯한 통각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감각의 공유 내지는 전이 과정을 통해 작품이 가진 차가운 기계적 마감은 감성적 감각으로 전환된다. 두 번째 작품 <Soft Crash>에서는 이러한 역설적 감각 전환이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마치 가시 돋친 극피동물인 성게를 형상화 해놓은 것 같은 이 작품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듯 금속 가시를 사방으로 내두르고 있다. 이 작품은 ‘알루미늄’이라는 무른 금속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다른 여타의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마감처리(Anodizing)를 통한 표면강화를 진행하지 않았는데, 이로부터 작품의 제목을 표면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Irreversible Damage>에서 관람객들이 제목을 통해 작품의 형태를, 또는 작품의 형태를 통해 제목을 떠올리는 인지의 과정을 경험하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것의 역설적 관계를 다분히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시선을 돌려보면 벽면에 걸려있는 작품 <Logical Intervention>을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컴퓨터 알고리즘 언어에서 사용되는 논리 도형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데, 컴퓨터 언어의 종류인 ‘C언어’에서 조건문이 해당하는 마름모꼴 도형이 작품의 형상을 통해 드러난다. 컴퓨터 언어에서 이 도형은 논리 구조의 중간 점검자의 역할을 상징한다. 이 도형을 통해 논리의 전개와 번복이 결정되는 셈이다. 이렇게 보자면, 이 작품이 지닌 형상적 의도는 충분히 설명적이며 합리적이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각 작품의 개별적 완성을 넘어 전체 작품들의 일련의 흐름은 2층에 놓여진 두 작품 <Radial Eruption>과 <Equilibrium>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1층의 작품들과 김병호의 전작들에서도 나타났지만, 이 두 작품은 작가가 의도하는 유기체의 각 기관별 형상화라는 덕목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살펴보자면, <Radial Eruption>은 마치 음파가 퍼져나가는 청각적 감각의 전달 과정을 형상화 하는 듯 하다. 또한 피에조(Piezo) 센서를 통해 미세한 전기적 사운드가 발생되어 외형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시각을 넘어 보는 이들의 청각을 자극한다. 또 다른 작품 <Equilibrium>은 우리 신체에서 균형감각을 관장하는 ‘세반고리관’을 닮은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신체 속에 숨어있는 장기(臟器)의 형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2008년의 <Assembling for Eternity>이나 꽃의 수분 과정을 은유적으로 차용한 그의 전작 <Silent Pollen-sowing> 시리즈 등에서도 나타났었는데, 이와 같은 은유적이며 인공적인 기관(器官)은 우리의 실제적 감각 체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김병호 작업에 있어 하나의 집결지 및 또 다른 분기점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전시 제목인 ‘A System 하나의 시스템’은 그간 작가가 보여주었던 각각의 개별 작품들이 축적되어 하나의 완결된 기관'계(界)'가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마치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듯, 김병호에게 있어 각 작품들이 추구하는 의미의 집합은 온전한 하나의 시스템, 즉 완성체가 된다.


완결된 시스템 : 기계화된 감각의 융합  _ 김병호 개인전 _A SYSTEM 
퍼블릭아트 2011년 12월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