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문화/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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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사라지고 결국 사유만이 남는다

yoo8965 2018. 7. 9. 03:08


모든 것이 사라지고 결국 사유만이 남는다 : 예술의 전당 <르 코르뷔지에>展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 모듈식의 건축 구성 등 국제적 합리주의 건축 사상의 기수였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전시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지난 1월 4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르 코르뷔지에의 첫 번째 전시이자 2017년 새해를 여는 전시이기에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대표적 건축가이자 아티스트이다. 현재 7개국에 걸쳐 17개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콘크리트 건축물을 중심으로 모더니즘의 정수를 회화와 건축이라는 언어를 통해 제시한 건축가이자 작가였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은 일찍이 해외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되어 왔다. 전시의 주요한 테마는 물론 그의 건축적 시도들에 관한 것이었지만, 금번의 한국 전시와 마찬가지로 그의 회화적 시도들에 초점을 맞추는 전시 또한 선보여져 왔다. 전시는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에 관한 연대와 설명을 담은 첫 번째 섹션 ‘르 코르뷔지에는 누구인가?’로부터 자신의 조형 질서를 구축했던 두 번째와 세 번째 섹션, ‘여행을 통해 ’건축과 인간‘에 눈을 뜨다’, ‘세상을 품다. 넓고 큰 세상으로’, 회화와 함께 본격적인 현대 건축의 표본을 제시했던 네 번째 섹션 ‘화가 르 코르뷔지에와 순수주의’ 현대건축 교과서의 틀을 만들다’, 그의 혁명적 건축의 포트폴리오를 만나볼 수 있는 다섯 번째 섹션인 ‘건축으로 세상을 혁명하다’, 그의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던 연인과 가족에 관한 여섯 번째 섹션인 ‘내 이생의 꿈과 사랑 그리고 어머니’, 그의 사유의 흔적들을 관찰해 볼 수 있는 일곱 번째 섹션 ‘건축가는 ‘생각’을 남기는 사람 전해지는 것은 ‘사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모듈식 주택 공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4평의 기적 : 거장이 만든 작은 집’이 그것이다.

이러한 섹션의 구성과 순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발자취에 관하여 연대기적 추적을 가능케 한다. 또한 건축가로서만 알려져 있기에 종종 경시되었던 그의 회화 작품들 및 그의 사유의 한켠을 경험하게 만든다. 특히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파와의 교류 및 그와는 다른 관점으로 시도되었던 다양한 스케치 및 유화 작업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퓨리즘(순수주의)’으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미술 운동의 창시자로서의 르 코르뷔지에의 진면모가 잘 소개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건축적 측면만 조명했던 세상을 향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건축가로서의 나밖에는 모릅니다. 화가로서는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건축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림이라는 운하를 통해서입니다.”

이러한 언급은 르 코르뷔지에의 회화와 건축이 결국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여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건축이라는 공간 예술이 회화라는 이미지 세계 속에서부터 출발하여 도달한 종착지임을 짐작케 한다.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지고 결국 사유만이 남는다’는 그의 언급은 다시금 장르를 초월하여 환원되는 그의 기초 조형 요소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시는 그의 흔적들을 VR과 프로젝션, 사운드 및 영상과 같은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르 코르뷔지에의 모습을 조우하게 되는 공간은 전시의 마지막 순서에서 만나게 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세계문화유산이자 그가 말년을 보낸 작은 방, 4평짜리 통나무집 ‘카바농(The Cabanon)’에서이다. 전시의 부제가 ‘4평의 기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17년 2월 퍼블릭아트 기고글.