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통제받거나 혹은 통제하거나, 현실의 알고리즘 해킹하기 / Random International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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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받거나 혹은 통제하거나, 현실의 알고리즘 해킹하기 / Random International

yoo8965 2020. 12. 4. 00:16

RAIN ROOM, 2012 water, injection moulded tiles, solenoid valves, pressure regulators, custom software, 3D tracking cameras, steel beams, water management system, grated floor from 100 sq m / random-international.com

 

"Out of Control : Random International", 부산현대미술관 특별기획전
통제받거나 혹은 통제하거나, 현실의 알고리즘 해킹하기


   오늘날 현실이 매우 허구적인 공정을 통해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음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텔레비젼과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소식을 접하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송신한다. 텍스트와 이미지 너머로 상대방을 가늠해야 하며 심지어 자연적인 것조차 인공의 체를 통해 다시금 매개한다. 따라서 누군가 현재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그것의 현재성 및 인공성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기술과 매개 작용에 관한 서술이 필요하다. 어느새 우리는 기술에 의해 매개된 인공적 현재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술 매체를 이용하여 현실을 매개할까? 현실은 어떠한 측면에서 기술에 의해 매개되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의 답은 결국 기술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서구의 전통에서 기술은 그 자체로는 목적의 구성에 참여하지 못하는 순수 도구성으로 사유되어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도구적 혹은 수단적으로 기술을 정의하는 것이 지니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술 철학자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말을 빌자면 기술은 그 자체로 현실을 드러나게 하는 탈은폐(aletheia)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매개된 현실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기술의 순수한 역할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현실이 되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새로운 특성들이다.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이 주목하는 특성들은 바로 이러한 현실의 틈새에서 발생한다. 런던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은 2002년 영국왕립예술학교(Royal Colleage of Art)에서 만난 한네스코흐(HannesKoch)와 플로리안 오트크라스(FlorianOrtkrass)에 의해 2005년 설립된 컨템포러리 아티스트 스튜디오이다. 국내에는 생소할 수 있지만 과학 기술과 예술을 융합하는 현대 미술의 형식은 작가 개인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보다 많은 이들의 협업에 의해 작품이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랜덤 인터내셔널의 경우 현재 25명에 이르는 스튜디오의 멤버들에 의해 작품이 탄생한다. 그들의 작업은 인간과 자연, 기계의 공존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러한 세 가지의 키워드는 그들의 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모두 디지털 기술에 대하여 매우 익숙한 세대라는 점이다. 다만 그들에게 있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술이라는 요소는 매우 자연스럽게 상호 수렴되는 유형으로 나타난다. 사실 이러한 점은 최근 우리의 삶을 떠올려보면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니다. 현재의 우리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자연’이나 ‘환경’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관한 의문이 주어진다면 그러한 관계망 속에서의 기술은 선택적인 도구나 수단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현실을 보는 시각이 변화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것은 이미 허구적이라거나 가상적이라는 수사적 형식을 벗어나 우리에게 도래한 엄연한 현실이며 오히려 그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만약 기술 매체가 덧씌워져 발생하는 현실의 인공성이나 가상성을 지적한다면 프랑크 하르트만(Frank Hartmann)의 말처럼 오히려 ‘가상적이지 않은 현실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 또한 가능하다. 그의 말처럼 우리에게 있어서의 ‘자연 혹은 본성(nature)’은 이미 기술 매체에 의해 점철된 하나의 인공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현실이 일종의 알고리즘(Algorithm)에 의해 작동되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종교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태초의 자연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특정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되는 환경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지면이 너무 따뜻해지면 상승 기류가 발생하고 이에 구름이 생겨 포집된 수증기가 다시 비로 오는 순환적 원리가 바로 그러한 알고리즘의 일환이다. 또한 새들이 무리를 지어 유영할 때 그들끼리의 군집 원리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특정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자연의 알고리즘적 순환은 어느새 우리에게 당연한 현실로서 인식되었다. 다만 그것은 현상으로 주어진 당위가 아닌 반복적으로 나타나 우리에게 익숙해짐으로서 혹은 과학적 관찰을 통해 획득된 지식으로서 이해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그러나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자연 또한 특정 대상을 통제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알고리즘을 작동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기술은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의 원천성에 대한 재매개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가령 지구의 공전에 의한 계절의 변화는 태양계를 유지하기 위한 자연의 통제 시스템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은 그것이 지닌 차가움과 뜨거움에 대항하기 위한 기술적 재매개를 유도한다. 다행히도 기술의 발달에 따라 자연의 원천성은 (모든 현상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인간을 위협하지 못하는 극복 가능한 기술적 대상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랜덤 인터내셔널의 <레인 룸 Rain Room>의 경우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기술 매개적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작가들은 미술관 속의 공간을 점유하여 작품 제목처럼 비가 내리는 방을 인공적으로 제작했다. 관람객들은 어두운 방 안에 진입하여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만약 비가 내리는 풍경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매우 반가운 인공적 환경이다.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기술이 한편으로는 자연이 완성할 수 없는 것을 완성하고자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을 모방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작가들이 제공한 이와 같은 기술적 환경을 경험하게 되면 그의 전언이 현대의 기술로 일정 부분 구현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경우 공기 오염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공의 비를 계획하는 상황인 만큼, 이러한 인공적 자연 생태계가 구축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라울 것이 없다. 다만, 이 작품은 쏟아지는 빗속을 거닐며 한 방울의 비도 맞지 않는 희귀한 경험을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자연의 재매개로서의 기술이 아닌 그것을 비틀어 버리려는 일종의 해킹 행위로서 이해될 수 있다. 작가들은 벽면 양쪽에 3D 트래킹 카메라를 4대씩 설치하여 관람객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1582개의 워터 노즐을 실시간으로 통제한다. 관람객들이 빗속으로 걸어가게 되면 해당 영역에만 비를 멈춰주는 것이다. 상호작용적 알고리즘으로 설계된 이 인공적 환경은 우리에게 본래의 자연을 경험하게 해주는 듯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을 제공한다. 즉, 이 환경은 본래 자연의 통제 시스템을 다시금 역으로 통제하는 이중의 통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매개된 현실은 본래의 자연적 특성을 망각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미국의 심리학자인 조지 말콤 스트래튼(George M. Stratton)의 실험은 기술적으로 매개된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변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우리의 눈을 통해 인식하는 세계에 관한 지각 반응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였는데, 그의 실험은 이미지를 상하, 좌우로 뒤집는 특수 안경을 고안하여 피실험자들이 어떻게 세계를 인지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실험에 참여한 이들은 처음 마주한 거꾸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게 되었지만 둘째 날에는 자신의 몸 위치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고 7일째 되던 날 모든 상황을 정상적으로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실험은 우리의 뇌가 시각에 적응하는 ‘감각 적응(Sensory Adaptation)’ 혹은 ‘신경 적응(Neural Adaptation)’의 양상을 보여주기 위해 진행되었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거꾸로 뒤집어 보인 세계는 안경이라는 매개체에 의해 재구성된 현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로부터 현실이 기술적 매체들에 의해 매개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감각은 그러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매커니즘을 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그러한 기술에 적응하여 매개된 세계 혹은 현실에 익숙해져 있을 때 불시의 사고나 예측하지 못한 사건에 의해 그러한 기술적 매개가 중단된 경우에 발생한다.

   <레인룸>이 제공하는 역설적 상황은 우리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작가들은 이러한 혼란을 극대화하기 위해 방 안의 조도를 어둡게 하였으며 폭우가 내리는 것만 같은 사운드를 연출하였다. 또한, 관객들이 비가 내리는 방 안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 연극 무대와 같은 강렬한 빛을 바라보게 만들었는데 이 역시 연극 무대처럼 현재의 순간에 몰입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관객들은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공간적 경험을 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를 맞지 않는 이상한 통제 상황에 노출된다. 여기서 관객들이 느끼게 되는 감각 이상은 우리의 신체 도식(schéma corporel)을 결정하는 ‘위치의 공간성’과 ‘상황의 공간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Mearleau Ponty)는 우리의 신체 도식은 유아기에 그리고 촉각적, 운동 감각적 분절 내용들이 상호 연합되거나 시각적 내용들과 연합되어 이 내용들을 보다 쉽게 불러일으키는 정도에 따라서 차츰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레인 룸>은 우리가 경험으로 획득해온 (공간적이거나 시각적 혹은 청각적) 촉각과의 연합 과정을 파괴해 버린다. 분명 비가 오는 공간 속에서 그 모습을 보며 빗소리를 듣고 있는데 비의 촉감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까닭은 작품이 제공하는 ‘상황의 공간성’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러한 감각 혼란의 순간을 우리는 멈춰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 분명 에스컬레이터가 멈춰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게 되면 정지해있는 아래의 계단이 마치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현상 말이다. 이를 ‘고장난 에스컬레이터 효과(Broken escalator phenomenon)’로 부르는데, <레인 룸>은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을 의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ALGORITHMIC SWARM STUDY / I, 2019 Multi-Channel Video Installation700 x 400 cm each / random-international.com


   만약 앞서의 언급처럼 우리의 현실이 일종의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 것이라면 랜덤 인터내셔널의 작품들은 그러한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적용하며 더 나아가 이를 해킹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레인 룸>과 함께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영상 작품인 <스웜 스터디 Swarm Study>를 보면 작가들의 이러한 의도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새와 물고기, 벌떼와 같은 이른바 ‘자기조직시스템(Self-Organizing System)’을 갖춘 무리 혹은 집단들을 연구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시스템에 기반한 무리의 움직임은 주변의 자연 현상이나 공간의 역학적 구도 그리고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게 되는데 작가는 집단이 만들어내는 동선들을 분석하고 이를 다시 영상과 설치 작품으로 제작한다. 가령 <스웜 스터디 III, 2011>는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Victoria Albert Museum)의 의뢰로 제작된 작품으로 뮤지엄에 방문한 관객들의 움직임을 구조화하고 있으며 <스웜 스터디 VII, 2015>는 밤하늘의 별에게서 영감을 받아 중동의 교통 허브가 지닌 특성을 LED 조명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현실을 구성하는 수많은 패턴들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과거의 자연적 패턴이 현재의 기술 매개체에 의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작가들은 현실의 법칙들에 근거하여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기술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의 시도는 원천적으로 주어져 있는 자연의 코드를 분석하며 때로는 디지털 기술들에 의해 매개된 눈에 보이지 않는 인터페이스를 향하기도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겨냥하는 것은 현실을 작동시키는 거대한 매커니즘이라는 사실이다. 


2019년 8월. 부산현대미술관, 《랜덤 인터내셔널: 아웃 오브 컨트롤》展 전시서문

 

www.busan.go.kr/moca/exhibition03/1418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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