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Jordan Wolfson, <Real Violence> / 가상적이며 현실적인 그리고 매우 폭력적인 90초짜리 영화 본문

Arts & Artists

Jordan Wolfson, <Real Violence> / 가상적이며 현실적인 그리고 매우 폭력적인 90초짜리 영화

yoo8965 2019. 12. 9. 20:48

Jordan Wolfson, <Real Violence>, VR 헤드셋 내부이미지, 2017 @ Jordan Wolfson


   VR 관련 기술이 소개될 때마다, 해당 기술과 연관하여 가장 발전하게 될 분야를 게임과 성인 포르노 산업계로 예측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타당하다. 이는 VR을 명백히 현실에 관한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실의 금기에 대한 매우 안전하고 합법적인 대안적 차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인식에는 명백한 선결조건이 필요하다. VR이 실제 세계와 혼동될 수 있을 만큼 현실 세계를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야 하며, 그렇기에 강한 몰입이 가능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이러한 VR 체험이 매우 능동적인 차원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어떤 재난이나 구조의 상황이라던지, 폭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경험조차도 VR 세계 속에서는 능동적 욕구에서 비롯된 직접적 참여나 간접적 관조의 행위로 나타난다.  

   지난 3월 17일,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ale 2017)에서는 충격적인 VR 작업이 선보여졌다. 2009년 프리츠 재단(Frieze Foundation)에서 카르티에(Cartier) 상을 수상했던 요르단 울프슨(Jordan Wolfson)의 <Real Violence>가 바로 그 작품이다. 울프슨은 팝 문화에 기반하여 폭력과 섹슈얼리티, 기술과 젠더의 문제를 설치와 영상으로 다루어왔다. 다소 원색적인 설치 작품들을 선보이며 차세대 현대 예술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허구가 아닌 아주 실제적이고도 실질적인 폭력의 현장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울프슨은 ‘아트뉴스(ARTnews)’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제시되는 폭력 장면을 위한 스턴트 맨과의 촬영 경험을 들려주기도 하였는데, 실제로 발생한 장면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장면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언급하며 보다 현실적인 폭력의 장면들이 작품에 포함되기를 원했음을 밝혔다. 그는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실제적인 폭력을 생생하게 경험했을 때, 과연 어떠한 주체성을 가지게 될 지를 관찰한다. 가령 우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일까? 아니면 그 대상일까? 혹은 목격자이거나 방관자일수도 있지 않을까. 

Jordan Wolfson, <Real Violence>, 2017 @ Whitney Biennale 2017

   앞서 제기했던 부분과 연결해서 생각해보자면, 울프슨의 작업은 VR을 이용하는 다른 산업의 콘텐츠와 이러한 지점에서 차별점을 갖게 된다. 즉, 능동적 개입을 전제하는 여타의 작업과는 다른, 다양한 선택 지점(수동적이고 소극적 입장까지 포함한)이 우리에게 펼쳐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VR은 이러한 자율적 선택의 주체로서 관객들을 개입시킬 때, 오히려 그 예술적 가능성을 획득할지도 모른다. 마치 강제 스크롤되는 게임의 장면에서 게이머 혹은 사용자가 그것에 참여할 여지를 박탈당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미리 프로그래밍 되어진 VR은 그 현실적 생생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작품을 경험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놀라움과 당혹감에 메스꺼움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와 공포의 감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작가는 여기서 철저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며 작품의 의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세계적인 매거진 ‘W’에서는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수식하였다. ‘가상적이며 현실적인, 매우 폭력적인 90초짜리 영화 Ultraviolent 90-second virtual-reality film’. 이러한 수식은 이 작품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그의 작품 속 폭력은 작가에 의해 특정 맥락에 놓여있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가 마주하는 더 큰 환경적 맥락을 공유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가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그리고 작품의 제목처럼 ‘진짜’ 폭력적이다.

 

2017년 10월 퍼블릭아트(Public Art)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