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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추락한 그대들을 위한 변명 _ 제 1회 추락천사 페스티벌 본문
분명. 추락천사 페스티벌은 낙선전의 형식을 띄고 이전의 다양한 전시공모 및 작가 선발의 기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그러나 인상주의자들의 예들을 굳이 떠올려보지 않더라도 현재의 환경이 과거의 상황과는 다양한 측면에서 상이하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낙선전 형식의 페스티벌이 현재의 상황에서 지니는 의미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추락한 자들을 불러모아 소통하려 하는가?
시작은 늘 그렇듯, 신선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공모전으로 대표되는 예술지원정책의 ‘체’에 걸러지지 못해 슬퍼하는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불평불만이라도 늘어놓아 볼까. 라는 나름의 신명나는 이유가 존재했으니까. 그래서 호기 있게 참여하겠다고 대답해놓고 돌아오는 길부터 작은 고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추락이라는 용어로 상징화해버린 낙선이라는 경험의 무게를 아마도 난 스스로의 낙천적 기준으로 너무 가볍게 예측한 것은 아닌가하는 그런 의문들 말이다. 더군다나 주최측이 제시한 하나의 조건인 ‘낙선’은 앞서 언급하였듯, 현재의 상황에서는 과거의 그것과는 크게 의미가 달라진 상태이다. 따라서 그 기준이 페스티벌의 장에 모일 이들을 소통하게 만들 중심점이 되기는 어렵겠다라는 것이 고민의 두 번째 이유였다. 다만 분명한 것은 추락천사 페스티벌이 지닌 최소한의 조건인 ‘낙선’이라는 기준이 하나의 감정적 요건으로서의 동인이 아닌,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다양성을 의심해볼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기를 희망했던 것은 사실이다.
예술에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은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우매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그러한 가치들을 추구하는 이들을 추적해 볼 수도 있겠다는 어쩌면 순진한 희망도 가졌었던 것 같다. 내가 그곳에서 기능하려고 마음먹은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러한 경험들을 원천으로 삼아 아직도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벽을 두고 함께 소리치고 싶었다. ‘당신들이 보고 있는 예술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굳이 칸트의 론(論)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예술 작품이 지녀야 할 독창성과 전범성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미묘하게 무게중심을 달리하며 예술 작품에 관한 비평적 해석의 틀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동일한 코드로서 작가들에게 요구되지 않기에, 예술 작품에 관한 판단 기준의 비판적 가능성의 공간은 언제나 열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예술 작품이 스스로의 당위성을 전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러한 경우, 판단 기준에 대한 의심이 아닌 스스로의 예술에 관한 의심이 되고, 심지어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저혈한 미숙함으로 전환되어 논의의 여지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비판되어야 할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보이지 않는 벽의 인지를 넘어 그것을 인정하고 그 높이에 대한 불만만을 제기할 뿐 벽을 사이로 한 안과 밖의 구별에 대하여 비판적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행사는 말 그대로 추락한 천사들의 자위적 헤프닝 이상의 의미를 획득할 수 없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왜 그리 호전적 태도로 논쟁을 벌여야 하냐고. 왜 벽이란 존재를 다시 확인해야 하냐고.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이번 페스티벌의 존재 이유인 것을.
오해를 풀고자 덧붙이자면, 그러한 나름의 확인 방법이 항상 심각하고 비판적이며 패배주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시도했던 제도권 예술에 대한 전복적 행위들이 도전적이고 개혁적인, 어쩌면 불편한 시도로부터 시행되었음을 상기해보자. 즐겁게 서로의 예술을 선보이되 스스로의 당당한 기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밑천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다양성을 요구한다면, 페스티벌이라는 형태를 향유하며 함께 모인 추락천사들이 스스로 비상할 수 있는 새로운 날개를 발견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추락천사 페스티벌 홈페이지 : http://uac-angel.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