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손흥민, 마침내 박지성을 넘어서다! 본문

image_logue

손흥민, 마침내 박지성을 넘어서다!

yoo8965 2022. 9. 19. 00:46

마침내, 손흥민은 박지성을 넘어섰다!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헤묵은 논쟁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에 관한 내용인데, 흔히 '차-박-손', '손-박' 대전이라고 불리우는 이 논쟁은 해당 선수들의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지닌 팬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혹은 기억하는 선수에 관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최근까지도 불거지고 있었죠.

 

물론, 지난 시즌 손흥민이 EPL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고 나서는 어느정도 해당 논쟁은 종료되는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차범근과 박지성이 이루어놓은 업적, 그리고 팀 성적과 관련한 우승 횟수 등에서 손흥민은 여전히 그들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했음을 지적하곤 합니다. 스포츠 선수에 관한 평가는 당연하게도 그 선수가 지닌 해당 종목에 관한 성적이나 스탯 등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그 외의 여러 요소들이 특정 선수들에 대한 평가를 만들어 내겠지요. 외모나 성격 등은 어떤 면에서는 선수의 성적을 넘어서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제 경우엔 이러한 객관적 수치보다 더 중요한 사항으로 해당 선수가 어떠한 개인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여전히 차범근과 박지성을 손흥민보다 우위에 두는 분들은 저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겁니다. 가령, 차범근의 경우 해외 리그로의 진출이 전무한 시기에 분데스리가라는 당시 최고의 리그에서 활약한 그의 서사를 좋아할 것이고 박지성의 경우, 전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 인정받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활약과 월드컵 4강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잊지못할 추억이 존재합니다. 축구 이외의 스포츠를 보더라도, 국내 팬들이 박찬호와 박세리, 김연아 선수에게 감동을 받은 이유는 그들의 성과 때문만은 아닙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내었기에 그들에게 감정적 연대를 보이는 것이겠죠. 일종의 공명 효과입니다. 비유해 보자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그늘 혹은 그림자가 짙었기에 그들의 찬란한 부분이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차범근의 활약을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밤을 새워 경기를 지켜보았던 박지성의 경우를 떠올려보자면, 경기를 보면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그가 오늘 선발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선발로 나오더라도 화려한 플레이를 기대하기 보다는 그가 일정 정도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주어 해외의 언론, 팬들로부터 맨유라는 팀에 적합한 선수구나 정도의 인정을 받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직접 골을 넣기보다는 어시스트를 해주거나 주요한 연결 부분 역할을 주로 수행했기 때문에 박지성의 활약은 가려지기 일쑤였습니다. 해외 팬들이 붙여준 '언썽히어로'라는 그의 별명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내 팬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별명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제 경우에도 박지성의 경기를 지켜보며 그를 응원하면서도 답답해하기도 하고 행여나 활약 없이 일찍 교체되어 나가는 경우에는 안타까운 마음에 (정말 미안하게도) 투정부리듯 그를 비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은 항상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고 언제나 감동을 주는 선수였습니다. 그의 경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많았거든요.

 

그러나 손흥민의 경우, 차범근-박지성 및 앞서 열거한 스포츠 스타들과는 조금은 다른 서사를 가집니다. 어려서부터 해외에서 축구를 경험했었고 선수였던 아버지의 엄격한 지도 하에 일찍이 두각을 보인 선수였죠. 분데스리가에서 일찍이 터트린 첫 골도 너무 멋진 장면이었고 프리미어 리그에 와서도 첫 해를 제외하곤 항상 20개의 공격포인트를 넘는 활약을 보였습니다. 첼시나 번리를 상대로 넣은 골들은 역사적 장면으로 기록될 정도로 그가 어떠한 수준의 선수이고 어느 정도의 스타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지를 짐작하게 만듭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박지성과 손흥민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 결이 매우 다릅니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두 선수의 팀 내 역할이 다릅니다. 포지션은 같을 수 있지만 선수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하죠. 박지성은 팀의 구조를 견실하게 만드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고 손흥민의 경우엔 공격포인트로서 팀의 결과를 직접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기에 손흥민은 더욱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그렇기에 부진할 경우 더욱 많은 비판에 직면하는 포지션과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선수 개인의 성격을 보더라도 손흥민은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팀원들 모두와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앞선 세대의 스포츠 선수들이 척박한 (해외) 환경에서 고군분투했던 느낌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손흥민 선수 역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매우 많은 차별과 억압을 마주했을 것입니다만,,,) 따라서 그에게 무엇인가 어두운 부분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의 골들 역시 쉽게 보기 힘든 원더골이 많은 만큼, 그의 실력과 스타성은 매우 천부적인 것으로 느껴졌으니까요.

 

다만 이번 시즌의 경우, 지난 시즌의 찬란했던 성과(EPL 득점왕)로부터 매우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 팀은 손흥민을 봉쇄하기 위해 매우 타이트한 수비를 경기 내내 보여주었으며 팀의 전술 역시 손흥민의 강점인 공간 활용보다는 팀의 새로운 멤버들을 활용하여 소위 말해 '꾸역승'에 적합한 포메이션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답답한 상황에서 손흥민은 8경기에 이르도록 골을 기록하지 못했고 어제 경기(vs 레스터전)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경기 선발에서도 빠지게 되었습니다. 감독이 많은 경기를 치루기 위한 로테이션이라고 설명하였음에도 그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영국 언론이나 팬들의 반응 역시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다분했으니까요. 손흥민의 경기를 보면서 예전 박지성이 떠오른 이유는 이러한 상황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손흥민의 활약을 너무나도 응원하고 기대하고 있기에 그가 활약하지 못했을 때 그러한 애정과 기대가 실망과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이겠죠.

 

그렇기에 어제의 경기에서 손흥민 선수가 첫 골을 기록하고 보여주었던 장면은 마냥 기쁘고 찬란한 장면만은 아니었습니다. 선수 자신이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오롯이 느껴지는,,,, 기쁘기보다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이었죠. 개인적으는 손흥민 선수의 서사가 마침내 박지성의 그것과 비견되는, 역경과 고난마저도 자신의 이야기 속에 담아놓은 듯한,, 그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지성 선수를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감사함과 고마움, 존경심의 감정이 손흥민 선수에게 전달되는 기분이랄까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나를 의심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이 발언이 매우 아프게 전달됩니다.

...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